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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판 Oct 07. 2021

10월 7일 독서기록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워낙 유명하니 다들 아실 테고. 예전에 인상 깊게 읽지 못했는데 계속 여운이 남아서 다시 읽었다. 이전에도 몇몇 단편은 흥미롭게 읽었는데 작품 내의 편차가 크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읽었을 때는 김초엽의 글을 더 읽은 상태였고 그래서 인지 소설의 맥락이 더 공감이 잘 됐다. 이해를 해야 공감하는 편... 내 머리가 철조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초반에 실린 소설들도 좋았고,  독서모임에서 논란된 이 소설이 소프트SF냐, 설정 미스냐라는 부분에서는 소프트SF라는 부분을 지지한다. 무엇보다 내적 논리가 완벽하다.


훔쳐라아티스트처럼 예술가라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언이 담겨 있다. 꼰대 같지도 않고, 너무 당연한 소리인 것 같지도 않지만 때로는 작품을 만들다가 잘 안 되면 이 책을 한 번 훑어보고 다음 지침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다. 초보 예술가라면 더욱 더 활용도가 높을 책이다. 필독 정도는 아니더라도 읽어도 좋은 책이다.


7월14일 (7월 신간) 바스티앙 비베스의 만화. 『염소의 맛』으로도 유명한데, 내 경우에는 『내 눈 안의 너』와 『누나』를 읽었다. 그의 작품은 대사가 적은 대신 잔잔한 미장센으로 서사를 이끌어나간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이 만화의 경우 프랑스 테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맥락을 모르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 특히 결말에서도 뒤틀린 내용이어서 사실 이 만화의 진짜 결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비베스의 만화는 묘하게 이끌리는 지점이 있다. 인물로 등장한 뱅상은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의 주인공을 오마주한 것이라고 한다. 어쩐지 그렇게 보면 비베스의 결을 알 것 같기도 하고. 순한 우엘벡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비베스의 그림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지막산책 생명윤리학자가 애완견 오디의 말년을 관찰하면서 쓴 일기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형태의 소논문이 교차된다. 기본적으로 동물의 생명윤리를 다루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는 것과 늙는 것, 죽는 것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주제의식과 내용 면에서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보다는 어렵고, 여타 생명윤리를 다룬 철학책보다는 쉽다. 대중성이나 밀도로 봤을 때 상당히 괜찮은 책인데, 왜 주목을 받지 못했는지 의문일 정도로 좋다.


지구끝의온실 (8월 신간) 김초엽의 장편 소설. 이 소설로서 김초엽은 장편 소설도 잘 써,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장편 소설로서 이 작품이 크게 재밌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은유한 듯한 더스트로 인해 세기말의 풍경을 담고 있다. 어쩐지 흔한 세기말 소설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그런 점에서도 김초엽 특유의 관점이 배어 있어서 그런 점을 드문드문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좋다. 그렇지만 오히려 세계관을 촘촘히 짜려고 하려고 했을까. 그런 부분은 부자연스러워서 어쩐지 서사의 몰입도는 약하다. 그러니까 왜 세기말에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지, 에 관한 질문에 소설 안에서도 그저 그래야 하니까로 답변 되는 듯하다. 물론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주제의식으로서는 앞선 것인지는 몰라도 다소 약하게 느껴졌다.


모스크바일기 아는 사람은 아는, 발터 벤야민의 일기다. 모스크바를 다녀온 것은 내연녀 아샤 라치스를 만나러 갔다는 썰이 유력하고, 본문에도 적나라하게 쓰여 있다. 그렇기에 사랑(결국 불륜)을 이루지 못하고 찌질한 남성의 모습을 그린 일기로 기억했는데, 그래도 여운이 있어 다시 집었다. 어쨌거나 좌파 엘리트 철학자가 보는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살풍경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연인과 썸을 타느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대목은 어쩐지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쨌거나 학자들에게는 연구용으로 귀한 자료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산주의 실패를 간접적으로 예언한 벤야민의 성찰이 돋보이며, 뒤에 실린 부록에 실린 에세이를 통해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며(이건 취저였다), 여전히 벤야민은 사랑 앞에서 찌질했다. 근데 그래도 된다. 뭐 나쁠 건 없다(불륜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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