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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지프킴 Aug 13. 2021

회사와 직원 사이의 '신뢰'

조직에서 정의되는 '신뢰'란 어떤 의미일까



*들어가며.


내 첫 직장(이자 아마도 마지막 직장이 될 곳)은 삼성전자. 대졸 공채로 입사했다.

연구개발 업무를 약 3년 남짓 했지만, 사람을 관찰하기를 좋아해서인지 연구개발 자체보다는 자연스레 회사 돌아가는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 내겐 더 흥미로웠다.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묵직한 질문들과 생각들이 있다. 때로는 포스트잇에 흩날려 적어두었다가 이내 가슴 속에 들어와 한 자리 차지하는 것들.  


나름대로 조직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사회생활'은 나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는 하루에 8시간도 넘게 부대끼는 회사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종종 나 자신이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온전히 '나'일 수 없는 이 곳에서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맺어진 이 공간에서 말이다. '대기업'이면 좋은 곳 아니냐고? 내가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기'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글, 어찌보면 그런 곳에 대한 나의 생경함에서 비롯된 글임을 밝힌다.




1.

뜬금없는 질문. 왜 회사(또는 경영자)는 직원을 '고용'할까?


여기서 회사는 내 회사만이 아니라, 조직을 이룬 회사 일반을 가리킨다. 질문을 다시 해보자.

다시 말해서, 회사로서는 사사건건마다 단기계약을 맺어서 최대의 아웃풋을 내게끔 최적화하는게 전통적인 OR(Operation Research, 즉 경영학) 입장에서는 더 좋아보이는데도 왜 굳이 모든 근무시간동안 100% 효율을 발휘하지도 않는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서 비용을 지불하고 있을까?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월급을 계속 줘야 하고, 인력 배치를 그때그때 유연하게 할 수도 없는데도 직원을 고용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바로 비상사태를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비상사태는 곧 불확실함이고 이는 경영의 리스크다.


단기계약자 내지는 프리랜서들은 그 계약관계 외에는 두려워하는 게 없어서, 다른 회사에서 기존 계약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새로운 계약을 손내밀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고용된 직원에게는 적어도 적(籍)을 두고서 근무지에 출근해있는 동안은 다른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지 않게 할 수 있다. 회사도 직원들 중 소위 '월급루팡'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회사는 이런 사람들까지 고용하면서 생기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안정성'과 이 안정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신뢰성'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는 우리를 직접 고용한 것이다.



2.

위에서 말하는 '신뢰성'은 어디까지나 고객과 주주에 대한 신뢰성이다. 직원에 대한 신뢰가 아님을 밝혀둔다. 회사는 애초에 직원을 믿지 않는다. 다만 직원을 고용시키고 상술한대로 안정성을 얻는 그 '시스템'을 믿는다. 그 시스템에 따라 개돼지같은 직원들은 어떻게든 따라오고 시키는 것을 하게 될테니까. 안하는 사람도 있다고? 맞다. 하지만 회사는 상관없다. 어차피 그들을 대체할 사람은 세상에 많다.


내가 여기서 회사가 근본적으로 직원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우리 일들 속에 정확히 이 생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를 보자.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100% 달성해오라고 한다"  ***** (ㄱ)


경영진은 임원들에게, 임원들은 그룹장 또는 부서장에게, 부서장은 실무진에게... 그 모습은 각각 다를지언정 본질은 비슷비슷하다. 지시를 받는 입장에서는 저 목표치는 달성이 너무나도 요원한 ideal한 것들뿐이다. 애초에 달성이 쉬운 목표면 목표치도 아니었겠지. 이런 목표치달성 압박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쉬이 볼 수 있다. 달성 안된다는 것을 알 정도로 실력과 능력이 뛰어나지만 연구자의 양심으로 이건 안된다 직언을 해버리고 끝내 팽당하는 사람, 거짓 자료로 대충 때워서 목숨을 연명하는 사람, 하는데까지는 최선을 다해보고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결과를 보고하는 사람 등등....


근데 위 (ㄱ) 문장에서 보듯이 왜 윗사람들은 실제로는 80, 90%만 돼도 잘한 건데 꼭 무리하게 100%를 해오라고 할까??  (마치 오픈이벤트라고 할인한답시고 사실은 2만원 정도 되는 서비스를 3만5천원 -> 3만원! 파격세일중! 이라고 광고하는 우리동네 네일샵이 떠오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지시하는 윗사람이 이게 100%가 안되는 것인지 정말 모르고 있는 경우(능력 부족이겠지). 다른 하나는 알면서도 시키는 경우. 전자는 그냥 그 윗사람이 모지리라 그런 것이라 쳐도, 후자는 왜 그런걸까?? 왜 달성이 요원한지 사실 알면서도 해오라고 닦달을 하는 걸까?


그것은 시켰는데 될 것도 안된다고 하는 아랫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다 봐주고 사정을 감안해주면 일이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아랫사람이 그 목표치에 맞는 역할을 정말 할 수 있는 놈인지 하려는 의지가 있는 놈인지 내가 "알 수가" 없으니까. 잘 들여다보자. 조직에는 신뢰가 없다. 비즈니스만이 있을 뿐.




3.

여기서 다시 직원에 대한 신뢰 문제로 돌아온다. 근본적으로 위 (ㄱ) 문장의 내용을 시키고 매일매일 우리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치를 향해서 고생하는 이유는, 회사가 직원을 신뢰하지 못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아무리 친하게 지내고 서로 같이 밥을 먹고 스몰 토크를 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직장생활은 비즈니스적인 관계일 것이다. 규모가 비대해진 대기업일수록 이 회사에 들어오기전까지 어떻게 살아왓는지도 잘 모르는 생판 남과 일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오랜 시간 두터운 신뢰관계를 가진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일을 한다면, '이건 80%까지만 해도 잘한 건데 100%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아. 하지만 못하더라도 상관없어, 80을 목표로 하고 나머진 자유롭게 시도해보자.'를 시키는 사람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또 듣는 사람도 그가 이 말을 토씨 그대로 진심으로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겠지.


오래 같이 일을 한 사이에서 유대감과 라포가 형성됐다 하더라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만나면 서로를 어려워 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일하는 스타일이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 정도로 오래 같이 일했던 상사와 부하여도 어려운데, 갑자기 인연도 없는 임원과 부서장이 타회사 타부서에서 온다면? 그들은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을 잘 모르고 그 조직의 사정을 속속들이 모르기 때문에 일단 무리한 목표라고 할지라도 해오는 놈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치 않으니 일단 지르고 보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직원들끼리도 회식 술자리에서야 하하호호지 늘 업무적으로는 시킨 일들을 다 잘 해내줄 수 있을까라는 모종의 불안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뢰는 없고 불안이 남는다. 그 불안은 사실 그의 탓이 아니다. 1에서 상술했듯이, 애초에 회사는 그 직원 하나를 정말정말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그를 고용한 게 아니라, 시켰을 때 해올 수밖에 없는 구조와 시스템을 신뢰하기 때문에 고용한 것이다. 




*마치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정의내릴 수 있는 '신뢰'는 어딘가 우직한 데가 있다. 뜨끈한 국밥처럼.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됨으로부터 나오는 믿음에 기반한다. 아마 오랜 시간동안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바라보고 다양한 환경에서 그 사람을 봐왔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믿음일 게다. 그리고 그 믿음의 크기는 한정돼 있지 않다.


반면, 비즈니스 세계에서 말하는 '신뢰'는 어딘가 차가운 구석이 있다. 믿음의 크기는 곧 그 직급의 크기다. 오랜 시간동안 그 사람을 업무적인 것 외에도 제대로 만나고 겪고 느낄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내는 억지 신뢰다. 닦달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의심 한 방울이 늘 껴 있는 신뢰다.


이제 그렇다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회사 또는 조직에서 나는 나의 자아와 모습을 전부 다 보여주지 않는데,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나를 정말 '신뢰'할 수 있게 하겠는가."


이에 대한 나의 답이다.

"없다. 어차피 큰 회사일수록 내가 말하고 싶은 것보단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잘 말하는 것이 그들에겐 신뢰로 보일테니까. 내 색깔을 지우는 것이 이 세계에서 정의되는 믿음직스러움의 상징일테니."


퇴사를 계획한다. 그리고 작은 가게를 열 생각을 품는다.

작은 조직을 지향한다. 업무말고도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함께 느끼고 건전하게 토론하고 그럼으로써 직원을 알 수 있고 직원을 마음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꿈꿔본다.

역시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사람을 잘 알아가야지.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우주가 온다는 것이고, 늘 그렇든 우주를 만나는 일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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