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글에는 무게가 있다. 사뭇 진지하게 쓴다고 생기는 중량감이 아닌, 작가의 내공에서도 흘러나오는 문체의 진중함에는 그 무엇도 비할 수 없는 위대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글은 흔히 나오지 않는다.
황석영 작가의 글이야 우리 세대 수험생들은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테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이 있으니 책 좀 읽었다 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몇 권은 읽었을 것이다. (내 책장에도 세 권이 있다.) 리얼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자면 나와야 할 책일 것이고, 근대 역사 속의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역시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의 노동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이리 고단하건만, 국권피탈기의 무력한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잔혹했을까 싶은 한 지점에는,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 움직이고 탄압 속에 우뚝 서서 버텨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용기가 어디서 발로한 것인지 감히 아는 알 수 없으나, 그렇기에 나는 인본주의자가 되지 않았던가. 인간의 의지는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으로 바꾸고 만다.
책의 서두에서 나는 '불경하게도' 감히 내 삶과 비교하며, 시대를 막론하고 노동자의 삶은 지난하고 결국 인생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고 나면 맞닥뜨리게 되는 시대의 위압감은 서슬 퍼런 공포이자 끓어 나오는 분노였고, 현대인은 알 수 없을 나라 잃은 자들의 절망과 무력감 앞에 나의 오만함을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현대의 삶인 들 어느 하루, 어떤 하루가 편하고 즐겁기만 하겠느냐만, 적어도 주권국가 시민의 삶은 그 평화로움이 다르지 않겠는가. 말미에 도달하고 나면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에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의 어딘가에서 어느 누군가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신념을 기꺼이 바꾸려고 하기에, 그 고귀한 행위를 존경하게 된다. 그런 이들이 시대를 조금씩 바꿔왔던 것이다.
누군가는 지극히 좌파적인 내용이며 빨갱이를 미화하는 소설이라고 공격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그 시대의 좌익 운동 또는 공산주의는 지금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으므로, 국권침탈기의 노동자와 독립운동가들의 정치적 방향에 대한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바꿔 말하자면 이미 우리가 직면했던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과도 맞닿아 있으며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했던 공산주의 운동을 작금의 공산주의와 동일시하며 빨갱이로 폄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도 독립을 위해 그리고 노동자의 삶을 위해 저항한 이들의 희생을 현시대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 나는 의문을 가진다. 그것은 너무 정치적이고 의도적이며 야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