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시선은 다시 미시세계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인터스텔라 이후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입니다. 인터스텔라의 중요 소재였던 중력과 시간지연이 거시 세계였다면 오펜하이머는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미시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미시(微視)는 아마도 한 인간의 내면일 것입니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줬듯이 영웅적인 인물이 인간적인 내적 갈등과 나약함으로 평범한 인간이 되는 모습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적 동기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가장 잘하는 영화적 기술입니다. 더불어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복잡한 플롯으로 이야기를 꾸며 놓아도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인셉션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습니다. 비록 작품마다 주제를 표현하는 문법은 달라지지만, 그가 제일 잘하는 것은 역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죠. 장르는 껍데기일 뿐이고 그는 항상 인간에 대해 그리고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생을 따라가며 그의 행적과 심리 변화, 그를 둘러싼 시대의 변화를 집요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두 가지의 청문회를 교차 편집해서 진행되는데, 하나는 컬러로 진행되는 오펜하이머의 ‘핵분열’이고 다른 하나는 흑백으로 진행되는 스트로스 제독의 ‘핵융합’으로 대비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대척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이름만으로도 인류의 종말이 연상되는 이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무기들은 놀랍게도 서로 닮았으면서도 태생적으로 대치되는 존재들인데 두 인물 역시 그렇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심과 오만함은 자기 복제라도 된 듯 유사하면서도 반대에 선 채로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파괴합니다. 어떤 이는 자기희생 또는 순교자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망가뜨리며 죄책감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떨쳐버리려 하고 어떤 이는 옹졸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감정적인 복수를 하려다가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그의 사상적 행보와 방향성이 비록 적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직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 인물에 대해 이렇게 처참하고 잔인한 말로를 강제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극사실적 행태이기에 치미는 분노를 참기 어려워 속으로 나지막이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된 것 아닐까 싶은 순간에도 감독은 관객들을 감정적 고통 속으로 밀어붙입니다. 특히 청문회 과정 중 부인 앞에서 부정한 과거의 행동이 낱낱이 밝혀지며 오펜하이머가 느낀 벌거벗은 듯한 수치심과 바로 이어진 쇼트에서 남편의 부정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듯한 부인의 모욕감이 저에게도 전이되어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는데, 그러면서도 그 연출 방식이 너무 기발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실제의 사건(현실)은 창작물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몇 곱절 끔찍하기 마련인데 그 지점에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적군이 개발하는 무기를 따라잡으려던 노력은 적의 수장이 자살하고 패전을 인정했음에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또 다른 다른 적에게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결정을 관철시킨 결정자를 통해 그 시작과 끝이 결코 동일한 의도가 아니게 되었음을 알 수 있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멈추지 않은 것은 그것의 개발 목적이 더 이상 방어나 인류의 평화가 아님을 명확히 나타냅니다. 사실 그것은 결정권자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어느 높이에서 떨어져야 그 위력이 가장 최대화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오펜하이머 역시 과연 그 개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일본에 대한 사용에의 그의 의견은 어떤 것인지 가늠케 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전기 영화이지만 위인전은 아닙니다. 오펜하이머는 그저 인간일 뿐이고 그의 욕망과 오만함은 비단 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이 뛰어난 존재인 동시에 어리석은 존재임은 인류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배워왔으며 현재 진행형으로 지켜보는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평화와 생존의 수단을 빙자한 극단적 폭력성과 배척주의가 작금의 세계를 잠식해 가는 이유를 저로써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사회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범인들은 따라가기 힘든 세상이니 자연히 불안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할 수는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3차 세계 대전의 공포와 인류 멸망에 대한 우울한 예측은 날이 갈수록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어느 나라에서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어느 나라에서는 핵 실험을 하고 그래서 우리는 핵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지에 대한 불안과 초조함은 자주국방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원자폭탄의 탄생이 자주국방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마치 영원한 순환논리에 빠진 듯한 기분입니다. 이 영화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사용하여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면, 한 편으로는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파괴적인 무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같이 던지고 있는 것이죠. 운명의 날 시계 (The Dooms day clock)가 2023년 현재, 23시 58분 30초를 가리키며 지구 역사상 종말에 가장 가까운 시간을 나타내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