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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Sep 06. 2021

MBTI: 네 개의 알파벳이 대변할 수 없는 것

나에 대해 내가 제일 잘 아는 삶을 산다는 것

1. 나는 ENTP라고 한다.


그렇지만 어느 날은 INTP가 나오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ENTP가 한두번쯤 더 나왔다.


MBTI와 같은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주는 성향 분석이 한 때 크게 유행했었다. 지금도 꽤나 파생된 밈이 유행하는 것 같다. 기업에서도 바이럴 마케팅의 수단으로 심리 분석, 성향 분석 등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왜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성향에 집착할까?


자신도 모르는 자기의 성격을 알고 싶은 걸까, 누군가가 나 자신을 잘 알아줬으면 하는 걸까.

혹은 나와 비슷한 타인의 존재에 공감하고 싶은 걸까?




2. 나는 태어나서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B형이었다.


초등학생의 지식 수준에서 B형인 엄마와 A형인 아빠에게서 태어난 나는, A형 혹은 B형 둘 중 하나여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와 아빠에게 혈액형 물어볼 생각을 왜 안했나 싶지만, 어릴 때 누가 혈액형을 물어보면 B형이라고 대답했다.


소심하다고 알려진 A보다는 B형이 화끈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스스로가 활발하고 대범한 사람처럼 보여지길 원했던 것 같다. 때문에 B형에 대한 글을 읽으며 B형의 성격을 제법 비슷하게 흉내내곤 했는데, 덕분에 초등학교 고학년에 갔을 때 나는 진정한 스테레오 타입 B형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대충 다혈질에 욱하는 면이 있지만 내 사람에겐 따뜻한 성격 파탄자의 모습으로 초6병을 겪었다는 이야기이다.(내 인생 최고의 질풍노도 시기는 중2가 아닌 초6 시절이었다.) 이것이 미디어를 통해 학습한 B형의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받은 신체검사에서 내가 O형이라는 걸 알았다.




3.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와 같은 질문은 세계 어디에서든 인종과 환경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게, 혹은 내 옆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행복해하는 순간과 두려워하는 순간,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에 대해 꽤 잘 아는 편이다. 나는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고, 소리에 아주 예민하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택했다고 느낄 때 행복하다. 칭찬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유없는 호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개는 무덤덤하지만 노래를 듣거나 영화나 책을 볼 때 누구보다 크게 감동한다.


내가 아는 나는 아주 다면적인 사람이다. 한 없이 베풀다가도 끝없이 계산적일 때도 있고, 라떼와 함께 맞는 바쁜 아침이 만족스럽다가도 바다를 보며 책을 읽다 그림이나 그리던 여행의 기억떠오르면 다 그만두고 떠나고 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가도,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 입밖으로 숨도 내뱉지 않고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4. 그러므로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나는 그 때의 나일 뿐 진짜 나일 리 없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행동하는 그 사람의 선택'을 통해 누군가를 판단한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MBTI 설문도 선택지에 대한 답을 통해 대상자의 성격을 판단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특정 시점에 내린 선택이 그의 성격과 성향을 대변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심리학 실험법 수업을 열심히 들은 사람으로서, 표본 집단의 적정 크기와 반복된 랜덤화 실험을 통해 분류된 체계를 좋아한다. 설문에 대한 응답을 기반으로 클러스터링을 해서 유형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고작 몇 번의 선택으로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지양한다는 이야기이다.




5. 다른 사람이 모르는 나를 찾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가 진짜 나일 리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나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보지 못하는 나의 장점도 스스로 찾아내고 인정해주는 삶을 살자는 이야기이다.


타인은 그저 특정 상황에서 내가 보인 행동을 통해 나를 '보고' 있을뿐이다.

타인이 나를 '보고' 내 행동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그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가 끼어들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나의 행동은 타인에 의해 내 '실제' 의도와 상관없는 해석을 낳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에 크게 휘둘리지 말자.

물론 귀기울여야하는 평가의 종류가 분명 있지만, 길어지니 그건 다음에 깊게 생각하고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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