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텍스트힙 열풍이 뜨겁다. 텍스트힙(Text-hip)이란, 글을 뜻하는 ‘텍스트’와 멋있다, 개성 있다는 뜻의 은어 ‘힙하다’의 합성어로, “독서를 하는 것이 멋지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이는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Z세대들이 어느 순간 비주류 문화가 된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독서, 기록)를 멋지다고 여기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텍스트힙」 사전적 정의
결정적으로, 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한강 작가의 작품 신드롬으로 인해 독서에 대한 유행이 더욱 널리 번지게 되었다.
그런데 다양한 책을 접해본 다독가들이 아니라면, 한강 작가의 작품을 다소 난해하고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여겨지는 책을 ‘숙제 같다’고 표현한다.
나에게 책은 넓은 의미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노는 책’과 ‘숙제 같은 책’이다.
먼저 ‘노는 책’은 놀이처럼 손에 자주 잡히고 쉽게 읽힌다. 한참을 읽지 않다가 다시 중반부터 시작하더라도 이해와 연결이 어렵지 않고 편안하다.
그에 비해 마치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책’이 있다. 생경한 단어와 기다란 만연체 문장 혹은 심오한 메시지가 얽혀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버거운 책들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숙제같이 어려운 책 읽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걸까?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독서가 나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 혹시 내 안에 지적 허영심이 아닐까? 허영심으로 행하는 독서도 바람직한 것일까?
작년에 회사 동기가 어떤 글의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바로 문화평론가 이동진의 월간지 인터뷰 글이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간 오고 갔던 수많은 대화들 중 나는 아래의 답문을 몇 번이고 읽고 곱씹었다.
※출처: 문화평론가 이동진 블로그 ‘언제나 영화처럼’ 中「문화+서울 인터뷰」 게재글 발췌
나는 이 답문을 통해 즐겁지 않은 문화 행위가 존재할 수 있음을 공감받고, 즐겁지 않음에도 읽기를 시도하는 지적 허영심을 허락받은 기분이 들었다. 지적 허영이 빈 곳을 충만함으로 채워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면, 내가 그 행위를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의 텍스트힙 열풍은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된다.
'숙제 같은 책'이 괄목할 만한 지적 성장을 주는지 당장에 파악하기는 힘들다. 숙제란 것은 본래 해치워버리고 싶은 습성이 있어 해결하고 나면 더 이상 펼치고 싶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숙제를 풀어야 수업 진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서서히 읽다 보면 책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고, 마음속 빈 곳(허영)도 충만하게 채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