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음식점에서 주문한 와인은 대부분 글라스 당 만원이 넘었고, 전문샵에서 구매하는 와인 한 병 가격도 4~5만원은 훌쩍 넘겼다. 와인병에 적힌 글도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를 언어들의 향연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는 영역이라 보는 안목이 없는 상황에 괜스레 비싸고 복잡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이 친구에 대한 가격적, 심리적 허들이 허물어진 계기는 신혼여행으로 갔던 스페인에서였다.
스페인동네 슈퍼나 상점 곳곳에서 판매하는 와인들은 원화로 한 병에 1만원도 안 되는 와인이 즐비했다.
처음엔 저렴한 가격에 의구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마셔봤는데, 모두 놀라울 만큼 맛있었다. 무엇보다 1만원대 와인의 종류들이 셀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전 세계에 이렇게 수많은 와인들이 존재하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을 텐데, 그중에 저렴하면서 내 입맛에도 맞는 와인이 당연히 있지 않을까. 매번 직원의 추천에 의지해서 구매하지 말고, 내가 직접 레이블을 보며 와인을 찾을 수 있는 안목을 키워보자.'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와인이라는 취미를 제대로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1. 와인 도서 구매
와인 입문의 첫디딤돌은 와인 공부의 교과서라 불리는 <와인 폴리> 서적을 구매했다.
이 책은 와인에 필요한 기본용어, 에티켓, 맛과 색상의 감별법, 안주 조합, 100가지 포도 품종 등 다양한 정보를 총망라한 책이다. 많은 데이터가 들어있지만 이를 인포그래픽 형태로 시각화해둬서 복잡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정리하자면, '책 한 권으로 뭐 얼마나 많은 정보를 습득하겠어.'로 시작했다가 '이 책 안 읽었으면 어쩔 뻔했어.'로 끝나는 임팩트 있는 책이다. 와인 입문 서적으로 강력 추천이다.
2. 와인 유튜버 구독
내가 주량이 센 편도 아니고 어차피 세상의 모든 와인을 다 마셔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유튜브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와선생님들의 빅데이터를 보고 들으며 많은 배움을 얻고 있다.
1) 와인킹 - 가장 유명한 유튜버이자 와인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인물. 최근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대형 와인 팝업스토어를 열어 직접 실물 영접도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와인 전문가 MW(마스터 오브 와인)와 진행한 테이스팅 영상, 프랑스 현지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함께한 영상을 재밌게 봤다. 요즘엔 셀럽들과의 콜라보 영상이 주로 올라온다.
2) 빅보틀 - 친한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알게 된 와인의 성지. 전문샵이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대로 와인을 공수해 온다. 유명하거나 국내에서 쉽게 구하지 못하는 와인들도 있는걸 보면 바잉파워가 대단한 매장 같다. 온누리 상품권 10% 할인도 받을 수 있다.
3) 보틀벙커 - 롯데마트 내에 위치한 와인 전문샵 보틀벙커. 전국 4개 지점이 있는 걸로 아는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은 서울역점이다. 보틀벙커는 규모가 매우 커서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와인종류를 스터디하기에 좋고, 할인폭이 큰 와인장터를 노리면 좋은 가격에 모셔올 수 있다.
구매까지 완료했으니 이제는 직접 마셔보고 맛과 향을 표현해 볼 시간. 스터디를 위해 동료들도 테이스팅할 와인을 한 병씩 준비해 왔다. 레드와인 2종을 비교하며 풍미, 향, 바디감 등을 평가해 봤는데 아직까진 와인에 대한 평가나 표현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와인이 무엇이든 좋은 사람, 좋은 안주와 함께 즐기면 맛과 향이 배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처음 공부하기 전보다 알면 알수록 와인이 좋아지고 있다. 스페인 여행에서 남편과 감탄하며 마셨던 1만원대 와인들이 대표 품종인 템프라니요였단 걸 이제는 깨닫게 되었고,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은 밸런스가 평이하고 섬세한 레드인데 반해, 남편이 좋아하는 와인은 탄닌이 높고 묵직한 레드였음을 알게 되었다.
와인을 입문할 때 '누군가에 의지해 구매하지 말고, 내가 직접 가성비 와인을 골라보자.' 여겼던 다짐을 어느새 차츰차츰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 성취감도 쌓인다.
이번 주말에는 또 어떤 와인과 음식을 조합해 마셔볼까. 새로 마셔볼 와인의 맛은 또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