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다시 가고 싶었던 곳
17살, 처음 비행기를 타고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갔다. 비행기가 달려가는 느낌도 붕 하늘로 떠오르는 느낌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때, 마라도에 갔다.
우리는 선생님들이 심혈을 기울여 짠 코스대로 이동했다. 한국 지리 선생님은 제주도 지형에 대해 따로 책자를 만들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항 될지도 모르는 마라도를 고등학교 수학여행 코스에 넣은 것 자체가 참 대단한 일이었다.
마라도에 가는 날, 날이 참 맑았다. 파도도 바람도 적당해서 배가 무사히 뜰 수 있었다.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 밖에서 바람을 맞았다. 어딘가 먼 곳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배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마라도는 작고 납작한 섬이었다. 세상에 나무도 거의 없는 들판이었다.
1시간 40분이라는 짧은 관람시간 동안 어떤 아이들은 기필코 짜장면을 사 먹기도 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최남단비까지 갔다 오기에도 빠듯했던 시간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들판 뿐이었던 작은 섬. 마라도를 뒤로 하고 아쉽게 여객선에 올랐다.
다음에 꼭 한 번 오겠다고 다짐하면서.
마라도에 갈 기회는 두번째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혼자 제주를 여행하러 갔을 때였다. 자동차 렌트도 하지 않고 한 게스트 하우스에만 나흘을 묶었다.
관광지도 가지 않고 동네만 돌아다니면서 산책하고 한국사 공부를 했다.
그래도 마라도에 가보고 싶었는데 아침에 느지막이 선착장에 도착하니 이미 가는 배, 오는 배 전부 예약이 차 있어서 갈 수도 없었다.
며칠 전까지는 파도가 거세서 배가 뜰 수도 없었다고 했다. 세상에 마라도가 이렇게 가기 힘든 섬이었던 건가.
거의 20년만에 마라도에 간다.
일주일 전만 해도 바람과 파도가 심해 배가 뜨기 힘든 날씨였는데 쨍하고 날이 개었다.
전날 밤 미리 표도 예약해 놨다. 이제는 매표소에 가지 않아도 배 티켓을 인터넷으로 결재할 수 있었다.
티켓 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향하니 어제만 해도 텅텅 비어있던 티켓은 단체 관광객들로 매진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섯살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열일곱살 떨리는 가슴으로 탔을 그 배에 올랐다.
바다는 그때도 지금처럼 푸르렀었지.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엄마가 되어서 세 식구 함께 마라도에 오다니 감회가 참 새롭다.
동동이는 마라도 들판에서 실컷 뛰고 우리는 짜장 짬뽕을 나눠먹었다. 막상 돌아보니 참 작은 섬인데, 그때는 이 섬을 한 바퀴 돌 여유도 없이 집에 가야 했구나.
마라도에서 집에 오는 길. 배 위에서 파도를 바라보면서 온 가족이 함께 서 있는데, 신랑이 갑자기 동동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섯 살 동동이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지키는 거."
그 소리를 듣고 나도, 신랑도 웃었다. 그랬더니 동동이가 바로 말했다.
"내 꿈이 웃겨?"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동동이는 나라도 지키고 제주도도 지키고 우주와 지구, 평화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신랑의 꿈은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한 것. 나의 꿈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것.
그렇게 각자 다른 꿈을 꾸면서, 배를 타고 먼 바다를 보았다.
낮잠 투정을 하는 동동이와 함께 힘들게 마라도 한 바퀴를 돌고 집에 오니 집이 이렇게 편안할 수 없다. 당분간 마라도는 안 가도 되겠다.
그래도 제주집 가까이에 가고 싶던 마라도가 있다는 것 만으로 마음 한편이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