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아스투리아스 당일치기 (1)
난 지금 스페인 아스투리아스의 오비에도. 여기 왜 왔나면 마드리드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너무 비쌌거든. 결국 아스투리아스에서의 10시간 경유를 택했어. 처음엔 생소한 지명에 위험한 곳은 아닐까, 공항에서만 10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알고 보니 스페인 자국민들이 사랑하는 여름 휴양지였어. 더운 나라의 사람들은 여름 휴가를 비교적 시원한 북쪽으로 온다고 해. 아스투리아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기원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위치했던 북부 지역으로 정말… 시원해! 마드리드에서 반바지와 하와이안 셔츠 차림으로 출발해 아스투리아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한기에 깜짝 놀랐다. 마드리드가 30도, 이 곳이 15도이니 기온이 정확히 두배 차이가 나. 바로 화장실로 가서 긴팔 옷으로 갈아입었어. 아스투리아스 tmi를 두 개만 더 보태자면 첫째. 구글맵을 보다 알게됐는데 아스투리아스 공항에서 차로 두시간이면 알타미라 동굴에 도착해. 둘째. 아스투리아스는 3500여년의 역사를 가졌어.
구글 리뷰에서 아스투리아스 공항이 작다고 하길래 자다르 공항 정도의 소-소-소규모일 것이라 예상했지. (참고로 크로아티아의 자다르 공항은 정말 작아. 벤치마저 10개가 채 안 된다.) 근데 도착해보니 왠걸, 기념품샵까지 있을 건 다 갖춘 공항이었지 뭐야. 예상보다 만족스러운 시설에 조금만 더 앉아있다 가야지, 시간도 많은데… 미적댔다. 결국 정오에야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천천히 걸어갔어. (나중에야 깨닫지만 이건 첫번째 불행의 원인이 됐지! 두번째 불행도 있어. 계속 들어봐.) 한적한 정류장에는 헷갈릴 여지 없이 딱 한 대의 버스가 주차돼 있었어. 버스 입구로 다가가니 기사가 경쾌하게 “오비에도?”를 외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투리아스 공항에서 오비에도까지 가는 버스 값은 9유로. 기사는 나에게 티켓을 건네곤 꺼져있던 버스의 시동을 걸었어. 승객은 오직 나뿐. 그 넓은 버스를 기사와 나 둘이서 독차지한 채 1시간 조금 안 되는 거리를 달려 오비에도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1시.
오비에도의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스톡홀름과 마드리드의 절충 같달까. 깨끗하고 반듯하되 오랜 세월의 흔적 또한 느껴진다. 연로하지만 단정함과 사랑스러움을 간직한, 아주 잘 늙은 할아버지 같다고 생각했어. 희한하리만큼 몸에도 힘이 넘쳤어. 새벽 비행기를 타느라 아주 일찍 일어났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에도. 또 가벼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30분 간 경사길을 오르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어.
오비에도에서 첫 목적지는 Sidreria El Gato Negro라는 사과주바였다. 가게 앞에는 Never trust who doesn’t like cats라 쓰여진 문패가 있었어.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이곳에서 구들 번역기와 몸짓으로 간신히 자리를 안내받았지. 염소치즈와 소고기 하몽이 들어간 카초바(라고 알았는데 지금 계산서를 확인해보니 기본 카초파인가봐)와 시드라를 시켰어. 시드라 한 잔을 생각하고 주문했는데 한 병을 줘서 조금 당황했다. (한 병이 약 4000원으로 꽤 저렴한 편.)
시드라(Sidra)는 사이다의 기원이 되는 사과주야. 이곳 오비에도의 전통주이기도 하고. 그 따르는 법이 특징인데, 술병은 머리 위로 한껏 올리고 잔은 배 아래로 한껏 낮추어 길게 떨어뜨리는 거야. (그리 따르는 이유는 산도를 낮추기 위함이라고 해.) 큰 낙차로 떨어진 술에는 소량의 거품이 일지. 이때 뽀글뽀글한 시드라를 따른 즉시 원샷해야만 해. 그래야 거품 때문에 향이 풍부해지고 질감이 부드러워. 또 탄산감이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 청량감을 높이기도 해. 그러나 화려한 퍼포먼스 중 흘리는 술이 잔 안에 들어가는 술보다 많다는 단점도 있지.
이처럼 붓는 법이 까다롭다 보니 손님이 직접 따라 마시긴 어려워. 대신 웨이터가 수시로 테이블로 찾아와 요란하게 따라준단다. 웨이터는 내 시드라를 따를 때마다 날 뚫어지게 보며 ’즉시 원샷‘을 강조했어. 혹여 내가 한두 모금만 마시고 잔을 내리면 그렇게 마시는 게 아니라며 한껏 못마땅해했지. 나중에 알았는데 여기선 술을 끊어 마시는 걸 아주 촌스럽다고 생각한대. 그치만 난 타지에서 홀로 대낮부터 취하긴 싫었어! 끝까지 웨이터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홀짝댔다.
두번째 행선지는 마트였어. 스마트폰 충전 케이블이 고장났거든. 요리조리 꺾다 보면 운 좋게 조금씩 충전되기도 했던 전선이 아스투리아스에서 완전히 사망했어. 미련을 갖고 온갖 각도로 꺾어보았지만 어림 없었다. 새 걸 사야한다는 걸 인정하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 여기서 뜻밖의 행운.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애타게 찾아다니던 계란프라이 감자칩이 눈 앞에 나타났다! 감자칩과 충전 케이블을 결제하고 기분 좋게 미술관으로 향했어. 충전기도 다이소보다도 저렴했거든. 2.5유로 정도?
혹시나 궁금할까 후기를 남기자면, 계란프라이 감자칩은 아주 익숙한 맛이야. 센 불에 식용유를 듬뿍 넣고 프라이를 하면 그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바싹 튀겨지잖아? 그 거무스름한 끝부분만을 잔뜩 모아 씹는 맛이란다. 나쁘지 않아. 10점 만점에 6점을 주겠어.
그러나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미술관에 도착해서야 알았어. 토요일엔 미술관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걸. 현재 시각은 2시였고 나는 4시에는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지. 그렇게 미술관 시간을 미리 확인하지 않고, 또 공항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결국 아스투리아스 미술관은 못 가게 됐어. 그렇게 어제가 소로야와의 첫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된 거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