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스푼 Jun 15. 2022

뭐 해 먹고살지?

중년, 전환기의 위기를 맞은 사람들과의 푸념


‘뭐 해 먹고살지……’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푸념이다.


푸념, 마음속에 품은 불평불만이라고 사전에 해설은 되어있으나, 그것보다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뾰족한 답이 없으면 그게 푸념이다.


‘지금처럼 먹고살면 되지. 뭘 맨날 걱정이냐? 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같은 소리를 했어.’


‘올해는 달라. 정말로 걱정이야.’


‘내년에도 그 소리 할 거면서…… 그래서, 술은 또 내가 사는 거냐?’


‘아냐, 오늘은 내가 사야지.’


그제야 이 친구 고민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주변의 동년배들을 보면 대부분 전환기적 고민을 하고 있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가정에서 할 일은 막중하지만 군 복무처럼 대충 세월에 비벼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본인 나이는 법적인 정년에 성큼 다가와 있고, 사회적 정년은 계기판에 연료경고등 켜진 만큼 남았고, 업무적 수명은 지나간 지 오래다. 다만 평균수명은 해운대에서 대마도 볼 때처럼 보일 듯 말 듯 멀어져 있다.


350만 년 인류 역사를 따라 살아온 유전자가 아마 처음 겪어보는 상황일 것이다. 연어들처럼 때 되면 회유해서 알 낳고 그 뒤는 고민 없이 죽어버리는 것이 가장 깔끔한 유전자의 생존법일 텐데 사람에게는 이제 그런 깔끔함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밈(meme) 이란 것이 실제 있어서 사회적인 것도 유전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오래 살게 된(아니 더 많이 분화해야 하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예정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래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유전자들의 덩어리인 사람도 결과적으로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머티리얼 한 답을 내렸다.


나도 생각해 봤다. 같은 고민을.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요즘 일은 요즘 사람들이, 지난 일은 지난 사람들이’


요즘은 플랫폼 경제라고 하고 일자리도 그쪽이 늘어간다. 플랫폼 세상에서 살아야 할 수 밖에 없게 됐는데 그렇다고 해서 플랫폼 노동자의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세상에는 플랫폼을 만드는 자, 응용하는 자, 이용당하는 자 세 가지 부류가 있다. 만드는 자는 앉아서 큰돈을 벌고, 이용당하는 자는 뛰면서 푼돈을 번다. 아무나 플랫폼을 만드는 자가 될 수 없지만 누구나 이용당하는 자는 될 수 있다. 수요공급에 따라 누구나 될 수 있는 쪽이 피곤한 쪽이 되는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플랫폼이 어둡다는 건 노동자 일 때 그렇다. 그런데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노동자, 즉 본인을 생산수단으로 쓰고 있는 사람은 동서고금 피곤한 쪽이다.


오늘은 플랫폼을 응용하는 자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요즘의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요즘의 덕목이다. 이들의 특징은 휴리스틱 한 지식(Heuristic knowledge, 자기발견적 지식)이 발달한 사람들이다. 좀 거창한 단어 같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같이 고스톱을 치지만 돈을 다 따가는 사람, 얼굴은 별로인 것 같은데 인스타에 팔로워 무척 많은 사람, 같이 공연표 예약을 해도 좋은 자리 잘 차지하는 사람, 항상 나보다 저렴하게 항공권 구매하는 사람, 블로그에 별 내용은 없는데 검색결과 맨 위에 있는 사람 등.


인스타그램, 블로그, 항공권 사이트, 예약사이트는 플랫폼이다. 물론 고스톱 담요도 눈에 보이는 플랫폼이다. 그 위에 플랫폼만의 규칙이 있고 규칙 속에 예외도 있고, 애매한 규칙도 있고, 아직 정의되지 않은 규칙도 있다. 단순해 보이는 고스톱도 동네마다 룰이 다른 것처럼.


이런 플랫폼에서 최대한 유리한 지점을 찾아내는 능력은 책에 없다. 그런 책을 찾아보는 순간 플랫폼은 진화를 해서 책은 더욱 필요 없다. 흔히 말하는 ‘북 스마트(book smart)’가 무력화되는 지역이다. 자기발견적 지식은 고정화된 매뉴얼에 의존하지 않는 영역이다. 플랫폼은 갈수록 진화하고, 플랫폼끼리 연결이 되며(쿠팡에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보면 그 물건이 구글에서 자꾸 보인다.) 플랫폼들은 AI의 개입이 점점 증가해서 개발한 사람도 입력에 대한 산출값을 콕 집어내기 어렵게 됐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상단에 노출되는 방법을 그거 만든 사람이 판매자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처럼 순간순간 스스로 가설 검증해가며 인공지능 작동하듯 생각해서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휴리스틱 한 지식인이다. 어쩌면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에 더 가까운 유형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사회적 성공의 공식은 지배적이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었다. 그러기 위해 많은 돈을 활자로 굳어진 책과 학원비로 소비해 왔다. 세상에 플랫폼이라는 게 없거나 약하던 시절에 인간이, 인맥이 플랫폼이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을 가면 좋은 연봉을 받지만 결국, 직장인 범주의 수익이다. 게다가 나이 들어 뭐 해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은 같다. 요즘은 좋은 직장보다 더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럴 수 있는 기회도 늘었다. 대표적으로 플랫폼을 응용하는 사람들이다. 플랫폼을 잘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없거나 있어도 별 소용없다. 책에 답이 없다는 것이고, 그 답은 위에 언급한 ‘자기발견적 지식인’들이 가장 잘 찾아낸다. 그들이 현시점에서 먹고사는 고민을 잘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자기발견적 지식은 노력한다고 늘까?


회의적이다. 특히 내 친구들에겐 더욱 회의적이다.


요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동 미션의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안다고 자동 미션 운전을 더 잘한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요즘 자동차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사용할 줄 모른 체 열심히 핸들을 잡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전환기의 위기를 맞고 있는 산란 후의 연어들이 좀 더 살아 볼 수 있을까?


음… 오늘은 여기까지. ^^

작가의 이전글 砲身의 追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