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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스푼 Jan 26. 2023

2022 올해의 한자 脫

나의 2022년을 정리하는 한자로 脫을 꼽았다


2022년 올해의 한자 :


나의 2022년을 정리하는 한자로 脫(벗을 탈)을 꼽았다.


해마다 나를 위한 세레모니로 한 글자씩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큰 일들이 있었다.


가장 큰 기억은 가장 아픈 기억이다. 아버지께서 긴 투병 끝에 하늘로 가셨다. 투병의 고통을 벗고, 마음은 평안하시기 바란다. 아버지만 보내드린 것은 아니다. 올해로 기이(期頥)의 연세였던 할머니도 아버지 여의고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 만나러 하늘로 가셨다. 중상(重喪)의 슬픔이었지만 마음만큼 슬퍼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묘한 관계를 너그러이 풀지 못한 후회와, 코로나 때문에 많은 자식과 손주들을 두고도 수년의 격리 끝에 하늘로 가신 할머니에 대한 죄송함에 슬픔도 편하지 않았다. 탈상(脫喪)을 의미하려고 脫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서 그 글자가 생각났다.


좋은 의미에서 탈(脫)도 있다.


원래 한자에서는 뼈에서 고기를 발라낸다는 의미로 만든 형성자다. 고기를 발라낸다, 벗겨낸다… 뭐 그러다가 벗을 탈로 변했을 것이다.


올해, 세가지를 발라내거나 벗어났다.


우선 첫번째 탈(脫)은, 발라낸 것이다. 


발라낸 것은 인연이 오래될 필요 없는 사람들을 발라(脫)냈다. 일년 동안 가장 많이 읽은 책의 주제는 소시오패스에 관한 것이었고 내 인간관계의 약점을 그로인해 좀 알게 되었다. 나의 관용적이고 성찰적이며 명분중심적인 성향이 소시오패스가 접근하기 좋아하는 유형이었다. 적어도 인생에 두 명의 소시오패스가 있었다. 뭔가 그들을 위해 안 해주면 이상하게 불편했던 인간들이다. 친구로서 선배로서 돕는다 생각하고 흘러왔던 관계였는데 그런 관계가 위험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보면서 단정했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 그들은 '소시오패스' 가 맞다. 누군가 나와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불편해 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소시오패스라 생각하면 된다. 너무 심한 단정인가 싶지만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다. 사람을 좋아하니까.


두번째 탈(脫)은, 불안에서 벗어(脫)난 것이다. 


불안의 근원은 가난이다. 매슬로우 욕구이론에 비유하자면 생리적 욕구에 대한 불안은 늘 마음의 기저에 있어왔다. 즉, 다시 가난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은 아닌가, 먹고, 자고, 입는 지금의 행복이 모래성 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근심이 늘 있었다. 유년기의 상처였을 탓이다. 욕구이론의 가장 아랫부분이 불안했으니 그 위에 쌓은 욕구들은 얼마나 불안한 상태였겠는가. 그 불안함이 지금의 내가 된 것이겠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나는 불안에서 벗어났다. 정확히 표현하면 거지는 절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심이다. 안심을 얻기까지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아내에게 고맙고, 친형처럼 도와주는 기천도사님에게도 고맙고 지금 의지하고 있는 김대표에게도 고맙다. 많은 소시오패스들의 공격이 있었지만 그래도 도와주는 소셜한 분들의 도움으로 탈없이 즐겁게 살고 있는 걸 보면 인간관계란 것이 참 재미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음의 자본관계에서 벗어나 양의 자본관계를 만든 것은 내 인생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큰 변화이자 발전이다. 


세번째 탈(脫)이다. 나는 제대로 젊음에서 벗어(脫)났다. 


제대로 50이 되었기 때문이다. 청년기에 배운 공부는 써먹을 수 있는 만큼 써 먹은 것이고, 그 덕에 얻은 직업에서는 효용을 다해간다. 공부를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요즘 일은 요즘 사람이 하는 게 맞다. 앞으로 사람들은 엔잡러(N잡러)가 늘어날 것이고, 엔잡러가 아니면 N-1의 실업자로 살게 될 것이다. 나는 거기에 더해 1차직업과 2차직업이라는 N차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가만 보면 인생이 늘어진 시대를 산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과거에 20대가 해야할 결혼을 40대가 하고, 30대가 해야할 육아를 50대가 한다. 60이면 맞이해야 할 황혼기는 사라지고 길어진 수명만큼 늘어진 노동을 해야한다. 젊음을 온전히 벗어나 버린 나는 어떤 N차 직업을 가지게 될 지 궁금하다. 


이렇게 그 동안의 부정적 관계를 발라내는 과거의 탈, 음의 자본관계을 벗어나게 된 현재의 탈, 탈(脫) 젊음 후에 나의 N차 직업을 기대해보는 미래의 탈. 이렇게 세가지의 탈을 올해의 나를 대신하는 글자로 뽑아봤다.


포정이 해우하듯 뼈와 살을 잘 발라내서(脫) 앞으로 뼈를 달라고 하면 뼈만 주고, 살을 달라고 하면 살만 줄 수 있을 만큼, 이제는 스스로 근신할 수 있어서 탈(脫) 젊음의 상태가 오히려 안정이고 느긋하다.


탈(脫), 벗다, 벗어나다. 


그렇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유를 한 글자로 줄인 것이다.


올해에 선정한 이 글자가 나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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