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움을 위한 조용한 준비
올해도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올해의 한자는 瑞(상서로울 서)
상서롭다. 祥瑞롭다는 말도 이제는 사멸되어가는 단어이기는 하다. 흔한 말로는 ‘촉이 좋다’ 정도가 어울릴 것 같다.
나에게 무엇이 상서로운 일이었을까?
올해를 시작하며 나는 비움의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작년의 한자가 ‘탈(脫)’ 이었기 때문에 비워진 상태에서 출발했고 그런 마음으로 가볍게 지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 비움이 미니멀리즘도 아니고 니힐리즘도 아니다. 그냥 살면서 마디 하나가 필요했다. 대나무가 성장하려면 마디가 필요하듯이.
그래서일까? 올해 가장 긴 코로나가 끝나고, 오랜만에 큰 목적이나 바램 없이 바다 건너 가족여행을 갔다.
스위스.
가족여행을 종종 다녔지만 이번처럼 마음 편하게 길을 나서기는 오랜만이다. 늘 해외에 가면 일이 생겼던 징크스가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일 하나 없이 편한 마음으로 다녀왔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과거 해외 워크샵 중에 회사의 자료를 조작해서 악성 투서를 보낸 사람이 있었다. 소시오패스 유형 중 두번째인 밴댕이형이다. 그 피해는 작지 않았다. (소시오패스에 대한 글 참고)
그리고, 다른 여행을 갔을 때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성추행 건으로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미투사건이 사회적 유행이었던 터라 억울한 사연도 많았던 시절이다. 나는 그 사건의 진위는 알 수 없다. 계속 매달리는 전화 통에 여행은 망쳤지만 귀국을 해서도 억울하다는 사람 구해주려고 성의를 다해 금전적, 법률적 지원을 해준 결과 사건은 합의의 수준에서 넘어갔다. 그게 문제였다. 그러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탓에 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그 피해는 첫번째보다 컸다.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먹고 사는 소시오패스의 첫번째 유형인 살모사형이다.
이처럼 나의 해외여행은 떠나 온 한국에서 사고가 많았고 여행은 불길함의 시작이었다. 즉 상서롭지 못한 것이 여행이었는데 이번 스위스 여행은 징크스를 벗어난 첫번째 여행이다.
조심스러움을 키운 덕에 일상의 불길한 씨앗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불상(不祥)한 일이 없다는 것, 그것은 서(瑞)한 것이고 상서로운 것이다.
스위스에서 만난 상서로움, 스위스를 한자로 서국(瑞國, 瑞西)이라 한다는 점에서 묘한 통쾌함이 있다.
그렇게 상서로운 곳, 서국(瑞國)을 11월에 또 갔다.
이번엔 일이 있어 초대받고 가 본 출장이었다.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 이 정도면 나와 스위스는 상서로움의 상승(相乘)관계가 아닐까 싶다.
상서롭다는 것.
이 말은 부정을 포함하는 형용사다.
현재의 불안, 불길함이 불편해서 생겨나는 바램이다. 이런 불편을 부정하고 희망하는 미래를 투사해보는 언어다. 당연히 상서롭다는 말은 내일의 단어일 수밖에 없다.
나의 내일, 나의 내년을 위한 일년 동안의 준비가 결국 내가 선정한 올해의 한자다.
전반적으로 올해는 무엇을 하려했던 해는 아니었다.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적극적인 자유다. 능력 있는 자의 자유이기도 하다. 나는 올해를 시작하며 무능력의 자유를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그런데, 오선지의 쉼표도 음악이듯, 하지 않는 중에도 뭔가는 하고 있는 상황이 올해의 인생인 것 같다. 2023년 상서로운 나라를 두 번 딛어보고, 2024의 상서로운 기운을 기대해 본다.
오늘, 잔뜩 흐리게 출발한 날씨라서 찬겨울의 상서로운 서설(瑞雪)을 기대했지만 봄비 같은 세밑의 비가 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