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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치 Oct 31. 2021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은 "무목적성의 목적성이다"

#18. 그동안 얼마나 나의 흥겨움과 이어지고자 했는가?


언제부턴가 숨쉬기가 힘들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나는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지난 4개월 동안 16개의 수업을 들었고, 드로잉과 디자인, 다큐멘터리 제작, 업사이클까지 다양한 활동을 했다.


애초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겠다고 시작한 여정인데 너무 많은 도전을 해서 그런 걸까

실패의 연속이라 그런 걸까

언제부턴가 여유가 사라졌고 모든 것이 벅차게만 느껴졌다.




힘들어서 바느질을 대충 하고 싶은데 대충하고 나니 옷이 더 꼬인다.

다시 바느질했던 실을 뜯고 천을 붙였다, 뗐다 반복하니 시간은 더 걸린다.

'원래 오늘은 여기까지 완성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큰일 났다! 하기 싫어졌다!
너무 정성 들였나 보다!
- 같이 옷 짓던 친구의 탄식



그 탄식을 듣자니 나도 너무 많은 노력을 한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 그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많은 활동과 공부만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태도로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쉬는 시간을 가지며 다시금 생각해봤다.





다시 묻는다. 뭣이 중헌디


나는 어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불안함을 지우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빼곡히 채워왔지도 모른다. 10년간  마음과 몸을 쏟았던 활동을 마무리하고 나니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 활동을 포기했어야만 하는 현실을, 실패감을 견디지 못해 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밥로스 아저씨 말처럼 그냥 세상과  삶을 사랑하면 그만인  아닌가? 하.. 사랑하기 참 쉽지 않네


진정한 놀이는 단순히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며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즉흥적이다. 진정한 놀이는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태도다. 동물원에서, 혹은 그네를 타면서, 심지어 장을 보느라 줄을 서거나 저녁식사를 차리는 중에도 경험할 수 있으며, 언제든 우리가 기쁨에 열려 있기만 하다면 바로 거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놀이는 웃음 가득하고 유쾌한 감정이 원만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잊고 무엇인가에 푹 빠졌던 때가 언제인가? 우리가 그런 것을 허락한 유일한 때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때가 아닐까?
흥겨움에는 특별한 장치나 기술,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 흥겨움은 자발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기회라면 어느 때라도 놓치지 않는 자세를 뜻한다. 여러분이 조금만 창조적이라면 지극히 세속적인 허드렛일조차도 재밋거리로 바꿀 수 있다.
이 일은 나 자신의 재미있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부분, 즉 나의 감각적인 내면 아이, 마음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풀려나 창조할 수 있는 그 아이와 내가 맞닿아 있느냐에 달려 있다.- 내 안의 어린아이


나는  책을 읽고 과거 10년간의 활동 언젠가부터 점점 재미없어진 이유가 어쩌면 활동만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은 내게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의 흥겨움과 이어지고자 했는가? 그러면서도 나 자신의 힘을 지니며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른의 몸을 한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삶 속에서 창조하는 힘.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기 위한 힘. 그런 힘을 키워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했던 시를 서랍에서 다시 꺼내 본다.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나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 인생, 릴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은 "무목적성의 목적성이다"


칸트는 예술을 “무목적성의 목적성이다.”라고 말한다. 미 자체는 다른 목적이 없지만 그 목적 없음이 목적이 된다는 말이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미(美) 그 자체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 유용성도 아니고 무엇을 의도하는 가치 추구도 아니다. 무목적성의 목적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새로운 방식으로 쾌감을 느끼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본질이자 미학의 원리다. 아무런 목적이 없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서 아름답기 때문에 즐겁고 유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말처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에 있어 특정한 가치와 유용성 같은 것들에 목적을 두지 않을 수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과제가 되지 않고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러분 그림이요. 너무 힘들게 그리지 마세요. 그리는데 하루도 재미있는 순간이 없고 매일매일 힘들기만 하면  맞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걸 쉽게   있을까? 고민해보세요.
힘을 빼는 방법을 아는 것은 중요해요.
힘을 빼야 친구처럼 계속   있어요.
- 이연



열정, 열정, 열정에  몸을 불살랐던 사회초년생 시기를 지나 번아웃에 허덕이는 30 중반이 되기까지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힘을 빼고  흐르듯이 살아가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점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다시 열정이 넘쳐흘렀던 에너지를 잠시 식히고 다시  호흡으로, 좋아하는 것을 더듬거리며 찾아가   있다면 좋겠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는 니체의 말처럼, 혼돈을 여전히 그대로 안은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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