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업사이클은 느리다. 그래서 소중하다.
나는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청년인생설계학교의 지원을 받아 업사이클과 재봉기술을 배웠다.
먼저 10년간 입지 않았던 옷 2개를 꺼냈다. 얼마 전 가지고 있던 모자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 여름 햇살을 가려줄 모자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서로 다른 재질과 색깔의 천으로 만들어진 원피스와 조끼를 가지고 양면 모자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재봉뿐만 아니라 업사이클 기술은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미 형태를 갖추고 있는 천의 구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체하고, 재단할 것인가가 업사이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옷을 해체해 모자를 만들 수 있는 천으로 다듬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결국 두 달이나 되는 긴 시간이 걸려 모자를 완성했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서 그런 걸까? 모자를 만드는 과정은 참 힘들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새로운 천으로 모자를 만들 경우 대체로 1달의 기간이 걸린다. 업사이클은 그 두배 이상의 시간 동안 노력해야 하니 솔직히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체력의 한계를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업사이클은 각 고유의 물건이 가지고 있는 역사를 살리고, 해체하는 작업이 있기 때문에 느릴 수밖에 없다.
실을 뜯는 인고의 과정이 즐거움이 되기까지
업사이클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옷을 짓다 보니 자연스럽게 옷 짓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끝이 없어 보이는 실뜯기 반복 공정을 즐겁게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옷 짓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시에서는 손바느질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잖아~ 옷 짓는 것은 급하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 같았다. 이미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는 서울에서 손바느질을 하라고 한다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도시에서 온 나는 여전히 재봉틀을 고수했지만, 함께 옷 짓는 사람들은 대체로 손바느질을 했다. 그들과 함께 있다 보면, '원래 바느질과 옷 짓는 것은 속도가 느린 것'이라는 분위기와 느린 속도를 공유받은 것이 좋았다. 그들과 함께라면 시간을 잊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손주 옷, 엄마 옷, 자기 바지를 짓는 사람들
어떤 천을, 어떤 실을 쓸지 고민하는 사람들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옷을 짓다 보니 '사랑스러운' 옷이 된다. 나중엔 "아가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하나하나의 옷에 시간을 깃들이는 작업을 하며 "나는 왜 엄마랑 자꾸 싸울까", "나도 내 딸과 싸운다", "우리 엄마 재봉질했었는데",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꼴 보기 싫어도 그 사람이 없으면.." 등등 살아가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는 게 참 좋았다.
옷은 삶을 담고 있다. 청소년인 자식들이 냄새가 나서 옷을 만들어 입히고, 바지가 터져서 다시 바지를 만든다. 옷은 계절을 알려준다. 장마철이니 반바지를 만들어주고 겨울이 오기 전 코트를 만든다.
드르륵드르륵
미싱의 흐름과 속도, 방향에 맞춰 리듬을 익혀나갔던 것처럼, 나는 손으로 옷 짓는 사람들의 속도를 조금씩 배워나갔다.
뭔가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경험은 소중하다.
만든다는 것은 그 물건을 만드는 모든 절차를 오롯이 몸으로 체득하며 지나오는 과정이다. 어떤 구체적인 과정을 거쳐 이 옷이 지어졌는지 알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아가야~"라고 부르게 되는 것처럼, '만듦'이라는 과정을 통해 더 소중한 '무엇'이 된다.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을 소비하는 사회에서 버려짐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