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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치 Feb 25. 2023

볏짚색과일박쥐는 어쩌다 아비장 하늘에 가득해졌나

숲의 정령 박쥐들의 억울한 사연


처음 코트디부아르에 오고, 아비장 하늘을 봤을 때 적잖이 놀랐다. 해질 무렵 수백, 아니 수천만이 되어 보이는 박쥐 떼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geo.fr


나는 도대체 이 많은 박쥐 떼가 왜 매일 해질 무렵에 아비장 하늘을 뒤덮고 있는지, 왜 자동차들은 박쥐 똥을 닦느라 쉴 틈 없이 와이퍼를 켜야 하는지, 왜 열어둔 창문 틈으로 내 얼굴에 자꾸만 박쥐똥을 닦는 와이퍼 세정제가 튀어야 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프리카 숲의 수호자, 볏짚색과일박쥐


아비장 하늘을 뒤덮는 박쥐의 이름은 볏짚색과일박쥐라고 한다. 이들은 아비장에서 낮동안 하루종일 나뭇가지에 매달려 잠을 잔 후 해가 지기 시작하면 1차 종착지인 (아비장의 아보보와 요푸공 사이에 있는) banco국립공원으로 가서 곤충과 과일을 밤새도록 먹는다.


볏짚색과일박쥐는 날개 아래에 새끼를 안고 함께 비행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토록 많은 박쥐가 하늘을 뒤덮는 건 가속화되고 있는 도시화와 밀렵, 그리고 벌목이 원인이라고 한다.


아비장 하늘을 뒤덮는 많은 박쥐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체의 절반이나 되는 박쥐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를 했다고 한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벌목이 일어나고 있길래 이토록 많은 박쥐가 갈 곳을 잃었을까



슈퍼히어로 볏짚색과일박쥐


볏짚색과일박쥐는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고원에 거주하며 과일을 먹고 씨앗을 삼킨 다음, 멀리 날아가 수많은 식물들을 수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일을 먹는 동물은 많지만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배설물과 씨앗을 대량으로 뿌리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숲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박쥐 무리는 연간 240만 평이나 되는 숲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다른 새나 동물들에 비해서 숲을 지키는데 박쥐의 역할이 큰 이유는 이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비장 요프공 지역 같은 곳에서 소비되기 위해 계속해서 밀렵되어 버려 개체수가 줄고 있다.


한편  세계로 수출되는 고급 가구의 원료가  이로코 나무라고 하는데,  나무를 수정하는 역할 또한 볏짚색과일박쥐들이 맡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로코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비장 하늘의 박쥐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는 이런 조건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분명 박쥐똥을 닦는 와이퍼 세정제와 고급가구 사이 어딘가에  자리가 있지 않을까. 착취되는 산림도, 삶의 터전을 잃은 박쥐도 모두 버틸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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