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와 액티브 마이라이프] 운길산과 수종사 둘러보기 (1)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꽤 있다.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것들도 꽤 있다. 도시를 덮은 운해 위로 우뚝 솟은 도봉산 연봉과 북한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를 떠오르는 해의 짙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장면을 수락산 도솔봉에서 바라보는 것, 불암산 거벽에 앉아 일출보기, 백두대간 높은 산 깜깜한 밤에 쏟아지는 별 구경 하기...
그중 내가 최고로 뽑는 경치 중 하나는 운길산 수종사에서 북한강 남한강이 하나 되어 한강으로 흐르는 그 장엄한 풍광, 특히 눈이 왔거나 추위가 계속되어 강물이 얼어 있을 때의 모습.
나는 혼자서 달리거나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새로운 경험을 위해 전과 다른 코스나 시간에 시도하길 즐긴다. 같은 곳이라도 시간과 계절, 날씨에 따라 풍광과 느낌이 달라진다. 새벽이나 해 뜰 때, 비 올 때, 눈 올 때, 꽃 필 때, 단풍이 쌓였을 때...
혼자서 움직이면 그 시간, 그 장면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 몰입은 목적을 잊게 만든다. 산에 가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도 아니요, 건강을 위해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시간 내 몸과 영혼이 자연과 하나가 될 뿐이다. 그 순간이 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황홀경에 빠진다.
이런 경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아내와 두 아들과 이 멋진 장면을 같이 보고 같이 느끼고 싶다. 그런데, 쉽지 않다. 몰입의 순간까지 가려면, 고통을 동반한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가족들이 거부하면 억지로 데리고 갈 수 없다.
이제는 유키에게 이런 경험을 나누어 주고 싶다. 다행히 유키는 체력도 되고, 품성도 좋아 나와 합이 잘 맞는다. 유키가 비록 사람은 아니어도 세상에 태어나 내 가족이 되었으니, 좋은 것 많이 보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나의 운길산 산행은 내 기준으로 보면 산행이라고 할 수 없다. 산의 7부 능선쯤에 있는 수종사 입구까지 차를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운길산을 오르기보다는 유키에게 수종사의 부처님 기운을 전해주고 남한강 북한강을 굽어보는 멋진 풍광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종사 일주문을 지나면 높이 8미터의 큰 미륵불상이 서 있다. 유키 목줄을 잡고 합장으로 인사한다. "유키와 이번 생이 서로 덕을 쌓는 시간이 되게 해 주옵소서."
유키를 데리고 미륵불에 기도하니 27년 전 큰 아들이 네 살 때, 수유리 화계사 뒤쪽에 있던 미륵불에 데리고 가서 기도했던 생각이 났다. 가난한 내 어머니가 나를 위해 치성을 드리면서도 싸가지고 간 음식을 다시 가지고 오기 위해 대웅전에서 못 빌고 그 뒤에 있던 바위에 새긴 미륵불이었다. 그때도 한 겨울이었다.
미륵불에 기도 드리고 제단에서 내려오는데, 하의가 승복 비슷한 것을 입은 분이 유키보다 훨씬 큰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입구 카페에서 나왔다. 강아지를 무척 좋아하셨다. 유키를 보고 잘 생겼다고 칭찬하고, 사람에게 붙임성 좋다고 예뻐해 줬다. 그 분의 큰 개도 짖지도 않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다만 유키가 반가움의 표시로 앞발을 들어 다가가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분이 먼저 수종사 쪽으로 올라갔다. 나는 잠시 더 머물다 쫓아갔는데, 벌써 보이질 않았다. 예전에 수종사에서 보았던 그 개인가. 하여간 나는 수종사를 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돌계단길이 아니라 높은 축대 아래 비상차량이 다니는 가파른 시멘트길로 갔다. 그 끝에는 수종사의 명물 중 하나인 5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은행나무 옆 축대 위에서 바라보는 양수리 두물머리 풍경이 유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북한강 물은 얼어 있었다. 얼어붙은 강물 위에 눈에 쌓여 있고, 그 위로 새로 만든 양수철교, 지금은 자전거길로 이용되는 옛 양수철교, 양수대교, 그리고 한강 합수부 6번 국도 신양수대교가 선으로 보인다. 그 위로 남한강과 광주 여주 쪽 산들이 어깨를 걸고 이어진다.
영하 10도 이하라고 하는데, 바람이 없어서 그런지 이곳은 그리 춥지 않았다. 유키와 수종사 경내로 들어갔다. 대웅전 앞을 지나 다실 옆 전망대 쪽으로 갔다. 내 눈으로는 좋은 전망이지만 낮은 담장이 있어 유키는 나와 같은 것을 보기 힘들듯 하다. 그래, 아까 은행나무 옆에서 바라본 전망으로 만족하자.
수종사에 가면 늘 들르는 다실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유키를 묶어두고 들어가긴 싫고, 그렇다고 데리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 하는 수 없다. 수종사 다실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냥 동양화 그 자체다. 특히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 양수리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이런 모습을 두 아들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데, 따라나서지 않으니 유키에게라도 보여주어야 하는데... 유키와 나의 독점적인 전망대는 역시 500년 은행나무 옆이다.
예불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꽤 보이는 것 같아 유키와 나는 서둘러 절을 떠났다.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절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강아지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분들이 유독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유키와 나는 계단길로 내려와 이제 운길산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계속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