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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구 Jan 31. 2022

가파른 바위길 오르며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유키와 액티브 마이라이프] 암릉이 유명한 양주 불곡산을 오르다

유키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산에 더 잘 적응하고 있다. 이제는 험한 산에 가도 호흡이 잘 맞는다. 


설날 전날인 1월31일. 유키와 오래동안 벼르고 벼렀던 양주 불곡산 산행을 했다. 불곡산은 서울 가까이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암릉의 기묘한 모습과 양주 벌판에 우뚝 솟아 전망이 좋은 산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짜릿한 바위맛을 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불곡산 백화암에서 정상인 상봉으로 오르는 계곡길은 상당히 가팔랐다. 하지만 유키는 경쾌하게 앞서 오르며 틈나는 대로 나를 쳐다보며 교감했다. 

산을 좋아하는 내가 지금껏 불곡산을 가보지 않은 것에 대해 친구들이 의아해 했다. 사실 나는 어느 정도 나이 먹은 후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산에 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산을 가보진 못했다. 아주 유명한 산 또는 집 가까운 산이 전부다.


요즘은 산에 유키 없이 가는 것은 재미없다. 유키가 나와 보조를 맞춰 산길을 걷는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런데 유키를 데리고 가려면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 이왕이면 같은 코스 왕복산행 보다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고 싶다. 간단한 조건 같지만 이 조건에 맞게 산행코스를 잡는 것이 쉽지 않다. 긴 코스를 가던가 아니면 내려와서 주차장까지 택시를 타야 한다.


그런데 불곡산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백화암에서 바로 불곡산 정상인 상봉으로 올라가 암릉을 타고 임꺽정봉~악어바위~전통숲길~백화암으로 원점회귀 하는 코스가 보였다. 시간과 거리 모두 내가 원하는 딱 그 정도였다.

산행기록은 램블러(ramblr.com)라는 앱을 이용한다. 유키와 산에 갈 때는 원점회귀 산행이 가장 좋다.

집에서 백화암 주차장까지는 40분 정도 걸였다.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불곡산 계곡 백화암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었다. 불곡산 정상인 상봉으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이기도 하다. 


산행 채비를 갖추는데, 예상보다 춥지 않았다. 유키를 데리고 가는 산행에다 암릉이 많다고 하여 노르딕워킹 폴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백화암 옆으로 등산로 표지가 있었다. 처음부터 가팔랐다. 유키는 낙엽 냄새를 맡더니 변욕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항문이 실룩거렸다. 


빠른 걸음으로 절 구역을 벗어나 낙엽 무성한 곳으로 유키를 이끌었다. 유키는 엉거주춤한 특유의 자세로 나를 올려다 보며 볼일을 시원하게 보았다. 몸이 가벼워진 유키가 이제부터는 경쾌하게  나를 앞서 이끌고 간다. 

백화암 계곡 오르막을 벗어나 상봉으로 가는 능선 암릉길 모습. 불곡산은 표고는 그리 높지 않지만 평원 위에 우뚝 솟아 높은 산 등산하는 것만큼 가파르다.

백화암에서 상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아주 가파르고 돌이 많았다. 불암산이 거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면 불곡산은 작은 바위가 쌓여서 이루어진 산 같았다. 유키는 거침이 없었다. 어제 황금산 둘레길 6킬로미터를 걸었지만 생후 14개월된 청소년의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했다.


불곡산 능선길에 올라섰다. 양주시청에서 상봉 거쳐 임꺽정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능선이라 하지만 암릉에 가파른 경사길이었다. 유키는 큰 바위 높은 경사길도 나보다 앞서 올라 나를 아래로 쳐다보았다. 


상봉은 양주의 너른 들판에서 바로 우뚝선 모양이어서 능선에서 마지막 봉오리로 오르는 코스는 초보 등산객에게는 좀 두려움을 줄수도 있을 정도였다. 수직으로 2미터 정도 되는 구간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버팀장치를 바위에 박아두었다. 유키는 발디딤 장치를 밟고 오를 수는 없었다.

이른 아침 불곡산 정상에 섰다. 유키는 특유의 시크함으로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힘들지 않은체 했다.

유키를 안아 올려주었다. 유키는 예전과 달리 순순히 안겼다. 엉덩이를 받쳐든 나의 왼손이 11킬로그램 나가는 묵직한 유키의 무게를 오래 감당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상봉까지는 이렇게 유키를 내 손으로 받쳐 올려주어야 하는 곳이 두 군데 더 있었다.


상봉을 오르는 가파른 암릉에 서 있는 유키의 모습이 당당해 보여 잠시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다.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상봉에 오르니 사방이 트여 있다. 해가 뜬지 오래지 않아 연무가 많지 않은 공기라 멀리까지 보였다. 동쪽으로 수락산 불암산이 가까이 보이고,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잠실 롯데타워가 멀리 보이고 도봉산 북한산의 서북쪽 얼굴이 보였다. 아래로는 사방이 벌판이었다.

상봉에서 임꺽정봉으로 향하는 암릉코스. 뒤에 보이는 높은 봉오리가 임꺽정봉이다.

 상봉에서 임꺽정봉으로 가는 암릉길은 좁고 아주 가파랐다. 높은 곳에 올랐을 때 느껴지는 다리 힘빠짐과 후들거림이 느껴졌다. 아주 가파른 내리막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유키가 내려가기에는 좀 무리다. 계단은 앞쏠림이 너무 심해 유키가 내려가더라도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안고 내려온다.


좁고 가파른 암릉을 피하는 우회로도 있었지만 불곡산을 처음 왔으니 정코스대로 가보고 싶었다. 임꺽정봉으로 가는 암릉길 중간에 상투봉도 들렀다. 상투봉부터는 엄청난 경사의 내리막. 그래도 유키는 자기가 디딜 수 있는 곳을 잘 찾아 겁없이 내려간다. 내리막에서는 나를 끌어당기면 안되기에 나는 유키의 목줄을 계속 당기며 "유키, 천천히. 아빠를 끌면 위험하지."라는 말을 반복한다.


악어바위와 임꺽정봉 갈림길이 나타났다. 내가 본 지도에서는 악어바위로 하산하는 것이었는데. 임꺽정봉으로 가는 길을 올려다 보니 상봉으로 오르는 경사보다 더 가팔라 보였다. 그래도 언제 다시 유키와 이곳에 올 기회가 있을까. 가기로 했다.

임꺽정봉 오르는 바위길은 매우 가팔랐다. 암벽을 오르는 유키의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잠깐 멈춰 사진을 남겼다. 

임꺽정봉 오르막에서는 유키를 세번이나 안아서 올려주어야 했다. 느낌으로는 임꺽정봉이 불곡산 정상 같았으나 높이는 449미터로 상봉보다 20미터나 낮았다. 임꺽정 생가가 불곡산 자락에 있어 이런 이름을 붙인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불렀는지 잠시 궁금했다. 

그래, 유키야. 우리는 오늘 불곡산 가장 높은 두 봉오리를 다 올랐다. 잘했다, 유키. 장하다, 유키.

정상에서 유키에게 간식을 주며 칭찬했다. 나도 같은 간식을 먹는다. 아내가 만들어준 닭가슴살 저키다. 유키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시바견은 독립성이 강해 불러도 안오고 자기가 필요할 때만 다가오는 고양이 같다. 이렇게 함께 고생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교감하면서 서로 친구가 되어간다.


이제 하산을 위해 악어바위쪽으로 가기 위해 임꺽정봉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야 했다. 나는 내리막이 더 위험하게 느껴져 조심스러웠으나 유키는 좀 높은 곳은 뛰어내리며 올라올때 안아주었던 구간도 쉽게 지났다.

임꺽정봉에서 하산길을 내려보았다. 가까이 있는 능선 중간의 바위가 악어바위. 멀리 왼쪽으로 수락산 불암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잠실 롯데타워, 그 오른쪽으로 도봉산 북한산이다.

악어바위 구경하고 하산길로 접어드는 초입은 짧은 구간이지만 좁은 수직벽도 있어 유키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유키는 위험구간만 벗어나면 내 도움 받는 것을 싫어한다. 다 자기 힘으로 헤쳐나가려고 하는 모습이 아들들이 청소년기 나에게 보였던 모습 같다.


등산로가 산에서 벗어나기 한참 전에 '전통숲길'이라는 불곡산 둘레길과 만났다. 편한 흙길이다. 차를 세워둔 백화암 진입로와 만나는 곳까지 대략 1.5킬로미터 정도되었다. 출발해서 여기까지 2시간이 좀 지났다. 느낌보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평원에 삐쭉 솟은 봉오리를 가파르게 오르는 힘든 코스지만 거리는 얼마되지 않았던 것이다. 

악어바위 앞에 선 유키. 음, 당당한 내 모습이 자랑스럽다.

전통숲길을 걸으니 유키가 풀 속에 들어가 엄청난 양의 변을 본다. 많이 긴장되고 힘들었나 보다. 유키 발걸음이 가볍다. 나도 긴장감 없이 걸었다. 제주 올레길 같이 편안했다.


백화암 계곡을 지나 도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간다. 눈이 오면 차가 다닐 수 없을 것 같이 경사가 급했다. 유키는 목마른지 길가에 있는 눈을 핥았다. 한참을 핥았다. 주는 물은 먹지도 않는 아이가 눈을 먹는 것은 좋아했다. 시원한 느낌이 좋은가.


차에 도착해 유키에게 다시 간식을 준다. 대견하다. 이 험한 암릉코스를 한번도 주저하거나 힘들다고 떼를 쓰지 않고 앞서서 걸었다. 유키는 산행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나하고의 시간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주인이 시키니 억지로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나하고 산행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은데...


그래, 나하고 오랜 세월 달리고 걷고 산에 가고 세상을 즐기자. 내가 너의 관절이 다치지 않도록 늘 조심할께.  

내가 너에게 한가지 바램이 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에서는 내가 너의 목줄을 풀어주고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단다. 너가 스스로 나를 따라오고, 내가 부르면 내게 바로 달려 오길 바란단다. 지금은 너의 천방지축 행동을 보면서 목줄을 풀어줄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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