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기씨와 이별여행]① 수년간 반복된 '도둑이 들어 다 훔쳐갔어'
어머니 김숙기는 2016년 가을 초기 치매진단을 받았습니다. 계단에서 굴러 얼굴을 크게 다친 후 입원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내가 사는 집 가까운 곳에 빌라 1층 한채를 얻어 어머니 혼자 독립생활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길지 모를 이 과정이 저에게는 '어머니와의 이별여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여행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나의 노후 삶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습니다. 이런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자 이 글을 씁니다. [행인구(行人九) 주]
방금 전 있었던 일도 기억 못하고, 과거의 기억은 뒤엉켜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만 떠올리고, 집에 도둑이 들어와 훔쳐가는 것을 보았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어머니. 1938년생 호랑이 띠인 어머니 김숙기여사는 올해 85세 입니다. 나이는 기억 못하지만 '내가 범띠'라는 것은 언제나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2016년 11월 어느날, 119 구급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가 계단에서 굴러 얼굴을 크게 다쳐 응급실로 이송중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2001년 6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동두천 작은 아파트에서 15년 동안 혼자 사시고 있었습니다. 아파트가 가파른 경사길에 지어져 1층 현관까지 가는데도 여러 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5층에 사셨던 어머니는 고생은 되었지만 다리 힘만은 엄청 좋았습니다. 어머니집 가까운 동두천 소요산에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나보다 훨씬 앞서 힘차게 걸어 갔을 정도니까요. 그런 어머니가 계단에서 굴러 넘어져 크게 다쳤다고?
병원에서 어머니는 코뼈가 뿌러지고 눈 아래뼈가 금이 갔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은 횡설수설 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당황하고 아파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좀 이상했지요. 담당의사가 어머니가 치매증상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치매? 나는 그 순간 가끔 어머니집을 방문했을 때 이웃들이 내게 해주던 말과 어머니의 행동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반장님이 "어머니 좀 이상해요. 병원 한번 모시고 가보세요." "좀 횡설수설 하시고 정신이 나가신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라고 말씀하실 때 그냥 흘려들었던 그 말들이 생각났습니다.
가끔 어머니집을 찾았을 때, 집에서 식사를 한 분위기가 안보여 물어보면 어머니는 "그냥 사먹는게 더 싸고 편해."라고 답했습니다. 실용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랫집 청년 두 명이 자꾸 이 집에 들어와 쌀이며 반찬까지 다 훔쳐간다", "내가 들어온 것을 봤고, 혼내니까 둘이 부리나케 도망갔어." 말씀하셨을 때, "에이 그럴리가 있어요, 잘못 보신거예요." 라고 한 것도 생각났습니다.
의사가 어머니 치매가 의심스럽다고 할 때, 이 모든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가며 '아, 그게 치매증상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밥하고 반찬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섬망 증상으로 도둑이 들었다고 확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 밥솥에 밥이 넘칠만큼 한가득 있었던 것도 밥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어머니 치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치매와 인생'에 대해 내가 자료를 보며 공부하며 생각했던 것, 내가 치매에 걸리면 나를 어떻게 대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실천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