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기씨와 이별여행]②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 어머니께도 적용하고 싶다
어머니 김숙기는 2016년 가을 초기 치매진단을 받았습니다. 계단에서 굴러 얼굴을 크게 다친 후 입원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내가 사는 집 가까운 곳에 빌라 1층 한 채를 얻어 어머니 혼자 독립생활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길지 모를 이 과정이 저에게는 '어머니와의 이별여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여행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나의 노후 삶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습니다. 이런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자 이 글을 씁니다. [행인구(行人九) 주]
자식을 키우고 돌보는 것과 부모의 노후를 돌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돌봄의 힘듦은 자식을 키우는 것이 훨씬 더 강도가 셉니다. 그리고 견뎌낼 수 있는 희생의 크기나 힘듦의 강도 또한 자식이 훨씬 더 크고 세지요. 자식은 삶을 개척해 가기 때문에 희망이 있어서 덜 힘들고, 부모의 노후는 결론이 뻔하기에 더 힘들까요?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부모를 돌보는 것은 인간이 만든 윤리라는 것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나는 내 존재형태의 목표를 분명히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자존감을 가진 독립적인 삶. 나는 모든 사람이 이 목표를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삶의 의미는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지만 바라는 존재형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도,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이 개념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 성인이 된 지금은 '따로 또 같이'가 행동 기본 모토입니다.
어머니의 치매 발병 사실을 인지한 후 예전에 사시던 집에서 홀로 지내시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 집에 모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요. 그렇다고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분을 요양원으로 모실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어머니의 '자존감 있는 독립적인 삶'을 위해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빌라 1층을 월세로 얻어 이사하도록 했습니다. 살던 곳에서 사용하던 대부분의 집기들이 별 소용없었습니다. 하다 못해 이불이며 식기까지.
내가 조금만 도와드리면 독립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모든 것을 이에 맞춰 준비했습니다. 집에서 쓰는 물건을 갖추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단기적, 장기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인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어머니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치매등급 판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아내가 장모님의 경험이 있어 많은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다행히 5등급을 받아,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거나 방문요양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어머니를 집을 마련했지만 막상 홀로 사시게 되니 문제가 많았습니다. 새로 장만해 드린 1인용 전기밥솥에는 설익은 밭이 솥이 터질 듯 꽉 차 있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끓여 놓은 라면이 냄비에서 불어 넘친 상태로 싱크대 장에 숨겨져 있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세탁기 사용법을 완전히 잊어, 손빨래한 속내의는 빨기 전 보다 못한 상태였습니다. 방과 거실에는 빨대 비닐 껍질이 널려져 있고, 옷장 속에는 주워온 빈병이나 상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병원에 가는 일이었습니다. 퇴원 후 어머니 병원을 집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어머니 혼자 병원에 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출근해야 했고요. 아내가 일주일, 2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 모시고 가서 몇 시간씩 대기해야 했습니다. 아내의 스트레스는 컸고, 아내의 독립성을 크게 해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 모시는 문제가 부부 관계를 망치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독립성을 가능한 범위에서 보장하려고 했던 것이 아내의 독립성을 해치는 것이 되었습니다. 상황은 내가 예상치 못했고,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