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산책 Jul 09. 2020

[딸에게 쓰는 편지]6살 생일 선물로 보드판을 사줬어

- 보드판에 같이 그림 그릴까?


얼마 전에 보드판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한글과 수, 그리고 영어 알파벳을 보드판을 이용하면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이방 벽에  걸어주었다. 곧 돌아오는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우선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면서 친해지기는 바라는 마음으로 그 앞에 같이 앉아 공주 얼굴을 그려줬다.


"아빠 여기 색칠해, 머리가 너무 안 예쁘잖아"

보드판에 색연필로 색칠을 하면서 이거 지워질까 하는 걱정을 했다.

같이 놀면서 아빠는 한편으로는 피곤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 쉬고 싶다.



딸에게..

아빠가 6살 생일 선물로 '보드판'을 사 줬는데 기억나니? '보드판'에 자석으로 글자도 만들 수 있게 '자음', '모음' 글자도 두 세트를 사 줬는데 두 세트를 가지고도  아빠하고 글자를 만들면서 서로 원하는 자음을 찾을 수 없다고 싸우기도 했지. 처음에 '자음', '모음'으로 글자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지. 그렇지만 엄마가 옆에서 책을 많이 읽어줬어. 미안하지만 아빠는 저녁에 몇 번 책을 읽어주다가 아빠가 읽어주는 책은 재미없다는 이야기에 더 이상 읽어주지 않았어. 공부를 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사실 아빠가 도움을 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네


그리고 아빠랑 함께 앉아서 그림을 그렸어. 아빠는 솔직히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학교 다닐 때 그림 그리는 것보다는 색칠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없어서 그랬나 봐. 지금 아빠가 다시 해 보고 싶은 것은 다시 그림을 그려 보고 싶어, 취미를 위한 그림이라고 해야 하나? 선생님에게 검사받고 숙제를 위한 그림이 아닌 아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그림이면 좀 자신 있게 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참 그때 보드판에 그림을 그릴 때 사실 아빠는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림 그리는 것이 싫어서 그랬을 거야. 네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야. 그냥 피곤하고 그림이 그리기 싫었어. 어른들은 피곤할 때가 있어.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너랑 같이 앉아서 그림 그릴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도 이제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거야


그림 그리고 만드는 것을 너는 정말 좋아했어. 집에서도 하루에 만들기 하나, 그림은 하나가 뭐야, 주말에 집에 있으면 아침에 2~3장, 점심에 2~3장, 저녁에 2~3장은 그렸어. 그리고 그 많은 그림을 버리지 말라고 했어. 책상에 넣어두고 파일철을 만들어서 책장 안에 넣어두기도 하고 그렇게 한동안 보관했어. 그러다가 유치원을 가거나 네가 없을 때 엄마는 한 번에 그 종이를 재활용 박스로 옮겼어. 네가 그 종이들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울고불고 다시 찾아내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가능한 눈치채지 않게 조용히 정리했어. 그림 몇 장은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서 남겨 놓았는데 많은 자료를 남겨 놓지 않은 것이 미안하네, 그때 그 그림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잘 정리했다면 지금 너에게 줄 또 하나의 선물이 되었을 텐데. 아빠의 게으름으로 너에게 줄 선물이 사라져서 미안해.


오늘은 여기까지 편지를 쓸게.

6살 생일 축하해


 



작가의 이전글 역사를 쓴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