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여행이었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속초.
성인이되어 서울에서 ‘성공’을 하겠다며 당차게 고향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 - 용인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여학생을 따라 들어간 컴퓨터 동아리에서 시작한 프로그래밍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위해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혼자서 컴퓨터와 이불을 노끈으로 묶어 등에 지고 갈 수 있도록 꽁꽁싸매고 두 손으로 모니터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멋지게 성공해 돌아오겠다고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무덤덤하게 떠났던 것 같다. 용인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올라왔다. 걱정, 설렘, 두려움 .. 버스는 마침내 나를 용인에 내려 놓았다.
도착해서 컴퓨터와 이불을 들고 학교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갔다. 차가 유난히도 많았다. 속초에서 보기 힘든 러시아워를 구경하며 기숙사로 향하던 나는 한번 더 놀랐다. 그 많은 차들은 이사를 도와주기위해 부모님과 함께 도착한 대학교 동문들이었다. 나홀로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에 남다른 각오를 했던 것 같다. 속으로 ‘할 수 있다.’라고 외치며 당당하게 배정받은 기숙사로 들어갔다.
기숙사에는 일년동안 함께 지낼 사람들로 가득했고 짐을 옮기기위해 찾아온 부모님들까지 합쳐져 더욱 북적였다. 숙소에 들어가니 한 학기를 함께 지낼 룸메이트 형과 부모님이 먼저 와계셨다. 아주머니는 컴퓨터와 이불만 들고온 나를 보며 조금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금세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룸메이트 형은 체육학과였고 동생처럼 나를 챙겨줬다. 아무것도 들고오지 않은 내가 걱정되었는지 간단한 생활용품과 화장실 슬리퍼를 선물로 사주셨는데 그 슬리퍼는 졸업까지 나와 함께 했고 그때 생각이 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첫 여행은 외로움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더욱 ‘성공'에 집착했고 외로울 틈이 없다고 나를 밀어붙였다. 1학년 전공 수업은 이미 고등학교 때 다 배운 나는 2~3학년 선배들에게 붙어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그 모습을 본 선배가 나에게 연구실 생활을 제안했고 나는 대학교 생활의 다양한 재미를 조금 뒤로 하고 공부에 더욱 신경쓰기로 한다. 아마도 공부를 하며 ‘외로움’을 덮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여행 - 성남
대학교 2학년부터 연구실 생활을 시작했고 군대도 가지 않은체 대학원까지 입학하여 기세를 몰아 붙였다. 연구실 생활을 이어온 덕분에 현업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대학원과 회사를 병행했다. 회사와 학교를 동시에 소화해야하는 극한에 상황이었지만 아직까지 제 머리속에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평일에는 강의 조교와 회사일에 몰두했고 주말에는 논문을 쓰기위해 스터디를 해야만 했다. 유일한 쉬는 시간은 친구가 서울로 불러내 신나는 클럽을 가고 술을 밤새 먹는 것 정도였다. 다음날 숙취와 공허함은 어딘가 부족한 여가생활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잠시라도 하고 있는 일을 잊고 마음 껏 신나게 놀았으니 그 죄책감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성공'을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
세 번째 여행 - 강남
다니던 회사는 점점 성장하여 강남에 사무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서울에 중심지 중 하나인 강남에서 회사생활이라니.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 했다. 퇴근 후 느껴지는 화려함과 젊은 기운이 나를 흥분 시켰다. 명함에 새겨진 회사 주소는 나를 점점 서울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취방도 서울에 얻었다. 전입신고를 마치고 신분증에 찍힌 서울 주소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진짜 ‘서울사람'이 된 것 같았다. 출퇴근을 하며 사람 가득 찬 2호선을 이용하는 나는 마치 바쁜 서울 사람의 기본 소양을 익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무덤덤하게 지옥철을 매일같이 타며 여전히 ‘성공'을 위해 참고 또 참았다. 반지하 원룸에 생활 역시 서울의 사회초년생이 거쳐야할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작은 공간이었지만 큰 꿈을 그리며 잠들었다. 마침내 데이터베이스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정식으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전문연구요원으로 입사했고, 나의 연구소 3년은 군대생활이었다.
3년의 전문연구요원 생활을 지내면서 일반 군복무 보다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음은 분명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은 이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3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나는 바로 퇴사를 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을 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문연구요원 3년을 지내면서 마음편히 쉬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아마 ‘성공'이라는 것을 내려 놓은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어색했다.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도 없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공허했다. 밀렸던 청소도 하고, 마음껏 술도 먹고, 맛나는 것도 먹으러 다녀보지만 머리속은 계속 복잡했다.
그러던 중 걸려온 반가운 전화. 연구소에서 일할 당시 함께했던 협력 업체로부터 입사 제안이 들어왔고, 끊긴 월급에 조금은 불안하던 나는 덥석 이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성공'이라는 단어는 내 머리속을 장악했고, 다시 워커모드로 돌아왔다.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팀장에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4명의 팀원과 함께하는 연구팀에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고, 나는 점점 보상을 원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바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과 ‘성공'을 잡기위한 열정이 돈에 대한 욕심으로 표출되었다. 더 높이 오르기위해 남을 깎아내리고, 나를 드높혔다. 하지만 그 끝이 어딘지 몰랐던 나는 마음대로 되지 않자 결국 퇴사를 결심한다.
네 번째 여행 - 수원
퇴사를 결심할 쯤 나는 수원으로 이사를 갔다. 직장으로부터 최대한 멀리가고 싶었다. 일로부터 떨어지고 싶었던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밖으로나가 호수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달려도 보고, 혼자 카페도 가고. 혼자 시간을 가지며 지금껏 갈려온 ‘성공으로 가는 길'을 되돌아 본다. 그 어딘가에 길을 헤메고 있을 때도 나는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려웠다. 해결책과 답만을 쫒아오던 지금까지의 ‘일’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한 동안 내가 지나온 길과 내가 가야할 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출구를 찾았다.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던 어느날 중간 역에서 열린 문을 보며 마음속에서 ‘그냥 내리고 싶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덜컬 내렸다. 출근 중이었지만 아무생각없이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내리고 그들은 각자의 길로 떠났다. 덩그러니 혼자 지하철 역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리고 그날 퇴사를 결정했다.
다섯 번째 여행 - 드디어 도착한 거제도
퇴사를 하고 컴퓨터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까지 힘든데에는 컴퓨터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했었나보다. 1년동안 취업을 하지 않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제주도로 떠날 생각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가 궁금했다. 여기저기 검색을 하며 처음으로 나를 위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알게된 거제 10주살이. 아웃도어 컨셉의 지역살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클라이밍을 3년동안 하며 산과 바위를 좋아하던 나는 망설임없이 지원했다. 동시에 많은 지역에서 10주살이 프로그램이 열렸지만, 서울에서 가장 먼 거제가 지금에 나의 여행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거제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거제는 잔잔한 바다와 푸른 산이 내 생각 정리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컴퓨터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다시금 배우고 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여행'은 아니었을까? 어떤 모습을 하고있는 ‘성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니 모든 과정이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눈에 불을 키고 달리기만 했던 예전과는 달리 시야를 넓히고 천천히 즐기며 지내고 있다.
앞으로의 여정도 궁금하지만, 지금에 거제 생활과 로컬그래비티의 활동들이 마냥 재미나고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