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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KA May 21. 2024

[문화탐방기-1] 도서관을 아세요?

수원 선경도서관

시작하며


몇 년 전, 우울증이 극에 달했을 때 걷기와 독서를 병행하기 시작했었다.


걷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었지만, 당시 걸으며 함께한 오디오북 독서는 책과 가까워지며 삶의 목표를 재 정비하고 인생관 마저 바꾸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그렇게 오디오북, 전자책, 종이책을 가리지 않고 독서에 몰입하며 어느새 연평균 100권 이상의 독서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도서관도 찾게 되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하겠노라 몇 번 갔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는 나로선 도서관이란 나라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동사무소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내가 도서관을 자주 찾게 된 이유는 나만의 사무실 같은 편안함을 도서관에서 느끼기 시작하며 거주지 주변 도서관들을 애용하고 있다.


처음엔 카페를 주로 이용했었다. 언제부터인지 묘한 시선과 압박에 못 이겨 결국 스터디 카페란 곳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이도 수험생 틈사이에 끼어 숨죽여가며 이용해야 했고 집중이 되지 않는 날은 긴 시간을 끊어놓고 절반도 못 채워 그냥 나오는 날도 있었다.


오죽하면 1인 공유 오피스도 물색해 보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공유 오피스 못지않은 도서관이 내 사무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도서관은 돈 안내요?


얼마 전 가족모임 때 도서관에서 오는 중이라 하니 처제가 나에게 물어본다.


'형부, 도서관은 돈 안내요?'


도서관 하면 왠지 돈도 내야 할 것 같고 상당히 복잡한 행정 절차가 수반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도서 대출과 일부 시설을 위해 회원 가입을 해야 하는 수고는 있지만 인터넷이 대중화되며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진행하는 회원가입은 우리에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절차이다. 심지어 구독문화가 점차 자리 잡고 있는 요즘 돈 한 푼 내지 않고 책을 빌릴 수 있다는 큰 장점은 회원 가입의 수고는 당연한 절차라고 느껴진다.


이런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자유롭게 도서관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종합 자료실 내에 마련된 테이블에서는 독서나 내가 필요한 공부도 할 수 있고, 책도 마음대로 가져다 읽을 수 있다. 이때는 회원 가입조차 필요하지 않다. 꼭 그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위함이 아닌 자유스럽게 도서관 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무더운 여름에는 도서관은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해주고 있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마트나 은행을 찾는다는 건 옛말이고 책을 읽지 않더라도 마련된 의자 앉아 편히 무더위를 피할 수 있다.


즉, 간단한 절차를 통해 책을 대여할 수도 있고, 도서관 내 공간을 마치 내 사무실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암울할 수 있는 얘기지만 작년 위암 진단으로 8월 한 달간 방사선 치료를 받았었다. 증상은 매우 호전되고 있느나 등가교환의 법칙이 여기서도 적용되는지 받은 만큼 잃은 것도 크다.


급격한 체력 저하가 찾아와 여러모로 생활패턴을 바꿔 놓는다.


치료 전에는 평일이나 주말 모두 새벽같이 일어나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치료 후에는 6시 기상도 힘들 때가 많아졌다.


그런데 예전처럼 이른 새벽에 눈을 뜨게 되고 모처럼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수원에 있는 도서관을 가보기로 한다. 주말이면 늘 거주지 주변 도서관만 찾다 보니 식상함에 몸이 먼저 반응 한지도 모른다.


목적지는 팔달산 중턱에 위치한 수원 중앙 도서관으로 정한다.



나의 애마


주변에서 내  자전거 가격을 들으면 인상부터 찌푸린다.


그럴 만도 한 게 저마다 자기 관심사가 아니면 겉모습과 선입관으로 가치를 판단한다. 즉 내 애마는 30만 원도 비싸단 소릴 듣는다.  하지만 내 애마와 함께 하는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추억이란 가치를 만들어가며 나만의 명품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남자들의 로망 스포츠카도 아닌 조그만 자전거에는 어느덧 애마라는 호칭을 부여해준다.


아무튼, 모처럼 애마를 꺼내 말랑해진 타이어에 공기도 주입해 주고 병점역으로 달려간다. 전 같았으면 1번 국도를 넘어 오롯이 자전거로 달려갔겠지만 오늘의 목적은 도서관 탐방이다.


이로 인해 병점역에서 전철로 수원역까지 이동한다. 수원역 로데오 거리를 가로질러 옛 경기도청 청사 언덕길을 올라간다.


옛 청사 입구에 상인회 환영 현수막이 잠시 눈에 스치고 지나간다.


확실히 일 년여 운동을 못하다 보니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다는 게 절실히 느껴진다. 옛 청사 입구에 다 달았을 무렵 끌고 올라가는데도 숨이 차오른다.


슬슬 땀이 흘러내리며 호흡은 어느덧 목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끌고 올라가며 운동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불태워 보지만 중앙 도서관 앞에 다 달았을 땐 긴 계단을 보며 집에 갈까 잠시 고민도 해본다.



작지만 13kg이 족히 넘는 이 녀석을 들고 저 계단을 올라가자니 땀으로 샤워하는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선경도서관으로 가자!


내 첫 직장이 수원 파장동에 위치한 ‘선경 인더스트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거길 뛰쳐나왔는지 아직도 내 속을 모르겠다.


아무튼!


수원에 35년을 넘게 살면서 중앙도서관이나 선경도서관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고, 나에게 도서관이란 일종의 관공서였기에 찾을 일이 없었다.


모처럼 마음먹고 왔는데 중앙 도서관의 가파른 계단에 질겁하여 바로 인근에 있다는 선경도서관으로 이동한다.


그 얼마 안 되는 이동거리인데도  어느새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항상 라이딩 때는 핸드 타월 몇 장은 꼭 챙겨 다녔는데 오늘은 휴지조각 한 장도 없다 보니 온몸으로 땀을 받아낸다.


이런 찝찝한 느낌을 상당히 싫어한다. 팔달산 중턱 약수터에서 샤워라도 하고 싶은 욕망이 끓어 넘친다.


심지어 잠시 쉬는 와중에도 시꺼먼 산모기가 사정없이 달려든다.


그렇게 아침 7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선경도서관에 도착했다.



이런 곳에 도서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관심도 없었지만 막상 찾아와 보니 상당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도서관은 어린이 자료실, 종합자료실, 열람실, 노트북실, 휴게실 이런 형태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다.


종합 자료실에서는 다양한 책들을 비치해두고 있고 열람실과 노트북실은 독서실과 같이 운영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이중 종합자료실은 도서 대출 업무도 진행하기에 운영시간이  비교적 제한 적이다.


화성시 도서관의 경우 종합자료실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고 열람실이나 노트북실은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운영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경 도서관의 경우 열람실이나 휴게실은 오전 7시부터 운영하고 있어 도서관 밖에서 대기하지 않고 바로 3층 열람실로 올라갔다.



선경 도서관은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운영하고 있다.


1층은 어린이 자료실, 강의실 그리고 넓은 로비로 되어 있다.

2층은 종합자료실로 한 층을 다 사용한다. 상당히 넓고 쾌적한 환경이다.

3층은 열람실과 2개의 휴게실 그리고 수원학 자료실과 서고가 있다.


넓은 로비에 미술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열람실과 노트북실로 구분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3층으로 올라갔는데 별도의 노트북실은 구분되어 있지 않았고, 열람실 또한 좌석 예약제가 아닌 자율 운영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휴게실은 취식이 가능한 휴게실과 라운지 휴게실로 나뉘며, 노트북은 라운지 휴게실에 마련된 테이블을 이용할 수 있었다.



라운지 휴게실에는 음료 자판기와 커피자판기가 있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카드 결제가 되지 않고 옆에 지폐교환기가 함께 놓여 있다.


현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 돈을 찾으러 나가던 중 1층 입구에 설치된 ATM기기에서 돈을 찾을 수 있었다.



취식이 가능한 휴게실에는 냉장고, 온장고, 정수기 2개가 놓여 있고, 카페처럼 아담한 크기로 도시락을 가져와 이곳에 보관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전자레인지 없다는 게 좀 아쉽지만 여기서 뭔가 해 먹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3층 라운지 휴게실에 자리 잡고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 오늘 할 일을 정리해 본다.


그런데, 3층 휴게실의 단점이 몸으로 슬슬 느껴진다.


분명 에어컨 가동은 하는 것 같은데 어디선가 따듯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기분이려니 생각하지만 열어 놓은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건지 아무튼 점점 더워지는 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창문은 계속 열러 있었다


9시가 거의 다 될 무렵 일부 이용자들이 자리를 비운다. 속으론 일찍도 간다고 생각하며 나도 잠시 머리를 식힐 겸 2층으로 내려가 본다. 그런데 간 줄로만 알았던 이용자들이 2층 종합자료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보인다.


2층은 한층 전체가 종합자료실로 절반이 책으로 가득 차 있고, 절반은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는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나도 곧바로 짐을 챙겨 2층 종합자료실로 이동하고 자리를 잡았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책의 종류가 상당하다. 하지만, 오늘의 할 일은 생활 프로그램 마무리라 IT서적을 훑어본다. 확실히  컴퓨터 관련 서적은 그 주기도 빠르게 변하다 보니 최신 도서는 거의 찾기가 힘들다. 역시 IT서적은 한철 지나야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책은 많은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책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뽑아 들고 자리에 앉아 오늘의 할 일을 진행한다.


3층과 확연히 틀린 점은 실내 온도 관리가 아주 잘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얼마 전 지역 도서관 이용 시 한기를 느끼며  한나절을 벌벌 떨다 결국 감기로 고생했었는데 시원함은 덜하지만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그런데, 거주지 도서관은 층마다 정수기가 비치되어 있는데 이곳은 3층 휴게실에만 있는 것 같았다. 빈 생수병에 물 받으러 몇 번을 오르내린 것 같다.


잠시 선경의 녹을 먹었지만 회장님 존함은 나도 모른다


선경도서관은 1995년 4월 개관하고 2020년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노후된 시설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공공장소 이용 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화장실인데 다행히도 관리도 잘되어 있고, 제일 중요한 비데도 설치되어 있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행궁동 클라쓰


선경도서관은 화성행궁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행궁이 들어서며 일대는 대대적인 보수 정비를 하게 된다.


출처 : 구글 지도


수원에서 태어나 35년간을 사대문 안에 살면서 변천사를 지켜보았다.


지금의 화성행궁자리에는 중부 경찰서, 도립병원, 신풍국민학교 등 지금은 모두 이전하였지만 그 기억과 추억은 아직도 선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2007년 팔달동, 신안동, 남향동의 세동을 하나로 합쳐 화성행궁의 이름을 따와 행궁동으로 바뀌게 되었고, 관광객들이 몰리며 행궁동 일대는 카페나 레스토랑 등 골목 곳곳에 상권이 들어서며 젊은 세대들의 핫플레스가 되었다.


내가 10대나 20대 초반만 해도 지금의 팔달문 인근중앙 극장을 중심으로 상권 형성이 되었었지만 랜드마크였던 중앙 극장이 없어지며 인계동이나 수원역전으로 상권이 분산되기 시작한다.  


지금도 팔달문 일대를 보노라면 어릴 적 번화가였던 기억이 아쉬움에 남지만 오히려 화성행궁과 수원화성의 대대적인 정비는 팔달문에서 화서문, 장안문, 창룡문 일대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어릴 적 창룡문 일대인 남수동, 화홍문 일대인 북수동에도 거주했었는데 세계 문화 지정으로 이렇게 까지 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23년 어반스케치로 남긴 창룡문

특히 북수동과 매향동 일대의 천변을 끼고 방석집들이 꽤 길게 즐비해 있었다. 사창가나 다름없는 곳이기에 저녁 시간대는 이곳을 피해 다녀야 했다. 정비 사업 후 싹 변한 이곳을 보노라면 속이 다 시원하다.


아울러 창룡문 일대도 관광객이 많이 찾으며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나 레스토랑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옛 추억은 사라졌지만 깔끔하게 변해가는 동네를 보노라면 왠지 기분은 좋아진다.


이번 선경 도서관 방문은 토요일과 일요일 두 차례 방문하며 첫날은 도서관 위주로 둘째 날은 행궁동 투어도 함께 병행했었다.


수원에 거주하지 않으니 가끔 들릴 때마다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한다. 분명 얼마 전까지 없었던 것 같은데 화성행궁 근처에 수원시립 미술관이 웅장하게 들어 섰고, 심지어 그 옆에 ‘미술관 옆 화장실’한참 동안 감상하기도 했다.


도심 속 옛 정취와 함께 화성행궁과 미술관 관람, 행궁동 투어 후 도서관을 찾아 잠시 휴식하는 일일 코스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무튼 멋지게 변해가는 행궁동 클라쓰에 보이지 않는 '좋아요'를 눌러본다.



에필로그


양 이틀 모두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갔었다.


이틀 째인 일요일은 둘째 아이를 불러 냈다. 점심이나 함께 먹자고 연락했는데 늘 주말이면 놀러 가고 싶어 안달 나 있었기에 서슴없이 달려왔다.


오후 3시경 도서관 인근에서 부녀 상봉을 하는데 어지간한 식당들은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여러 식당을 찾아다녀야 했다.



핫플레이스인 만큼 주머니도 가벼워진다. 뭐 요즘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국수에 김밥 한 줄만 먹어도 돈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도 모처럼 딸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기에 멀어지는 부녀간의 사이를 조금이나마 좁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차를 가져오지 않아 대중교통으로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기에 한참을 걸어 도착한 정류장에서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몸을 싣는다.


“아빠 아까 내 옆에 아저씨 땀냄새 때문에 아직도 토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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