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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머스타드 Sep 02. 2021

의사를 꿈꾸던 큰 딸은 죽음으로 6명을 살렸다

2015년, 한 아버지는 의사의 꿈을 안고 미국 시애틀 유학길에 오른 큰딸을 출국 일주일 만에 교통사고로 떠나보냈다. 갑작스러운 딸의 비보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아버지 김순원 씨와 가족들은 곧장 미국으로 향했지만 도착 후 의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따님은 깨어날 가능성이 없으니 장기 기증을 생각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었지만, 결국 낯선 땅에서 기증을 하기로 결정했고, 故 김하람 씨는 6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김순원 씨와 가족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하이머스타드는 당사자인 김순원 씨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레이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순원 : 안녕하세요. 무뚝뚝하지만 다정하고 싶은 딸부자 아빠 김순원입니다.

그레이스 : (박수 치며 밝게) 반갑습니다. 평소에 따님들에게 무뚝뚝한 편이세요?

순원 : 태생이 아무래도 경상도 사람이다 보니까 무뚝뚝한 편인데 그래서 요즘에는 다정하려고 애를 많이 써요(웃음). 직접 커피 볶아서 내려서 아이한테 주기도 하고요.

그레이스 : 너무 다정하신데요?

순원 : (웃음)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죠.

그레이스 : 따님들은 아버지한테 표현을 많이 하나요?

순원 : 제가 딸이 셋인데, 첫째 아이가 제일 많이 표현을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둘째 아이가 큰 아이가 되어서 다정하게 편지도 써주고 또 아빠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또 사랑을 표현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레이스 : 둘째 아이가 큰 아이가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조심스럽게) 큰 따님을 먼저 보내신 건가요?

순원 : 네. 2015년 9월에, 큰 딸이 21살이 되던 해에 미국 시애틀로 유학을 갔다가 교통사고로...


믿을 수 없었던 딸의 교통사고 소식



그레이스 : (잠시 침묵하다 조심스럽게) 그럼 그때 당시 따님의 소식을 어떻게 듣게 되셨어요?

순원 : 제가 그때 동기 모임에 가 있었는데 아내한테 전화가 왔어요. “여보, 여보! 하람이한테 큰일이 일어난 것 같아. 크게 다친 것 같아.”라고요. 안 그래도 새벽에 뉴스를 하나 봤거든요.

그레이스 : 어떤 뉴스였어요?

순원 : 시애틀에서 수륙양용 버스의 바퀴가 빠지면서 유학생들이 타고 있던 전세 버스 옆구리를 박아서 다국적 사람 4명이 목숨을 잃고 한국 여학생 하나가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였어요. 그때 아내가 “어? 시애틀이네.”하고 말았거든요. ‘설마 우리 아이겠어?’ 싶었던 거죠. 근데 얼마 안 있다가 영사관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딸한테 혹시 소식받은 거 있냐고.

그레이스 : 처음에 아내 분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셨겠어요.

순원 : 그때는 멍해지면서 이게 뭔가 싶었어요. 그 소식을 들었던 장소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막 혼자 “안 돼, 안 돼!” 부르짖으면서, 통곡하고 기도하면서 달려왔죠. 

그레이스 : 그리고서 바로 시애틀로 떠나신 거예요?

순원 : 네. 미국 가니까 승객들이 다 내리기도 전에 미국 경찰이 오고 또 영사관 직원이 와서 절 찾더라고요. 그러더니 체크아웃도 없이 바로 저희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어요. 병원에 가니까 딸은 이미 급하게 뇌수술을 한 상황이었어요. 뇌압이 막 솟아오르니까 뇌압을 떨어뜨리기 위해 머리뼈를 자르고 뇌수술을 하고 머리카락은 다 깎고... (딸이) 누워있는데 보니까 얼굴이 퉁퉁 부었죠. 우리 아이 얼굴이 아니더라고요. 입, 코에는 산소 호흡기를 끼고 기계 힘에 의해 숨은 쉬고 있는데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고... (머뭇거리다) 아이 눈가에서 계속 피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처음에 그 모습을 딱 본 순간 맥이 풀리죠. 주저앉게 되더라고요.


자꾸만 번져오는 딸에 대한 기억



그레이스 : (잠시 침묵)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사실 전 부모님이 되어본 적이 없다 보니까 항상 딸의 입장이기만 해서 딸을 잃게 됐다고 생각이 딱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일지...

순원 : 계속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치질 않는 거죠. 아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막 울다 보니까 목이 너무 마른 거예요. 계속 물을 먹는데도 목이 너무 마르더라고요. 몸에서 계속 수분이 빠져나오니까 목이 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거기 있는 동안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냥 막 엉엉, 이게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그냥 주르르륵 눈물이 계속 났어요. 웬 눈물이 그렇게 많이 나는지... 제가 어릴 때부터 가족들을 일찍 잃은 아픔이 있거든요. 근데 제 딸을 잃고 나니까 그때의 슬픔 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거예요. 딸을 잃은 슬픔은 차원이 달라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슬픈 게 있다면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엄마, 아빠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힘들죠, 사실. 6년이 다 돼 가는데 매일 생각나요. 하루도 생각 안 나는 날이 없어요. 

그레이스 : 특히 어떨 때 생각나세요?

순원 : 원래 저희 식구가 다섯 명이었잖아요. 그러면 식사를 할 때 제가 보통 수저를 가지런히 놔요. 근데 저도 모르게 다섯 세트를 쥐는 거죠. 뚝뚝 놓다 보면 한 세트가 남는 거죠.

그레이스 : 이렇게 듣기만 해도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하람님은 생전에 어떤 딸이었어요?

순원 : 우리 딸은 감성적이었어요. 글도 잘 쓰고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유학 갔을 때도 하늘 사진 찍고 공원 찍고 호수에서 노는 청둥오리 사진 찍어서 하루에도 수십 장씩 카톡을 보내줬어요. 그리고 저녁이 되면 사진을 보면서 자기가 느낀 이야기를 해줬어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도 저녁마다 해줬죠. 영상 통화하면서 “아빠 사랑해~”하고.

그레이스 : 정말 표현을 많이 하는 따님이셨네요. 혹시 그 상황이 원망스럽지는 않으셨어요?

순원 : 원망이라기보다는 자책을 많이 했죠. 만약에 우리 딸을 그곳에 유학 보내지 않았더라면. 며칠 전에도 생각했어요. 만약에 유학을 다음 학기에 보냈더라면. 만약에 시애틀이 아니라 다른 도시나 캐나다 같은 다른 나라로 보냈더라면. 만약에 그날 얘가 몸이 좀 안 좋아서 OT에 안 갔더라면, 만약에 그 버스에 탔을 때 앞쪽이 아닌 뒤쪽에 탔었더라면, 만약에 버스 운전사가 좀 더 속도를 냈거나 좀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늦게 가든지, 아니면 신호라고 몇 번 걸리든지,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아... 참 이건 원망해야 될 문제도 아니고 이게 이 아이에게 주어진 짧은 인생이었나, 그 생각을 했죠.



장기 기증을 결정한 이유



그레이스 : 처음에 장기 기증에 대해선 어떻게 들으신 거예요?

순원 : 그날 의사가 찾아와서 너무 겸손하고 공손하게 죄송하다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워싱턴 주 법에 의하면 뇌사 판정을 딱 내리면 24시간 안에 호흡기를 무조건 떼야해요. 우리나라는 가족이 동의해야 떼는데.

그레이스 : 뇌사라는 게 심장은 계속 뛰고 있는 거죠?

순원 : 네. 심장은 뛰고 뇌는 죽은 거죠. 그러니까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는 거죠. 사고 난 다음 날 뇌사 판정이 났고, 병원에 장기기증 담당자가 와서 아주 겸손하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따님은 안타깝지만 따님의 장기를 통해 많은 이를 살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누군가에게 따님의 장기가 들어가서 살 수 있다면 이것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레이스 : 그 말을 들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순원 : 살아있는 장기를 이식해서 준다는 거잖아요. 솔직히 속된 말로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겨울에 토끼도 잡아먹어보고 그러면 알잖아요. 해체하는 과정들. 그게 막 순간적으로 떠오르는데 너무 힘든 거죠. 처음엔 아내도 펄쩍 뛰고 저도 쉽게 허락이 안 됐는데, 그날 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아, 생명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 이 아이를 위해서 가치 있는 일을 하자. 이 아이가 자기의 재능이나 삶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려고 했던 아이인데,

그레이스 : 의사가 되고 싶었던 딸이니까요.

순원 : 그렇죠. 장기를 기증하면 필요한 사람이 살 수 있으니, 그것도 참 귀한 일이다. 그래서 다음날 우리가 흔쾌히 결정했죠. 그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 4시에 하람이를 마지막으로 보러 병원에 갔어요.



그레이스 : 따님한테 마지막으로 이야기했던 게 있으셨어요?

순원 : 엄마, 아빠의...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물을 마신다) 엄마, 아빠의 딸로 이 땅에 와줘서 너무 고맙고, 사랑 많이 줘서 너무 고맙다. 우리가 너에게 넉넉하게 지원해주지 못해서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넌 언제나 엄마, 아빠를 항상 최고로 표현해주고 사랑해줘서 고맙다.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우리 곧 간다. 그곳에서 만나자, 사랑한다, 고맙다. 남겨진 두 동생들 너처럼 키워줄 거야. 우리 꿋꿋하게 이겨낼 거야, 그렇게 이야기했죠. 아이한테 마지막으로 마음껏 사랑 표현을 하고 다시 호텔로 들어와서 지쳐 쓰러졌어요. 근데 그때 저랑 아내랑 둘이 동시에 꿈을 꿨어요. 꿈인지 환상인지... 제 아내는 우리 아이가 너무 아름다운 꽃밭에서 그 특유의 웃음소리로 웃으면서 뛰어가다가 뒤돌아보는데 막 행복해하는 모습, 저는 우리 아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저를 바라보는 꿈을 꿨어요. 그 꿈을 꾸고 나서 아내도 눈물을 닦을 수 있었고 저도 힘을 낼 수 있었죠.


낯선 땅에서의 장기 기증


그레이스 : 낯선 땅에서 기증을 하셨는데, 그곳에서의 반응은 좀 어땠어요? 주변에 있는 의사분들이라든지...

순원 : 워낙 큰 사고라서 의사 선생님, 간호사, 심지어는 그 병원을 청소하는 청소부 아줌마까지, 그 병원 전체에 다 알려진 거예요. 다 우리를 보면 인사해주고. 그러면서 마음으로 울어주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교민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왔어요. 전혀 모르는 분들이에요. 심지어 시애틀 시내에서 한인 식당 하시는 어떤 분이 누구를 보내서 우리를 자기 식당에 데리러 오라고 한 거예요. 저희가 가니까 직접 돌솥비빔밥을 만들어 주면서 먹어야 된다고, 먹으라고, 힘내라고. 그러면서 자기도 5년 전에 아들을 그렇게 잃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순원 : 그 자리에서 억지로 돌솥비빔밥을 먹으면서 노트북 좀 빌려달라고 해서 우리 딸의 장기를 이식받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우리 딸은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살아야 할 애다. 근데 우리가 원치 않게 이런 사고를 당해서 당신한테 장기를 이식하게 되지만, 당신이 우리 딸의 생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살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 가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썼죠. 나중에 이식받은 분이 그 편지를 액자에 넣어서 벽에 붙여 놓고 날마다 우릴 위해서 기도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레이스 : 따님의 어떤 장기들을 기증하셨어요?

순원 : 한국에 돌아와서 한 달 반인가 있다가 북서부장기기증본부센터에서 편지가 온 거예요. 하람님의 장기는 누구에게 갔고, 어디 갔고... 이렇게 다 왔어요. 보니까 우리 아이의 췌장하고 신장 하나는 당시 48세 정도 된 어떤 남성에게 이식됐고 또 다른 하나는 30대 남성에게 이식되고 어떤 군인에게도 이식되고 각막까지 총 6명 정도에게 이식된 걸로 기억해요. 

그레이스 : 그래도 하람 씨의 장기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잖아요. 그게 조금은 위로가 되시진 않았나요?

순원 :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생각해보니까 우리 아이가 나이도 아직 젊고 술, 담배, 커피 이런 걸 일절 안 했거든요. 얼마나 장기가 건강하겠어요. ‘(우리 딸) 장기 기증받는 분은 참 좋겠다, 당신 것보다 훨씬 더 싱싱한 장기가 기증되니까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죠.



순원 : 기증받은 분 중에 매트라는 분이 편지에 ‘당신의 따님의 장기로 인하여 내가 맨날 신장 투석받으며 하루하루 소망 없이 살았는데 기증받고 난 후에 투석도 안 하고 건강한 몸으로 내 딸 졸업식에 갈 수 있었다고. 그리고 딸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었다고.’ 써줬어요. 저희 딸은 아이 생일날 애가 없어서 참 슬프고 힘든데 그분은 딸의 생일을 같이 축하할 수 있으니까 그때 참 기분이 묘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분에게 새 생명 줘서 또 감사한 마음도 있죠. 그리고 거기서는 메모리 파크(추모공원)를 만들어놓고 그때 그 사고 난 사람들 이름을 묘비에 적어놓고 기억하더라고요. 장기기증을 받은 사람이 그곳에서 와서 우리 딸의 기일 날에 와서 추억한다고 고맙다고 오기도 했는데 그렇게 기억해주니까 고마웠죠.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


그레이스 : 보통은 죽음이 되게 두렵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게 보편적이잖아요. 

순원 : 그렇죠.

그레이스 : 소망이 있으실 것 같아요. ‘다시 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순원 : 자녀는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아요. 진짜 그래요. 가슴이 아파요. 늘 내 딸을 생각하는 거죠. 이건 뭐 ‘생각해야지’ 이게 아니고 그냥 자동적으로 매일매일 순간순간 떠올라요. 세월이 5-6년 지났는데도요. 아마 평생 그럴 거예요. 그렇게 우리 딸을 늘 생각하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딸을 다시 만났을 때 “아빠 어떻게 살다왔어?” 이렇게 물으면 “야, 뭐 질질 짜다가 늘 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그렇게 살다가 온 줄 아냐? 먹을 거 실컷 먹고 할 것 다 하고 열심히 살다 왔지~!” 이렇게 자랑하려고 열심히 사는 거예요.



▼김순원 씨의 이야기를 생생한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

https://www.youtube.com/watch?v=9R7PwS5OWNM


다음 편은?

> 뇌사 추정자와 수혜자 간 장기 기증이 이루어지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장기구득코디네이터 박수정 씨 인터뷰


우리는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세상이 서로에 대한 공감과 격려와 환대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하이머스타드는 2020년 1월 가정폭력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해 장애, 아동, 환경, 가족 등에서 발생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공감과 희망이 담긴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이든

기획|하이머스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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