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e en France - 원치않은 가족
00. 기차여행
« On est arrivé!» ( 드디어 도착했다!)
파리 몽파르나스 기차역에서 리모쥬역까지 정확히 4시간 31분이 걸렸다.
나는 아브가 든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또 다른 배낭은 어깨에 짊어지고 줄리앙은 캐리어 두 개를 양손으로 끌어 기차에서 내렸다.
벌써 밤 10시 반이었다. 명절로 만석인 기차에서 내리니 마스크 안으로 들어오는 밤 공기가 상쾌했다.
그것도 잠시.
이러고 있을 세가 없었다.
시아버님이 역 앞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고 계셨다.
얼른 가야지.
출구를 찾고 위를 보는데 다들 낑낑 거리며 캐리어를 가로로 돌려 들고 올라가는 모습에, « 설마 에스컬레이터 안되는 거야? » 하며 줄리앙을 노려봤다.
에스컬레이터 안 되는 게 줄리앙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프랑스에 사는 한 프랑스에서 꼬이는 모든 일들은 우리 둘 사이에서 프랑스 사람인 줄리앙 책임이었다.
줄리앙은 내 말과 눈빛에서 인내심이 바닥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읽었는지, 아브와 배낭만 가지고 먼저 계단을 올라가라고 한다.
낑낑대면서 두 캐리어를 양쪽 손에 들고 몸무게 59kg인 친구가 자신의 몸무게의 반인 캐리어를 들고 그 높은 기차역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먼저 올라가서 줄리앙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안쓰러웠다.
다시 내려가서 좀 도와줘야지 하다가, 이 정신없는 기차역에서 아브와 배낭도 잃어버리겠다 싶어서 관뒀다.
그래도 그렇지.
‘아니 프랑스 인구 전체가 이동하는 크리스마스때에 에스컬레이터 막아놓은 거는,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 '
‘그래, 내가 뭘 바라겠어’
‘이게 프랑스지’
이미 시작부터 너무 잘못됐기에 하소연을 일찍 끝내버렸다.
저녁 6시에 탄 기차는 9시 15분 도착 예정이었지만 1시간 15분을 늦어 10시 반에 도착했다.
기관사가 방향을 착각해 다른 선로를 탔다나 뭐라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
파리 몽파르나스역에 도착해서 요깃거리 할 걸 찾는데 줄리앙이 배고프면 기차 안에서 무얼 사 먹자고 하고는 나를 기차에 일단 태웠다.
‘한국처럼 삶은 계란은 아니더라도 샌드위치 정도는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라며 음식서비스를 중단했다고 검표원이 알려줬다.
심지어 물도 안 팔았다.
기차가 출발하고 두 시간쯤 지나서 8시쯤 되니 기차 안에서 다들 샌드위치며, 케밥이며 꺼내서 먹는 걸 지켜봐야 했다.
이삿더미에서 일주일치 짐을 싸느라, 줄리앙네 가족들 크리스마스 선물 싸느라 아점으로 계란 프라이 하나 먹은 게 너무 후회될 정도로.
'그래 코로나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 밖에.
그렇게 배고픈 배를 끌고 계단을 올라와 역사를 나오니 수십대 차들이 보였다.
픽업하러 온 부모들은 아들 딸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크게 흔들며 « 여기야 » 하고 반겼다.
줄리앙은 아버님께 전화를 걸어 우리가 역을 나왔다고 전했고 그 사이 나는 저쪽에 차를 대고 서 계신 시아버님을 발견했다.
큰 움직임 없이 시아버님은 손을 위로 드시고는 한두 번 까딱하셨다.
« Salut! » (안녕하세요!)
알아서 찾아가니 볼인사는 코로나라 패스하고 짐을 싣고는 얼른 차에 탔다.
리모쥬역에서 시댁까지 또 30분.
줄리앙은 시아버님 옆 조수 자리,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아들이 하는 대화를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혹시 가다가 연 케밥집이라도 있으면 세워주시면 안 되냐고 시아버님께 여쭤보니 집에 가면 먹을 게 있을거라며 집으로 바로 가는 게 좋다고 하신다.
‘도착하면 밤 11시고 짐 옮기고 하면 11시 반일텐데…’
그 시각에 시어머님이 음식을 내주셔야한다는게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시아버님 말을 들어야지 뭐 어찌하겠어하며 차 뒷좌석에서 투명인간처럼 가만히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을 꼬박 달려 밤 11시, 드디어 시댁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