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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유진 Mar 01. 2022

La vie en France - 원치않은 가족

04. 이상한 점심식사

다녀왔습니다! 가 아니네...

고기빵을 번쩍 들어 보여주려 했는데 다들 뭔가 분주해 보였다.

시어머님과 줄리앙의 둘째 동생 아드리앙 그리고 아드리앙의 여자 친구 레나는 열심히 가족들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줄리앙에게 « 우리 점심은 간단하게 샐러드랑 고기빵 먹기로 한 거 아니었어? »라고 물었지만 줄리앙은 이런 상황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신발과 코트를 벗으러 현관 옆에 신발장 방으로 가버렸다.

나는 벙쩌있다가 « 제가 도와드릴게요뭘 하면 돼요? » 하고 시어머님께 물었다.

시어머님은 자신은 괜찮다면서 아드리앙에게 물어보라 하셨다.

아드리앙에게 가서 똑같이 물었다.

« 내가 도와줄게뭘 하면 돼? »

아드리앙은 자신은 괜찮다며 레나에게 가서 물어보라 했다.

 

나는 두 번 튕겨진 공처럼 레나 쪽으로 가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혹시 도와줄 게 있는지.

6개월 전시부모님의 파리 집에서 레나를 봤기에 그래도 안면은 튼 사이였다.

그때 줄리앙은 나에게 레나가 러시아에서 왔다는 것과 브뤼셀에 어느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있고아드리앙과 얼마나 사귄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자기 부모님 집에 오기 시작한 건 한 2년 정도 된 것 같다고그러니까 방학 때는 레나가 아드리앙의 방, 시부모님의 집에서 같이 지낸다는 걸 말해줬었다

내 눈에 레나는 급할 게 없어 보이는 느긋한 성격에 항상 웃고 있었고, 담배를 두 시간에 한 번씩 폈고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지금도 그때만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레나는 시장에 잘 다녀왔냐고부터 먼저 웃으며 물었다아드리앙과 자신은 어제 시어머님이 시키신 음식과 디저트 몇 가지를 픽업하러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리모쥬에 내려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제일 늦게 도착했구나’ 나는 그때 알았다.

그리고는 « 별로 할 게 없다 » 면서 작게 썰고 있는 파슬리를 가리켰고, 만약 내가 원한다면 해보라면서 자리까지 비켜주었다.

그냥 서있는 편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얼른 내가 하겠다며 파슬리를 열심히 썰었다.

줄리앙은 나처럼 할 일을 구태여 찾지 않고 음식 준비하는 아일랜드 식탁 주변을 돌며 가끔씩 나와 레나 아드리앙 그리고 시어머님께 말을 걸었다.  

벌써 수북이 쌓인 파슬리를 시어머니께 보여드리며 « 이 정도 필요하신 거예요? » 하고 물으니 아드리앙에게 물어보라고 하신다.

그래서 아드리앙에게 파슬리 담은 그릇을 보여주며 똑같은 질문을 하니 아드리앙이 이 정도면 됐다고 컨펌을 해줬다.  

그 뒤로도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내내나는 바로 옆에 계신 시어머님께 물었던 질문을똑같이 아드리앙에게 다시 물어야 했고, 아드리앙은 그때마다 상냥하게 대답해주었지만 대답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시어머님도 «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을까? » 하며 아드리앙 하고만 대화를 나누셨고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레나는 아드리앙이 가끔 시키는 일을 천천히 하며 줄리앙과의 수다에 더 집중하는 듯 보였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서있기 일쑤였는데줄리앙은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 쉬어야지’ 하는 자세로 어슬렁거리며 그저 수다를 떠는 게 당연한 일인 듯 행동했다.

 

식사 준비가 얼추 끝나고 테이블이 세팅되자, 15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직사각형의 앤티크 한 식탁에 흔히 왕 자리라고 하는 자리에 시아버님이 앉으셨다

시아버님의 오른편 첫 번째 자리에는 시어머님시어머님 바로 옆자리에는 아드리앙 그리고 아드리앙 옆자리에는 레나가 앉았다

줄리앙과 나는 시아버님의 왼편 자리에서 각각 아드리앙과 레나를 마주 보며 앉았다

식사를 시작하려니 이제 막 대학교 신입생이 된 막내 아드님, 아벨이 내려와 별생각 없이 시아버님의 왼편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결론적으로 나와 레나가 앉은자리를 끝으로 식탁의 반이 비어있었으니 우리는 식탁에 가장 끝자리에 앉은 거나 다름없었다.  

시아버님은 식사 중에 새로운 와인을 더 가지러 가실 때를 제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셨는데전식, 본식, 치즈, 디저트, 과일로 순서가 바뀔 때마다 시어머님이 일어나셔서 테이블 중간에 음식을 세팅하셨고음식 설명을 해주시면세팅된 음식을 가족들이 돌아가며 다시 자기 앞접시에 담았다.

 

어느덧 세시가 되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이제 점심식사도 곧 끝나겠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레나는 마주 앉아 있는 나에게 한국음식이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레나의 말에 어쩌다 한국음식이 식사의 마지막 주제가 되었는데시어머니며 시아버님 그리고 아드리앙은 한국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며 궁금하다고 했고줄리앙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음식에 대한 모든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듯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하다가내가 음식을 잘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는 사이나는 리모쥬에는 한인마트 비슷한 것도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짧은 생각을 마치고 바로 옆에서 김치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줄리앙을 보는데시어머님이 나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 리모쥬 역 근처에 가면 중국인이 하는 아시안 마트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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