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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u May 05. 2022

노묘의 시간

8화. 수다스러운 묘(猫)르신

  고양이들은 성묘가 되면 거의 울지 않는다. 물론 유튜브 스타 마일로처럼 이례적으로 수다스러운 고양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신기하면 유튜브 스타가 되었겠나. (마일로 : 아비시니앙. 집사가 물어보면 꼬박꼬박 대꾸를 하는 것이 천상 대화한다는 착각을 주는 녀석. 화장실 꽁냥꽁냥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철부지 아이들이었을 때 말이 많던 사람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과묵한 어른이 되는 것처럼, 고양이들도 병아리처럼 시도때도 없이 삑삑 소리로 울던 시간은 잠시, 그 후부터는 필요한 것을 아무리 기다려도 챙겨주지 않는 무능무심한 집사가 아닌 한 자기 고양이가 우는 소리를 자주 듣지는 못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아이들이 꽤나 말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으로 캔 습식 간식이나 닭가슴살, 가끔은 까망이 취향을 따라 육포간식류를 살짝 따뜻하게 데워 주면  맛있게 먹고나서 방으로 들어가서 (이율배반적이게도)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우렁찬 소리로 "냐아~냐아~"하고 제법 오래 우는 것이다. .

  여러 전문 수의사 선생님들의 채널을 돌아다닌 덕분에 고양이들의 울음소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분류할 정보는 갖추고 있는데도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밥은 방금 맛있게 잡쉈고, 물이 비었나 보면 깨끗하게 채워져 있고, 화장실이 문제가 있나 보면 그도 아니고, 심심해 그러는가 싶어 카샤카샤 붕붕(낚시 놀이)을 날려보면 그도 본체만체. 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알 수가 없어 불만스러운 묘르신의 얼굴을 붙들고 코를 맞대면 살짝 눈을 깔면서 자리를 벗어나려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가는 나이, 그래도 얼굴은 여전히 베이비 페이스.

1. 삑삑 쉴 새 없이 울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꽤나 중후하고 파워풀한 목소리로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우는 노묘님들의 가장 확실한 신호는 똥치우란 메시지다. 큼직한 맛동산을 만들고 나면 어김없이 큰 소리로 우렁차게 신호를 준다.

 2. 그 다음은 텐트를 쳐달라는 요청. 부분은 신호하기 전에 알아서 해주지만 여느 때보다 설치가 늦으면 특히 글램핑중독자 까망이가 재촉한다. 망설이는 눈에 짤막한 외울음. 극내향형인 우리집 노묘들은 항상 몸을 숨길 곳이 집안에 두 세곳 이상 필요하다. 그래서 늘 널찍하고 푹신한 이불텐트는 사시사철 필수. 이불텐트의 규모상 캠핑보단 글램핑에 가깝다.

3. 토한 곳이 있을 때 알려주느라 운다. 약간 나지막하고 그 주변에서 미안한 표정으로 소극적 울음소리를 낸다. 헤어볼과 노란 구토액이 섞여 나오는 현상이 규칙적으로 있기 마련인데 기겁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잘 살펴보기는 해야한다. 구토물이 정상적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그리고 빈도가 모두  체크 대상.

4. 손길과 빗질이 고플 때 높게 짧게 자주 운다. 빨리 날 좀 이뻐해줘라....이 때 특히 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5. 같이 잡시다. 체온이 필요할 때 제법 짜증내며 낮게 길게 운다. 특히 베개에 똥고를 대고 앉아서 책상에서 내려오란 신호를 보내는 노랑이의 모습은 정말....남편보다 이 녀석이 내 영혼의 짝꿍인가!!


고양이는 성묘가 된 후엔 자기들끼리 어지간해선 울음소리로 소통하지 않는다니 분명 이건 다 나한테 하는 소리다. 수다스런 묘르신들의 울음 언어체계를 더 채워나갈 수 있어야할텐데. 대학 가기(=20년 살기)로 약속은 했지만, 건강한 나날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냥님들 병원비 저축도 아직  많이 못했고 내 노후준비는 더구나 엄두도 안난다. 뭘 해야 돈벼락을 맞을까. 나만 두고 보면 꽤 나중에 주택연금받아 근근히 살아도 부족할 건 없을것 같다. 그러나 고양이들에게 로얄캐닌 처방식을 계속 먹이려면 좀 더 경제활동은 해야한다. 관계성이 필요해 일을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극 내향형. 고양이들이 분명 날 닮은게다.


하지만 집에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고 말도 많다. 일이 인생의 큰 정체성을 가진 소위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행복한 것 같다. 집에 있는 시간을 위해 "도비"로 말포이네 집에 8시간 묶여 사는 걸 대체할 적성과 능력에 부합하며 페이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고양이와 수다 떨며 살고파라.


The end of the 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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