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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u Aug 28. 2022

노묘의 시간

11화. 지루함은 좋은 것이다.

  어린 고양이와 놀아주기는 쉽다. 체력만 있다면. 사실 장난감도 별로 필요없다. 구겨 놓은 종이 하나만 가지고도 1살 미만의 어린 고양이들은 왕성하게 움직이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게 발랄하다. 그에 비해 이제는 궁금한 것도, 새로운 것도 별로 없는 묘르신들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상당한 탐구와 섬세한 세팅이  필요하다. 집 안에는 고양이들을 위한 무인양품 박스집, 쓱닷컴에서 무한정 제공해주는 종이 봉투 터널, 창틀과 캣타워의 연결 캣워크, 각종 스크레쳐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기존 오도리나 쥐돌이는 오래 전에 흥미를 잃었고 냥님들 중년까지만 해도 유효했던 '카샤카샤 붐붐'도 한 두해 전부터  흥미가 떨어져 이젠 서랍에서 쭉 묵고있다. 가끔 날벌레가 들어오면 채터링(앓는 듯한 고양이들의 괴기스런 발성. 처음 보는 사람은 "기담"이라는 한국 호러물의 엄마귀신이 내는 소리 비슷해서 기겁하게 될지도)을 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나마도 멀뚱멀뚱 관심이 없다. 사람이면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느긋하게 햇살을 즐길텐데...고양이에게는 먹고, 사냥하고, 자고, 그루밍하는 것 외에 자발적으로 혼자 뭔가를 해야 할 것은 없다. 아기 고양이일때는 집 안에 박스 몇 개, 장난감 등에도 반응을 했지만 13년 넘게 놀았던 쥐돌이 오도리 따위는 이제 대상물이 아니라 그걸 흔드는 내 손에 눈이 고정되어 있다. 좀 신기한 공작 깃털같은 것도 관심 흥미 지속 시간은 약 1분을 넘지 않는다. 한 달 기준 놀이시간도 현저히 줄어서, 이제 숨차게 뛰는 놀이는 거의 하지 않고 자정 넘어 2시에서 3시 사이 가끔 마음이 내키면 '우다다'를 조금 하는게 전부.  


  이쯤 되면 노묘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무엇을 찾아줘야 한다는 불안감이 치밀고 올라온다.

톰과 제리 에피소드 중 금붕어 구출작전. 늘 그렇듯 톰의 금붕어 잡기는 실패.

어항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씩 집중하는 고양이들이 많다고 하기에 (고통을 느끼는 중추도 없고 기억력도 3초라는 잘못된 상식으로) 금붕어라도 한마리 들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알고보니 이 금붕어도 만만한 동물이 아니었다. 일단 비늘있는 녀석과 교감이 될까 했건만, 주인이 밥줄때 따라오는 '물강아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엽기적인 것은 수명! 잘 기르면 10년씩 사는 놈들이란 것이다. 노묘들의 심심풀이 반려로 맞았다가 자칫 잘못 꼬이면 냥님들 사별 후 물고기 집사로 낙찰될 판이었다. 아니면 원래 10년씩 사는 애들을 소모품 취급하여 짧은 생 마감하게 한 무정한 인간이 되거나. 남편과 열대어 가게 앞까지 갔다가 뒤돌아 나오기를 몇 번씩 하다 이젠 포기했다. 우리 성격상, 일단 한 집에 들여놓으면 금붕어도 우리 보호 하에 있으니 대충 키우지는 못한다. 어항관리며 수질관리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노랑이와 까망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 재미를 위해 산 목숨 가지고 죄 짓지 말자...' 하며 생각을 접었다.

  어항과 함께 고려해 온 것 중에는 새들을 유혹해서 우리 집 창가에 오게 하는 것도 있었다. 예전 도심 아파트에 살때 똘똘한 까치 떼거리와 까마귀 한 마리가 예전 집 창문 가에서 장난을 치다가 잠시 난간을 잡고 쉬던 까치는 고양이가 신기했는지 동료들에게 '깟깟~' 하면서 소리를 쳐 불러 들였고 고양이도 그런 까치가 신기 했던지 서로 소리를 지르는, 도심 아파트에서는 보기 어려운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실베스터와 트위티'. 잡아먹겠다고 쫓지만 정작 잡아먹었다고 착각했을때 죄책감에 시달린다. 쫓고 쫓기는 것이 실제 목적인, 사실은 서로 해칠수 없는 관계. 그러나 현실고양인 달라.

  그때 처음, 노랑이는 소심하지만 분명한 채터링을 보여줬다. 대범하기로는 노랑이보다 한 수 위인 까망이는 창문 밖으로 뛰쳐나갈 듯이 바짝 몸을 낮추고 사냥 준비자세를 취했다. 안아보니 심장은 두근두근, 근육은 모조리 깨어나서 아드레날린 분출 중이었다. 방댕이는 샐룩샐룩, 방충망 안전문이 없었으면 까망이는 분명 새들에게 온 신경이 팔려 뛰어내렸을지 모른다. 까치가 떠난 후에도 창문 가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 경계를 서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한창 오르던 시점에 아파트 팔고 북한산 기슭, 오래된 산기슭 공동주택으로 이사한 몇 안되는 유익 중에는 한 여름 뻐꾸기 소리를 집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있었으니 한 겨울 먹이가 귀할 때 창가에 물과 견과류 같은 것을 놓아두면 새들이 우리집 창가를 지속적으로 찾아 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작년 한 겨울 내내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20년 넘게 이곳에 사신 이웃 할머니 말씀을 듣자하니 작은 감이 무수히 열리는 감나무가 한 그루 화단에 있었을 때는 온갖 새들이 많이 찾아왔다는데 감이 너무 잘고 바닥으로 떨어지자 관리인들이 귀찮았는지 어느 해인지 감나무를 베어 버렸다는 것이다. 아깝기 그지 없었다. 우리 고양이들이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였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감나무는 우리가 이사오기 전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이번 겨울에도 눈 내리고 먹을 것 없을때 창문 난간에 화분걸이를 걸고 시도는 해보겠지만 너무 오픈된 위치, 약간의 보호용 엄폐물이 되어줄 높이까지 나무가 닿지 않는 훤한 창가에 찾아 와줄지는 미지수. 아무튼 자연스럽게 제공되는 삶의 자극은 계속 찾아볼 계획이다.


  고양이들에게 탐험이 끝난 집, 안전하고 평안하고 지루한 영역에서 유일하게 남은 미지의 공간이 있다면 장롱 안이다. 노랑이는 몇 번 허락받고 들어가본 후 호기심을 풀었지만 같은 횟수를 들어가보고도 까망이는 여전히 매일 열려있는 문이 아닌 장롱 안이 궁금하다. 옷장 문여는 소리를 조심히 하는데도 어느 날 실수로 좀 크게 여닫히기라도 하면 쏜살같이 배를 출렁이며 뛰어온다. 이런 모습 보는 것도 몇 년이나 남았을까 싶어 요즘은 애원이 길어진다 싶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문을 열고 들여준다. 장롱 안 먼지청소 잘 한 후라 들어가도 괜찮겠다 싶은 날이면 노랑이에게도 함께 개방 해주는데 노랑이는 이미 다 아는 곳이라 감흥 없다는 듯 얼른 나와버린다. 하지만 까망이는 어둡고 좁을수록, 뭔가 발에 걸리는 게 많을수록 그 안에서 머물고 싶어한다. 신비감이 너무 줄어들기 전에 강하게 거부하는 까망이에게 "이제 나와야 해" 하고 말하면 나오라는 소리임을 귀신같이 알고 낮게 거부의 울음소리를 낸다. 고양이보다 소중한 옷따위는 없으니 그냥 원하는만큼 안에서 놀게 두어도 좋을 것이나 실베스터가 트위티를 쫓는 이유는 잡아먹기 위함이 아니라 쫓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까망이에게 장롱 안은 이 집에 남은 마지막 탐험지인만큼 아쉬움을 남겨두는 것이다. 

 사람 기준으로 고양이의 지루한 삶에 너무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고양이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큰 소리에 민감하고 원치 않는 변화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여행도 어떤 강아지들에게는 좋은 자극이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들에게는 극도로 피해야 할 이벤트다.

  지루함은, 사실 좋은 것이다. 신체적 제약없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이(이반 데니소비치처럼 지루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예측가능하고 평온한 나머지 지루하다.....축복 아닌가. 지구 어딘가에서는 전쟁으로 목숨이 위태롭고 또 어딘가에서는 기아와 재난으로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고양이들에게 권태의 감각을 뺀 지루함은 그저 또 하나의 안전하고 배부르고 졸리고, 그 피곤함 속에서도 털을 고르고 단장을 하느라 꽉 찬, 터럭같이 많았던 날들 중 하나인 것이다.

  이 모든 진실을 알고도 나는 계속 새로운 장난감을 찾고 공인된 고양이 공식마약 캣닙을 쓰기도 하고 패턴을 바꿔 반응 좋은 간식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 뭔가 아이들의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할 이벤트를 찾기도 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을 투영하여 저 아이들도 내가 느끼는 것을 느낄것이라 착각하면서 부질없는 짓. 나에게도 가슴 철렁하는 소식 없는 지루함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지금처럼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지루함을 즐기기를 바라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의 지루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색채의 지루함을 계속 찾을 것이다. 


The End of the 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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