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u Nov 26. 2022

노묘의 시간

12화. 아무리 써도 병원비보다는 싸다. 

  아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지만 솔직히 그 욕심보다 생활인의 무게가 더 무겁지 않은 날은 별로 없었기에 합리적인 수준에서 기준을 세웠다. 섭생의 기초가 되는 사료는 홀리스틱급으로, 캔과 간식은 그때그때의 가성비를 따지는 정도로 절충했다. 그래도 지금은 꽤나 경제적으로 가벼운 삶.... 그래서 가끔은 팬시한 북유럽산 고급 습식 캔도 지르고 기본 사료도 수의사님들 백 명이면 90명 이상이 노묘들에게 가장 추천할 만하다고 하는 로얄캐닌 12+를 먹이고 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가격비교 사이트에 걸러지지 않는 최저가 쇼핑몰 찾느라 시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로얄캐닌 처방 사료계에는 언감생심 발 들일 생각도 하지 않았더랬다. 기본 사료는 그래도 홀리스틱 중에서 많이 비싸지 않은 네추럴코어 국내 대기업 제품을 먹였다.

   

   프랑스산 로얄캐닌이 좋은 줄 알면서도 선뜻 손이 안 갔던 이유는 -누차 강조해왔듯이- 입맛 까다로운 까망이의 특성상, 분명 한 번 업그레이드한 사료를 다운그레이드 하기는 불가능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사들 사이에서 로얄캐닌에 대한 실질 급여 후 후기가 갈렸던 것도 십 년 넘게 직접 임상으로 검증한 네츄럴코어 홀리스틱을 지속하기로 했던 결정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본격 노묘의 시기가 되면서 한 동안 두 녀석의 만성변비, 그중에서도 노랑이의 변비가 좀 심해지면서 로얄캐닌 처방식을 구매하는데 망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비싸도 병원비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것이다. 

  단호박 같은 것이나 습식 간식을 많이 먹이려 노력해봤자 로얄캐닌 가스트로 인테스티널 파이버 리스폰스의 효과를 한 번 경험하고 나면 허무할 정도로 부질없는 수고임을 느끼게 된다. 처방식 라인 가운데서도 비싼 편인 파이버 리스폰스는 겨우 2킬로에 2021년도 하반기까지만 해도 4만 5천 원부터 7만 원까지 가격 형성이 되어 있다가 최근 달러가 급상승한 후로는 6만 2천 원 이하로 구매하는 사이트는 없어졌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미끼이고 막상 검색으로 찾아들어가면 가스트로 인테스티널 제품일 뿐 '파이버 리스폰스'가 아니다. 주의하시길.) 그나마도 6만 원대 쇼핑몰은 금방 품절이 뜨기에 평균적으로는 7만 원 선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는데 이 극악한 가격에도 나무껍질인지 뭔지 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작고 마른 똥을 힘겹게 누던 노랑이가 이 사료만 먹고 나면 제법 튼실한 맛동산을 촉촉하고 윤기 있는 상태로 내놓는 것을 보면 장바구니에 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조금 나은데 한동안 꽤 오래 수급이 끊겨서 왜 수입이 지연되는지 몇 군데 문의를 하기까지 했지만 수급에 문제가 좀 있다는 성의 없는 답변 외에 정확한 사정은 듣지 못했다. 여러 쇼핑몰이 단체로 품절을 걸고 있는 날도 한 달 가까이 지속된 적도 있다 보니 일단 가격이 얼마건 보이면 쟁여야 하는 식으로 지속 가능한 공급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극적인 효과 때문에 사기는 사지만 가족 먹일 기본 식품이 사치품도 아니고.... 비싼 것도 모자라 지속적인 안정공급까지 걱정하면서 계속 로얄캐닌을 먹일 수밖에 없는지, 다시 한번 대안을 찾아야 하는지 고심하게 되는 것이다.


   코숏들의 좋은 유전인자 덕분인지, 기억해보면 아버지가 기르던 품종견들 보다 나와 함께 살아온 우리 고양이들의 병원 출입은 압도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아니, 기본적인 최초 예방접종과 필수 접종을 빼곤 거의 최소화하며 키워 왔던 것 같다. 처음 생후 2주 된 아기일 때부터 분유로, 6주 차부터는 이유식과 병행해갔고 습식 캔과 건사료 비율을 조정하며 점차 중년 이후부터는 다이어트 홀리스틱 사료 베이스에 한 끼는 주식 캔, 그 외 다양한 간식으로 길렀다. 홀리스틱 검증된 회사의 사료라도 사료 변경 시점마다 고생하는 다른 집 아가들의 후기와 달리 우리 집 고양이들은 매번 무난하게 사료  갈아타기에도 성공해서 먹이는 것 때문에 크게 고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12살 넘기고부터 원래도 쉽지 않았던 까망이의 식성이 점점 더 까다로워졌다. 예전에는 습식 캔 사료, 간식들에 대해 먹는 양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예 냄새만 맡아보고 휙 돌아서는 일은 없었는데 까망이의 경우 캔들 중 젤리 제형이 맛없는 캔은 아예 입도 대지 않고 파테 스타일의 캔 중에서는 시그마 세븐 싱가포르 회사 제품 중 고지베리가 첨가된 참치와 보리 첨가 치킨만 좋아한다. 내추럴코어 주식 캔은 한동안 상냥한 가격과 그나마 믿을만한 회사라 감사히 애용해왔으나 -먹성 좋은 노랑이는 여전히 잘 먹는데도- 까망이가 외면하면서 쇼핑리스트에서 계속 빠지고 있는 중이다. 주식 캔 중에서는 가격은 중저가지만 까망이의 기호성이 좋은 ANF제품이나 비싸고 호불호가 그때그때 다른 남반구 수입품 웨루바도 가끔 먹이고 있다. 그전에는 일본산(이라고 쓰여있으나 실질 제조 국가는 태국이 대부분인)을 주로 먹였고 파우치나 진공포장 통 생선토막 간식들도 때깔 좋은 것은 거의 일본 제품들이 압도적이었는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는 일본보다 국내산 중소기업 제품들 라인이 늘었고 특히 원양어선으로 유명한 "사조산업"의 동물 사료계 진출은 눈에 띈다. 오래 이미 경험적 데이터와 임상 증거를 가진 회사 제품도 있는데 노묘들에게는 시험 삼아 급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아직까지 구입해본 적은 없다. 자기표현이 '먹거나, 먹지 않거나'뿐인 아이들이다 보니 보수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건식 사료의 최종 종착지인 로얄캐닌 12+와 변비 완화를 위한 처방식 사료를 약 4:1 비율로 섞어 먹이는 이 루틴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도가 있었다. 거기에 하루 한 끼 습식 캔, 오메가3가 포함된 간식과 츄르, 그리고 그리니치 이빨 과자의 콤비네이션까지 거의 완성된 식단. 이 두어 줄 루틴을 마련하느라 쓴 내 시간과 정성, 돈은 뭐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쓸데없이 검증도 안된 영양제들 먹이느라 고양이들 고생을 시키지 않은 것은 여태껏 잘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 생애주기에 맞춰 주의를 기울여 잘 선택하여 먹이는 것, 그리고 깨끗한 물. 잘 먹이느라 쓰는 돈과 시간은 아까워하지 말자. 건강하게 키우는 노력의 비용은 무조건 병원비와 고양이의 질병 경험으로 무너질 일상의 가치보다는 무조건 싸다. 


The End of this Episode. 

작가의 이전글 노묘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