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잘 드는 남향집의 진가는 겨울에 안다. 아침 한 번 저녁 한 번 보일러 난방을 하는 것 외에 별다른 난방을 하지 않아도 종일 온기가 있어서 큰 추위 없이 겨울을 나는 집. 사람은 그런 집에서도 고양이들은 추위를 탄다. 햇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햇살 에너지를 응축하고 내려온 고양이에게는 그대로 햇살의 냄새가 기분 좋게 난다. 겨울인데도 하루 가장 따뜻한 시간, 태양광 전지 패널보다 탐욕스럽게 한 올 한 올 털코트 가득 볕을 가득 머금은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열기에 몸이 상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인데 한 여름을 제외한다면 쓸데없는 걱정이다.
충분한 열기를 머금고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눈을 가늘게 노곤한 눈을 한 고양이는 집사에게 다가와 어느 한 부분이라도 닿을 듯 말 듯 한, 딱 그 거리에 몸을 뉘인다. 하지만 몸 가득 머금고 있던 온기도 자연히 시간이 감에 따라 식고 고양이들은 이미 해넘이가 시작된 남서향 베란다의 빛은 이미 소용이 다했음을 깨닫는다. 그쯤 되고 나면 그제야 집사를 졸라댈 시간. 개어놓은 이불 앞에서(이불로 만든 터널을 만들어 내라던가) 또는 따뜻한 열기를 뿜어내는 동그란 물체를 바라보며 "냐아~냐아~"울기 시작한다.
10세 이상 묘르신을 모시고 사는 집에서는 깨끗하게 이불을 개어버리는 집정리는 금물. 두툼한 이불 한 채는 항상 펴두기. 어릴 때는 이 정도로 추위를 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10살을 넘기면서부터 매년 겨울보다는 봄, 가을 더 보채는 횟수가 늘었다. 겨울에 운동하러 나가 본 사람이면 확실히 느낄 텐데, 희한하게도 한 겨울은 몸이 익숙해진 덕분인지 실제 뼈를 스미는 추위는 본격적인 난방을 하기 전 가을과 이른 행간의 봄이 더하다. 우리 고양이들도 아마 그런 계절의 이치를 몸으로 아는 모양인지 한 겨울보다는 부쩍 요즘 들어 춥다고 야단이다. 집고양이들의 이런 행태를 보고 있자면 길냥이들의 처지가 더욱 안타깝다. 집 안에서도 저렇게 추위를 타는 녀석들인데... 밖에서 살아내자면 얼마나 춥고 고단할지..., 그런데도 당당하게 다부진 얼굴로 겨울을 살아내는 녀석들을 보면 존경, 아니... 그건 정확한 감정표현이 아니다. 감탄과 경외, 미안함과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든다.
추위도 더위도 잘 안타는 동거 인간 집사들에 비해 더위는 잘 모르는 듯 넘어가지만 추위에는 매우 약한 고양이들을 보고 있자면 이집트 기원설이 무척 신빙성 있게 느껴진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이가 들면 환경, 기후에 대한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우리 집은 직립보행 다리 넷, 꼬리 둘의 2인2묘 가족구성인 데다 평수도 아버지 집보다 넓은데 지난달 난방비는 아버지 집이 2.4배 더 많이 나왔다. 지난달 난방비 충격은 모든 사람들의 이야깃꺼리였지만 사실 오랫동안 나나 남편은 우리나라 도시가스 요금과 상하수도 요금에 대해 -이게 정상 시장가격일 리 없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막상 노인 1인가구 세대의 난방비 청구서를 받아 들고 보니... 만약 아버지가 나와 동생의 생활비 보조를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이었다면 이 난방비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연금생활자 노인이 촛불과 가스스토브에 의지하며 전기포트 사용조차 극도로 제한하며 살고 있다고 한 외신 방송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겠다 싶었다. 오래전이기는 했지만 런던과 베를린의 지인 집에 방문했을 때 처음 받은 주의가 한국에서처럼 뜨거운 물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 샤워는 10분 이내, 샤워기를 계속 틀어놓고 있다가는 샤워부스의 얇은 턱 밖으로 물이 넘칠 수 있으니 그것도 조심하라는 당부도 받았다. (한국의 완벽한 전체방수 화장실을 생각하고 외국의 허름한 아파트를 이용했다가는 아랫집으로부터 누수 컴플레인과 함께 엄청난 피해 복구 청구서를 받게 된다.) 요즘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좀 더 심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켄 로치 감독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같은 작품을 오래전에 내놓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사회적 배경과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가지 않아도 좋을 난방연료비와 수도요금의 선진국화는 현재 빠르게 진행 중이고, 노동자에 대해서만큼은 단단히 색안경을 쓴 이번 정부의 분위기를 보면 고용보험 인정조건은 빠르게 부정수급 단속강화란 명목으로 매우 인색하게 변경될 예정.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한국판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다. 추운 것이 무서운 우리 집 노묘님들과 나의 노인 한 분 건사하는 것까지는 부족하나마 "나"정도로도 어찌어찌 봉양하며 살아가겠지만 이나마 자식도 없는 노인들, 집사 없는 노묘들은 다음 혹한의 겨울을 또 어떻게 나게 될까.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린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라는 스웨덴 청소노동자 여성이 53년부터 69년 중반까지 이어 쓴 긴 일기를 보며 다른 사람들과 다른 구석에서 나는 놀라고 있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대학졸업한 전 사무직노동자가 바라보는 세상보다 훨씬 난민문제, 다른 세계의 전쟁과 기아, 사회문제에 열려있다. 아이를 네 명 낳으면 모두 사회가 부양해 주는 복지는 오히려 별로 놀랍지 않다. 절박하게 일자리가 필요하다며 "리처드 3세"를 인용하면서 사람은 궁해지면 속 좁은 내쇼널리스트가 된다며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가난한 청소노동자 여성의 글(어느 세계에서나 사회 저소득층은 극도로 보수화되는 아이러니가 있기 마련인데도)을 읽으며 2023년의 대한민국 -가난한 편인- 전 사무직노동자는 급격히 후퇴하고 있는 세상을 걱정한다.
날아다니는 것은 무서워... 가 아니라, 추운 것은 무서워.
The End of This Epis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