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민을 배출하는 전통.
주말이라 느긋하게 넷플릭스 새 컨텐츠를 뒤지다 21년 영국영화 “The Duke”가 당겨 틀고 보니 또 헬렌 미렌이다. 이 할머니, 젊었을 때보다 더 많이 찍는다. 셰익스피어부터 첩보물, ‘샤잠’같은 오락물까지 커버하는 영역이 넓은 헬렌 미렌은 어릴적 해리슨 포드 이름에 낚여서 본, 전혀 좋아할 법 하지 않았지만 희한하게 나이들수록 생각나는 영화 “모스키토 코스트”에서 처음 만났다. 언젠가 쓴 적 있는 영화 “트럼보”의 극우 나팔수 헤다 호퍼역으로도 소개한 적 있다.
-여행할 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절하고 선한 뉴캐슬(북부) 영국노인, 노동계급의 자부심은 있으나 노동계급으로서의 기민함은 갖추지 못해 생활력 있고 믿음직한 (동시에 아름답고 우아하기까지 한) 아내에게 살짝 기대어 살지만 스스로 학습한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감출 수 없어 생활 속 정치활동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캠프턴. 노인들에게 BBC수신료를 면제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캠페인을 하느라 병약하고 마른 아들과 빗속에서 서명운동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감추지 못해 택시회사에서 컴플레인을 받아 해고 되기도 한다. 그런 그가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고야작품 “웰링턴 공작의 초상” 낙찰 기념 전시회에서 우연히 그림을 훔치고 그 그림으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 협박편지를 보내지만 결국 그 의도를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위험한 상황에 빠지자 자발적으로 그림을 반납하고 재판을 받는다. 영화 첫 시작도 바로 이 재판장면이다.
좋은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좋은 아버지였고, 로맨틱한 남편이었으며, 선한 이웃이었던 캠프턴은 결국 재판에서 배심원들의 호감과 pathos에 힘입어 내셔널갤러리 그림 프레임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죄만 책임지고 3개월 실형의 가벼운 처벌만 받는다.
그의 미시적이고도 생활화된 캠페인(노인에게 BBC 수신료 무료!)이 요즘 우리나라 시사이슈와 연결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하자고 이 영화 감상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영국 노동계급의 우아함과 재기발랄함에 있고 미시적 민주주의가 세상을 바꾸는데 얼마나 멋진 플랫폼인가를 넌지시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 경제적으로 좀 무능해도 남편으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멋진 말솜씨, 그리고 말에만 그치지 않는 진정성 있는 일관성과 활동력, 다정함. 그 모든 것이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참으로 잘 보여준다.
요즘도 들어있을지 모르겠지만 90년대 중반의 대학에서는 사학과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 신입생 필독서에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공통필수였다. 이 책은 얇기와 반비례하는 맥락적 어려움으로 당시 대부분 학생들의 불평대상이었다. 특히 공감되지도 않고 머리 속에 그려지지도 않는 비유, 너무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름 때문에 지루함으로 챕터 하나를 넘어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좌절감을 키운 것은 책의 번역자 서문이었으니, 우리에게 난해하고 어려운 그 책이 E.H 카가 BBC 라디오에서 일반적인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강연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란 설명이었다. 대체 이런 강의를 들으러 가는 영국 시민들은 뭔가 하는 약간의 부러움과 우러름이 당시 인식의 전부였는데 지금 와 돌이켜보면 공공재 BBC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바가 있었던 것이다. 전업 활동가로 밥을 벌지 않아도, 시민은 활동가의 면모를 갖추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신민이나 국민과 차별성이 있다. 캠프턴이 BBC를 보지 않으면서 시청료납부 거부한 이유는 BBC를 진짜로 보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그 공공재가 영국 연금생활자 노인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될 정도로 비싼 것에 대한 항의였다. 그에 비해 캠프턴의 부인은 집에 있는 TV 수신기로는 수신료를 내도 시청할 수 없음에도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어서” 남편이 거부한 수신료를 비상금까지 박박 긁어 지불하기도 한다. 이 장면에서도 영국 시민들이 자신들의 공영매체 BBC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공영매체는 세상과 자신들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네트워크라고 여기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네트워크 플랫폼은 시민들이 지도자를 숭상하고 팔로우 하기를 바라기보다 비판적으로 사고할 힘, 자기 기준을 가지게 하는데 힘쓴다. 냉소보다는 참여하는 시민을 길러낸다. 그것이 공영방송의 존재가치이고 역할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시민들을 배출해온 시간의 힘과 전통이다.
시사적 이슈로 이 영화를 연결할 생각은 없으나,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좀 찾아보니 현재 영국 BBC수신료는 연간 26만원 수준이고 우리 수신료는 몇 십 년째 월 2천500원, 연간으로도 3만원이다. 영국과 비교하기가 창피한 수준인데다 무엇보다도 캠프턴의 이 캠페인은 결국 영국정부에 의해 2천년부터 75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BBC수신료를 대신 납부하는 방식으로, 2017년부터는 정부에서 BBC 로 그 비용감당 주체가 바뀌었을 뿐, 한 번 도 어느 권력이 재원끊기, 생색 내기를 하면서 자기가 잘 다루지 못하는 “제도”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내가 장악할 수 없다면 망가뜨려버릴테다…의 우물에 독타는 멘탈리티에서 나온 정책이 아니란 말이다. 적십자나 KBS 가 특별한 지위에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을 비난하려면 몇 십 년째 감사 한 번 받지 않고 보조금 지원비중으로는 다른 모든 시민단체를 압도하는 새마을운동, 바르게 살기 운동본부, 자유총연맹에 대해서도 -같은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일관성 있는 잣대를 들이대는 정무적 감각정도라도 갖추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