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매 주말 다섯 끼의 점심 도시락을 싸게 되었나.
어느 날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았다거나 체중이 갑자기 불어나는 등 건강상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급전이 필요해졌거나 아주 값나가는 물건이 갖고 매우 싶어진 것도 아니었다.(다만 나는 항상 건강하지 못한 편에 가까웠고 언제나 사고 싶은 것에 비해 가진 돈은 모자랐다.)
올여름이었다. 당시 얼마 전 옮겨온 이 직장에서 가장 만족하던 것은 '점심식사'였다. n년차 자취생에게 매일 메뉴가 바뀌는 끼니가 있다면, 심지어 그 식사가 맛있다면, 더욱이 그것이 저렴한 가격이라면, 그것이 바로 가장 가까이 누릴 수 있는 회사 복지 중 하나였다. 소소한 불만이라면, 식사의 방향이나 목적이 탄수화물 위주의, 나에게는 좀 자극적인 맛이었다는 점이고 그럼에도 그 말초적인 식단 앞에선 자꾸만 식탐이 늘어 매번 필요 이상으로 먹게 된다는 점 정도.
그렇게 조금 몸이 무거워졌나 느낄 즈음, 식당의 위치와 제공 업체가 바뀌는 일이 있었다. 내부 감사를 통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소규모의 직접 조리형태에서 외부의 기업형 업체를 통해 공급받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 끼의 가격은 전에 비해 1500원이 올랐고(혹시 감사가 내놓은 해결방안이 피고용인에게 더 많은 돈을 받으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식당은 느긋히 걸어도 3분 정도의 거리에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15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멀어졌다.
'3분의 걷기'는 우리에게 식전에는 가볍게 식욕을 돋게 하고, 식후에는 이유모를 죄책감 뒤섞인 포만감을 적당히 무디게 해주는 걸음 수이다.
그에 반해 '도보 15분'이라는 거리는 나에게는 뭐랄까, 말하자면 "점심을 위해 쓰기에 아주 먼 거리는 아니나, 식사가 아주 맛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정도인 것이다. 물론 그것도 걷기 좋은 날에 한해서 말이다. 우리나라는 일 년의 절반은 너무 덥거나 너무 춥거나 하지 않나.
물론 새로 바뀐 업체에서 일종의 프로모션 기간이었는지 아니면 손님이 유지되었더라면 지속될 계획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몇 주간은 매일 다양한 선택지의 메뉴로 나왔다. 그 맛은 사람들의 기대치를 크게 웃돌지도, 못 미치지도 않는 딱 그 정도의 맛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이내 이런 식사를 위해 쓰이는 돈, 한정된 점심시간의 소중함, 영양적 불균형,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시키지 못하는 맛 같은 것들이 불만으로 이어졌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이 분명하다. 다만 식사의 질이 떨어진 것이 먼저였는지, 손님이 줄기 시작한 것이 선행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손님이 적어지자 규모의 경제 면에서나 효율의 관점에서 메뉴는 단순해지고 그마저도 몇 개의 범주 안에서만 반복되는 듯했고, 이런 식단에서의 단조로움은 손님의 감소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단순해진 식단의 단점을 메꾸려는 듯 그 맛은 더욱더 자극적으로 되었지만 그것은 전혀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더 단순하고 더 자극적인 식사는 근처 편의점에서 더 싸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꽤 많은 수가 이제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다만 편의점 음식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그것은 고려사항은 아니었다.
그럼 직접 도시락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사실 도시락을 매번 만드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어 보이기도 한다. 식당의 맛과 가격의 열화가 원인 제공했으면서 사실 직접 만든 도시락이라는 것이 맛도 뛰어나기 어려우면서 가격적인 이득 또한 뚜렷하지 않다. 메뉴의 종류나 그 재료, 또 시기에 따라서 오히려 값이 더 나갈 수 있다. 1인 가구일 때는 더더욱. 더구나 당연하게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태생적 귀찮음을 안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한 끼가 줄 수 있는 행복에는 맛과 가격뿐만이 아니라 내가 먹을 점심을 직접 만든다는 것이 주는 뿌듯함, 맛과 영양을 조절함에 오는 건설적 만족감 등도 포함된다.
그래서 그때부터 직접 점심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