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일

이니셰린의 밴시(2023)

by 리브


이제 네가 싫어졌어. 날 찾아오지 마.


다짜고짜 절교로 시작하는 이 영화를 나는 관계의 단절에 주목하여 보았다. 갑자기 사람이 싫어지는 일은 텍스트 상에서는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권태기라고 할까. 친구와, 연인과 관계에서의 지루함을 겪거나 더 이상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관계를 끊어버리는 상상을 하곤 한다. 영화 속 파오릭과 클룸도 그랬다.





다만 클룸의 ‘통보식 절교’는 회피형에 가까운 답답형이었다. 이유라도 남겨줘야 납득할 것 아니야! 상대가 행동을 고쳐먹어서라도 자신 곁에 남으려고 할까 봐 두려웠던 걸까? 손가락을 자르면서까지 파오릭에게 다가오지 말아라 엄포를 두는 클룸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영화적으로 해석하기에 클룸은 극도로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하였고, 남은 여생에 불필요한 이야기 따위 필요 없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이어서 문제였지만. 관계를 형성할 때는 2인이 짝을 이루는데, 끝낼 때는 한 사람의 선택만으로 모든 게 종결된다는 게 참 웃기고 씁쓸하다.


파오릭은 이유가 중요한 사람이다. 친구가 떠난 이유가 몹시 궁금하고, 동생이 이 동네가 싫어진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무섭기까지 한 클룸의 행동은 그에게 근본적 두려움이 되지 못했다. 네가 날 이렇게까지 밀어내는 이유가 뭔데? 손가락을 자르는 걸 감수할 만큼 내가 싫어진 이유가 뭐냐고! 이유를 알려주지 않자 그는 화를 내며 클룸의 집에 불을 지른다. 이쯤 되니 난 둘의 다툼이 사랑싸움 같기도 했다. 이 둘, 대체 뭐 하는 거지? 누구 한 사람이라도 속마음을 좀 털어놓았으면 해서 답답하기도 했던 후반부였다.



그런데 문득 드는 의문. 왜 제거된 것은 하필이면 손가락이었을까?


클룸은 악기를 연주했다. 즉 손가락을 이용해 삶의 발자국을 남겨왔다. 클룸이 관계를 끊어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알찬 여생이었다. 불필요한 가십거리를 이야기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조용한 방에서 강아지와 악기를 연주하며 웃고, 맥주집에서 청년들과 연주를 함께 하는 것. 이것이 클룸이 채우고자 했던 삶의 순간이었다. 나만의 시간, 온전한 나만의 고민들로 가득한 여생을 꿈꿨다고나 할까?


그런데 꿈이 이루어지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자꾸만 파오릭이 찾아오는 것이다. 전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얼마나 자기가 나를 그리워하는지 어필한다. 클룸은 귀찮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보내버릴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데! 분노에 휩싸인 클룸은 가장 소중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손가락을 없앤다. 그리고 파오릭에게 던진다. 일종의 협박이다. 너 죽고 나죽자는, 네가 입다물지 않으면 나도 즐거움을 포기하겠다고.


가스라이팅 같기도 하고, 지독한 인연 같기도 하다. 이 둘의 결말은 정말이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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