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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03. 2023

우정계약

wave to earth

  이건 나와 나의 오랜 친구 P의 이야기이다.


  중학교 시절의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한 관문으로 ‘비밀 말하기’를 통과해야만 했다. 비밀을 말한다는 건 우리가 서로의 비밀을 아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비밀을 알고 있으니 그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히 친구를 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협박이기도 했다. 진정한 친구 맺기의 순간에서 중요한 것은 비밀의 스케일이다. 너무 시시하거나 중대한 비밀은 피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가족의 비밀을 꺼냈다. 이것은 또 다른 말로 가정사라고 한다. 어느 집에나 있는 가정사는 지대한 특색을 지녔고, 대체로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의 직업은 어떻고, 엄마의 월급은 또 어떠하며, 아빠의 형제는 어떤 일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내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P 역시 자신의 가정사를 읊으며 관문으로 진입했다. 나는 P의 이야기를 한 토시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집중하며 들었다. 그렇게 어느 가정에나 있는 일말의 복잡한 사건들은 ‘진정한 친구 되기’ 계약의 내용이 되었고 “이건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야.”라는 말로 계약서의 도장을 찍어 마무리했다. 우리는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들뜬 마음과 어딘지 모르게 무거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계약서의 형체가 없어서인지 지금까지도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사실 진정한 친구는 그런 사사로운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도 그저 함께 해주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의 수치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기도 했지만 말이다. 오히려 지금 나와 P는 더 많은 것들을 숨기고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정한 친구 되기 계약서는 아마 영원히 갱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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