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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Jul 10. 2022

마음의 위안은 어디서 오는가

활자와 고요를 향한 그대의 욕망에 Cheers

토요일.


해야 할 회사 일은 있지만 내 주말을 일로만 소진하고 싶지 않은 날.

마음 한편이 바쁘고 외로워 타자기 위에 손은 올려져 있고 눈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지만,

내 마음의 발걸음은 집 밖 어딘가 강가를 내달리기 싶은 날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사람 많고 복작거리고 둘째가라면 서로운 오피스 시티다. 그래서 주말은 오히려 상가 대부분이 일찍 문을 닫고 길거리에 인적이 드물다. 오후를 거진 다 보내고 나서야 나가기로 마음먹은 나는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오늘은 약간의 알코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디 조용히 한 잔 마시고 올 곳이 없나 싶어 이곳저곳을 검색해봤다. 지금 사는 곳은 편의시설이나 교통면을 생각했을 때 불만은 없으나 이럴 땐 참으로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 회식할만한 상가들이 한 블록에 테트리스를 한 마냥 요리조리 끼어 박혀 있건만 나같이 혼자 조용히 정말 한잔의 술을 들이켜면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끄적이고 싶은 인간에게는 그 작은 사치와 여유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 하지만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집안의 공기를 주기적으로 환기시키듯 내가 매일 눈뜨고 감는 공간에서 벗어나 편한 행위들을 하고 싶은, 소정의 돈을 써서라도 나에게 온전한 자유의지를 허용해주고 싶은 순간.


그래도 나와 비슷한 무엇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북바(BookBar)라는 곳들이 간간이 생겨나고 있다. 나에게 정말 희소식이었고 그런 곳을 볼 때마다 꼭 가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 합정, 연희동에 위치했다. 2호선으로 치면 나는 그곳의 거의 정반대 지역에 살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오가는 데만 2시간은 넘게 소요된다. 물론 그렇게 해서 갈 수는 있지만, 보통 마음의 위안을 위해 작고 조용한 공간을 찾을 때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은 때라는 게 문제이다. 후딱 집 밖에 나가 한잔하고 오고 싶은데 가게에 머무는 시간보다 오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면 자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맛집 식당은 언제나 내가 사는 동네에 없다는 휴리스틱한 진리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인가.


그렇게 안타까움만 쌓여가던 중 정말 감사하게도 역삼역 인근에 작은 술과 책이 있는 가게를 찾게 되어 방문했다. 가게 이름은 마이리틀케이브, 가게 바로 앞까지 가서도 한 번에 가게를 찾지 못했다. 3층에 있지만 건물에 간판이 없었다. 건물 입구에 달린 작은 푯말이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카카오맵과 건물을 번갈아 보던 나에게 확신을 주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내가 갔을 때는 나 외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책과 작은 나무 책상들과 의자들 소파가 놓인 시원한 공간에 들어서자 물속에서 튀어올라 숨을 쉬는 것 같은 해방감이 느껴졌다. 차마 일에 대한 압박감을 온전히 떨쳐내지 못해 어깨에 메고 온 노트북과 마우스를 내려놓고 주인에게 추천받은 진 베이스의 칵테일을 마셨다. 도수가 높은 걸 추천해달라고 하니 눈을 반짝이며 가게 있는 술들은 대게 40도 이상이라는 주인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당시의 나에게는 약간 알코올이 선사하는 몽롱하고 기분 좋은 휴식이 필요했다. 손 끝과 속눈썹 끝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 있는 외로움들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지는 처마 끝 고드름처럼 중력에 이끌려 떨어져 줬으면 하는 애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이상한 초여름의 밤이었다.

창가에 앉아 주위에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의도치 않게 엿듣다가 일에 잠시 몰두했다 본인 먹으려고 만들었다는 깔루아 밀크를 건네는 주인분의 술잔을 받아먹다 보니 3시간은 훌쩍 흘렀다.

그 시간 동안 한잔의 술을 더 마시고 혈관이 약간 확장된 기분 좋은 알딸딸함이 느껴졌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고 머리카락 끝의 외로움은 일부 떨어졌음에도 샘솟는 피지처럼 또 하나 피어오른 외로움은 다시 머리카락을 적시는 밤이 되었다.

마음의 위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늘은 종이와 나무로 둘러싸인 이 공간과 노란 조명과 시원한 공기와 알코올, 그리고 이 하나의 글을 쓸 만큼 내게 남은 기억이었다.


나에게 온전한 안식을 선사하기 위해 또 다른 공간을 찾아가야겠다.

이제는 합정도 연희동도 가야겠다.

그래도 이왕이면 집 근처에 이런 케이브들이 우후죽순 드러났으면, 카페든 북바든 술집이든, 나같이 하루하루를 휘적이며 다니는 이에게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 될 공간들이 더 생겨나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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