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트 Oct 02. 2022

[단편] Starry, Starry night

별밤

내 방문은 미닫이에 가운데 올록볼록한 유리가 심어져 있는 나무문이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문이 하단 레일을 미끄러지며 내는 높은음과 흔들리는 둔탁한 나무소리가 어우러졌다.

그 탓에 아무리 살살 방문을 열려해도 요란한 소리가 났고 나의 동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점이 특히나 마음이 안 드는 방이었다.

그 작은 소리도 거슬리는데 새벽 3-4시에는 이상하리만치 오토바이들이 서너 대는 꼭 지나갔고 술에 취한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시시덕거리는 변성기가 끝나지 않은 남자애들 소리가 스쳐갔다.

기껏해야 슈퍼마켓과 작은 놀이터밖에 없는 이 좁은 골목길을 굳이 오토바이로 지나가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시간에 저렇게 밖에 있을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학원을 다녀오는 날이면 최대한 미적거리며 집으로 가는 시간을 늦췄다.

그러다 보면 밤 10시가 넘기 일쑤였고 남은 학생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운전해 주시는 선생님께 나를 가장 늦게 내려달라고 자처했다.

그러다 보면 동선이 희한하게 꼬여 걸어서 15분인 집-학원 거리를 학원 버스를 타고 30분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 날에는 차 안 라디오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의 오프닝과 내레이션과 노래 몇 곡, 운이 좋으면 그날의 코너를 슬쩍 들을 수 있었다. 올드한 바이올린의 운율을 듣게 되는 날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기분이 상기되었다.

작은 동네 학원이다 보니 남자 강사 한분이 운전까지 도맡아 했고 어쩌다 보니 1대 1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자주 생겼다.

뾰족하리만치 뻗은 생머리에 흰색 무테안경을 낀 차가운 인상을 가진 분이었다.

평소에도 '공부? 하기 싫음 하지 마. 너네들 시험 여러 번 보면 난 일자리 안 없어지고 좋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약간 괴짜 같은 면이 있었다. 그런 솔직하고 무심한 태도가 되려 사춘기 학생들에게 먹혔던 지라 고등부 사이에선 남녀 할 것 없이 꽤나 인기 있는 강사였다.


여느 때처럼 가장 늦은 차례로 집에 가게 된 늦여름날 무슨 생각인지 질문을 했다.

'선생님, 학생들 있는데서 일하는 게 재밌으세요?'

선생님은 미러로 잠깐 내 쪽을 쳐다보곤 시선을 거두었다.

'가르치는 건 좋아. 그게 학생들을 좋아한다는 거랑은 다르지'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럼 제가 이런 질문하는 것도 귀찮으세요?'

거울 너머로 선생님의 눈썹이 살짝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니, 학생들이랑 얘기하는 게 싫다고 한 적은 없는데. 웬일로 먼저 말을 하네'


학원에선 딱히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쉬는 시간만 오길 기다렸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는 무리에도 끼고 싶지도 않았고,

숙제를 하지 않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몇몇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시간을 쓰는 강사들의 수업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건 나의 수업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학원에서 자습을 할 수 있게 허락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1시간, 어느 날은 방과 후 5-6시간을 학원에서 한자리 차지해 앉아 자습하다 피곤하면 그 자리에서 엎드려 잤다 일어나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넌 왜 맨날 집에 늦게 들어가려고 해. 집에서 쉬지'

'집에 있는 게 쉬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래? 불편하게 엎드려 잘바에야 너 방에서 자는 게 낫지 않겠니'


순간 학원에서 너무 자주 잤나라는 생각에 뜨끔하며 시선을 창 밖으로 던졌다가 수업 외 시간에 자는 게 잘못인가 싶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방 문 여는 게 시끄러워서 마음에 안 들어요. 별로 방에 있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방이 싫다고? 너 사춘기가 이상하게 왔다'

'그러니까요. 빨리 커서 떠나고 싶어요'

'그 말 들으면 부모님이 서운해하시겠는데. 어디로 가려고'

'몰라요. 어디든 가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평생 여기서 일하실 거예요?'

'아니지. 그런데 뭐 난 큰 목표는 없어. 지금도 나쁘지 않고'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빨리 크고 싶을 때지. 근데 나이 먹는다는 거 별거 없다. 몸은 늙는데 생각은 고만고만해'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 선생님이랑 저랑 정신연령은 고만고만할 수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는데 그 고만이 그렇게 우습진 않을 거다. 겪어봐'

'조금 더 애 같은 생각을 해라. 나때되면 부끄러워서 그런 생각한다 말도 못 해'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뭐 경칩에 기름칠이라도 하면 안 되나? 시끄러우면'

미닫이 문이라는 말을 안 했더니 엉뚱한 경칩 얘기가 나왔지만, 그래도 운전 중 그 짧은 새 뭔가 고민해준 게 고마웠다.

'아 네, 한 번 해볼게요'


학원 버스를 내리는데 어쩐지 마음이 약간 후련했다.

현관문을 최대한 조심스레 열었다.

'왔나 보네'

다른 방문 너머로 나의 귀가를 인지한 가족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들리기나 할까 싶을 만큼 어정쩡한 크기의 목소리로 대답하고 내 방으로 몸을 돌렸다. 덜거덕 거리는 문을 최대한 힘을 주어 바닥 레일을 향해 누른 상태에서 오른쪽으로 밀어 문을 열었다.

그러면 문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나는 소리가 그나마 덜했다.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쓰고 누웠다. 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다들 답답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이고 겨울이고 얇지도 않은 이불 안에 머리카락 하나 삐져나오지 않게 들어가 누워 잠을 잤다. 여름이면 숨이 답답해 이불을 한 번씩 풀썩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놓는 일이 없었다.


이불은 흰색과 주황색이 섞인 보드라운 소재였는데, 불을 켜고 이불 안에 누워있으면 전구색조명을 켠마냥 따뜻한 색감이 감돌았다. 물리적으로 코앞을 막고 있는 천 쪼가리 안에서 눈을 감고 상상했다.

성인이 된 나와 나의 꿈과 내가 일궈낸 미래를. 내 심장소리가 귀에 들릴 듯 적막한 밤이었고 손에 잡히지 않는 내일에 눈물이 났다.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안녕 싱가포르, 안녕 싱가포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