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트 Jun 06. 2023

[리뷰] Cyberpunk:edgerunners

(스포가득) I really wanna stay at your house

나는 지금껏 본 드라마보다 애니메이션 수가 훨씬 많다. 각각에 대한 선호가 아주 극단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특히 애니메이션에 '진심'인 사람들을 보면 나는 정말 잘 쳐줘봐야 좋아하는 편? 정도다)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애니메이션은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뇌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태에서는 그런 척, 하는 척 연기를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불쾌감으로 느껴져서 차라리 아예 비현실을 담은 만화를 보는 쪽을 택해왔다. 와중에 화제작들이 나오면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나 사로잡았을까 궁금해서라도 보게 된다. 그렇게 근래에 본 것이 'Cyberpunk:edgerunners'였다. 넷플릭스 Top 10 작품으로도 몇 번 거론되기도 했고 리뷰 영상들 댓글만 봐도 해외에서 특히나 평이 좋아 보였다. 추가로 조금 특이한 것은 연관 검색어로 '후유증'이 뜬다는 것.


사실 난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동안에는 왜 이렇게 높은 순위를 차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계관이나 캐릭터 설정에서 특별한 색다름은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그저 동글동글, 색으로 치면 파스텔톤만 가득한 유아틱한 애니메이션이 아니어서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본 지는 꽤 지났지만 이제서라도 리뷰를 써놓고 싶은 것은 나도 어느 정도 후유증을 겪어서 일 지 모르겠다.


전체적인 애니메이션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상당히 선정적이고 잔인한 설정들도 한몫.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디스토피아를 그려놓은 듯 형형색색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도시와 사람의 몸을 개조시킬 수 있는 무법도시.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가난하고 재능 있는 데이비드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를 잃고 의도치 않게 손에 넣게 된 군용 '산데비스탄'을 몸에 이식하게 된다.

수많은 이들의 표적이었던 강력하고 위험한 무기를 이식하고도 살아남은 데이비드는 루시를 만난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루시는 그를 자신이 속한 크루에 이끌고 간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리더인 메인과 루시, 이 밖의 독특한 설정을 가진 인물들로 구성된 크루에 합류해 위험한 일들을 처리하는 용병의 삶을 살게 된다.


사람들이 emotional damage를 입었다고 할 만큼 이 애니메이션에 감정적 동요를 느끼게 한 것은 데이비드와 루시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자신만의 꿈은 없었지만 순수한 데이비드, 달나라 여행이라는 꿈이 전부였던 루시.

What's yours


브레인 댄스를 하는 장면에서 액세서리인 듯 콘돔인 듯한 것이 나온다

브레인 댄스를 통해 루시가 자신만의 달로 데이비드를 데려간 이후, 데이비드는 루시의 꿈을 이뤄주겠다는 꿈이 생기고 둘은 언젠가 함께 달에 갈 것을 약속한다.


루시가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날이자 둘의 첫날밤을 암시하는 이 대목은 ost과 더불어 어둡고 황량한 달이 둘 만의 무대로 보이는 이 애니메이션 전체에서 가장 로맨틱한 순간이다.

물론 이 로맨틱한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리더였던 메인의 죽음 이후 팀을 이끌게 된 데이비드,

데이비드를 잃는 것만은 막기 위해 그를 쫓는 무리들로부터 그의 흔적을 지우고, 그를 지키고자 남몰래 위험한 넷다이브를 계속 시도하는 루시.

이런 사정을 모른 채 그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팀원들의 요구에도 심지어 자신이 그녀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잡지 못하는 데이비드.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의 신체를 잃고 강해지는 데이비드

그렇게 둘은 그 무엇보다 서로를 원하면서도 조금씩 서로에게 하지 못할 말이 생기고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다 임무수행 중 데이비드와 크루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부재로 인해 팀, 정확히는 데이비드가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을 알게 된 루시는 뒤늦게 이를 수습하려 하지만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데이비드는 루시에게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결국 임무수행 중 죽게 된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기 위한 필살의 노력은 결국 데이비드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최종적으로 데이비드가 수행비 명목으로 남겨둔 몫으로 루시는 달에 가게 된다.

루시는 평생의 꿈이었던 달나라 여행을 드디어 이루게 되지만 달을 유영하는 루시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함께 오자는 약속을 한 순간부터

루시가 가고 싶었던 달의 모습은 달라졌을 수도,

어쩌면 둘의 마음에는 달보다 중요한 꿈이 생겼을지 모른다.


함께 있어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 데이비드, 너의 자유를 위해 다녀오겠노라는 말을 못 한 루시.

둘은 흔들림 없이 서로를 위했지만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 돼서야 서로의 진심과 자신의 깊은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 이런 순수하고 미련한 마음이 극도의 실리주의과 기괴함만 남은 사이버펑크 세계관과 대조를 이루며 애니메이션을 본 여러 이들에게 후유증을 남겼을 것이다.


OST 가사는 아이러니하다.


I'm on top of you, I don't wanna go

'Cause I really wanna stay at your house

And I hope this works out

But you know how much you broke me apart

I'm done with you, I'm ignoring you

I don't wanna know


너의 집에 있고 싶지만 너랑은 끝이다.

루시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자면

데이비드와 너무나 함께 하고 싶지만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을 체념하고 이제 그의 존재를 잊겠다는 다짐처럼 들린다.


개인적으로는 메인의 죽음 이후 급격히 냉소적으로 변한 데이비드의 분위기와, 누구보다 똑 부러진 캐릭터이면서도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루시를 보고 상당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종래의 비극을 위해서 깔려야 했던 서사임을 알지만 서로 헐벗고 집안을 누비는 상황에서도 정적으로 일관되게 된 데이비드와 루시의 관계는 아쉬움이 크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를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근간의 힘이었지만 이를 올바르게 표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둘을 회복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루시의 꿈을 이뤄주고 죽은 데이비드는 평안했을까.

홀로 달에 간 루시는 행복을 찾았을까.


애니메이션이 끝난 시점에는 상당한 찜찜함이 남는다. 원작이 게임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고 해소되는 것보다는 새드엔딩으로 만들어진 여운이 더 어울리는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비현실적 설정을 통해 일상에서 유치하다 치부되던 질문을 던지고 본능적이면서 인간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다. 그런 면에서 특별함은 모르겠으나 장르의 매력을 잘 표현한 작품이란 생각이다.

Be happy, guys
작가의 이전글 [단편] 이 날짜의 추억을 돌아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