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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May 12. 2024

Hello there,

여전히 나는

매주 있던 모임이 오래간만에 휴식기를 가졌다.

모임 참여자 두 명이 해외로 떠나는 일정이 생기면서 이번주 모임은 생략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무런 정해진 일정이 없는 주말이 도래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며칠뒤의 내가 조금 더 분발해 준다면 이번 주의 나는 조금 더 게을리 있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요일 밤인 지금, 결과적으로 한없이 느슨한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돌아보니 한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했다.


비바람이 치던 토요일에는 작년 말에 난 사고 때문에 새로 끼워야 했던 차량앞쪽 왼쪽 라이트에 있는 부품을 받아 끼웠다. 사고 보험접수 후 두어 달 지났을 때 정비소에서는 아직 부품이 입고되지 않았다며 부품이 오는 대로 연락을 주겠노라 하였다.

기능적으로 있든 없든 문제가 되는 부품은 아니어서 연락 주겠거니 하고 살았는데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에게는 거슬리는 부분이었나 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때 직장동료가 그 부품은 아직 못 받은 것이냐며 말을 건넸다. 여태껏 정비소 연락을 기다리고만 있는 내가 조금은 답답했는데 직접 브라우저를 켜고 해당 부품의 품번을 알아내 해당 부품이 버젓이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음을 알려줬다. 동료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정비소에 연락을 했다. 정비소는 여전히 부품이 입고되지 않았다는 말만 전했다. 그 순간 나도 마음 한편이 울컥해서 국내 온라인몰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부품이 어떻게 반년이 다돼 가도록 정비소로 입고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냐 되물었다.

정비소 측에서도 그 말에 흠칫했는지 확인해 보겠다며 통화를 급히 끊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 후에 다시 연락을 주어서는 내일 부품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찾아오라 하였다. 분명 애초에 부품주문이 누락된 것 일터였다. 정황설명이나 사과도 없었지만 더 따지고 싶지도 않아 그저 알았다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인고의 시간 끝에 얻게 된 부품을 받으러 가는 날이 어제였다.


오전까지 구름만 낀 정도이던 날씨가 오후가 되더니 길 가던 사람의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 비바람 치는 날씨로 변했다. 비가 오는 주말, 도로는 차가 느릿느릿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 약속이 없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가만히 음악을 틀어놓고 있자니 지난한 시간이 조금은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범퍼 어디가 조금 뒤틀린 건지 부품이 꼭 맞게 들어가진 않았지만 빠지지 않게 끼울 정도는 되었다. 여하간 이제 이곳에서 처리할 일이 마무리되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운동화 속에 들어간 아주 작은 돌조각처럼 가끔 톡톡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잘한 일들을 마저 했다. 빨래도 하고 잠깐 헬스장도 다녀오고 분리수거도 했다. 그 와중에 회사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이 하기 싫다기보다는 지금은 다른 소소한 것들이 더 마음이 끌렸다.

지난 화요일 첫 출근을 한 현 직장은 인턴경험까지 포함하면 6번째 직장이다.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프로 이직러'라는 칭호를 내려줬다. 나에겐 칭찬도 욕도 아닌 타이틀이어서 큰 감흥은 없었다.

새로운 곳이라는 것이 나에게 주는 감흥 또한 크진 않았다. 그저 이전에 배우지 못한 무언가를 배우기 바라고 왔고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 이젠 이곳을 떠날 일만이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벌써부터 자리 잡아있다.


새로운 어딘가로 도달한다는 건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존의 내 자리를 이전이라는 과거로 넘겨줘야 하고 또 한 번 나의 루틴을 뒤흔들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손에서 놓고 싶지 않던 익숙함과 상황마저 스르륵 놓아주어야 한다.


가끔 창밖을 내려다보면 깊은 상실감이 몰려온다. 꿋꿋이 살아간 하루 끝에도 눈물이 맺힐 만큼 찌릿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분명히 안녕한 하루였것만 이처럼 사무치는 마음이 들 때면 어떻게 이를 달래줘야 할지 모르겠다.

와중에 한 방법으로 글을 쓰는 날이 있다. 그러면 오늘은 글을 썼다는 작은 성취감과 글로 옮겨진 감정으로 인해 조금 더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써낸 글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은 흐린 홀가분한 마음도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죄책 감 없이 하소연과 푸념을 하고픈 마음에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쓴 글은 훗날 돌아보기에 너무 부끄러운 문자들의 나열이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오늘의 마음을 몇 자 남기기로 했다.

다음 주말엔 어딘가를 가보아야겠다. 상황이 허락할지 모르겠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면 어떤 마음이 들지 모르겠지만 한번 다짐해 본다. 다음 주말엔 어딘가로 가자. 서울을 떠나 하늘에 별이 보이고 휴대폰을 보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을 그런 곳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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