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은 2022 게임 결산
1. 인트로
게이머로서 2022년은 풍년이었다. 2021년에 출시 예정이었던 게임들이 여럿 연기되면서 2022년에 출시 되었으며, GOTY (game of the year - 올해의 게임) 경쟁도 올해는 아주 치열했다. 재미있는 점은, 올해 PC/콘솔 GOTY인 엘든 링 (Elden Ring)과 모바일 GOTY인 마블 스냅 (Marvel Snap) 둘 다 기존 게임의 틀을 깨부수면서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가장 주목받은 2개의 게임과 모바일 부문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게임이 각각 어떤 매력 포인트를 가지고 2022년을 빛냈는지 살펴보자.
2. 엘든 링
올해 GOTY (Game of the Year - 올해의 게임) 엘든 링 (Elden Ring)을 만든 프롬 소프트웨어는 다크 소울 시리즈 (Dark Souls)로 유명해졌다.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게임 시리즈로 알려진 다크 소울은 특유의 답답함과 음침함으로 많은 유저의 사랑을 받고 있고, 특히 다크 소울 3는 난이도를 낮춰서 대중에게 조금 더 접근성 있고 다크 소울이라는 시리즈를 널리 알린 게임이다. 그러나 여전히 다크 소울 특유의 게임 플레이를 유지했기 때문에, ‘다크 소울은 어려운 게임’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진 못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다크 소울 시리즈의 사실상 차기작인 엘든 링이 혜성같이 등장했다. PC 최적화 이슈로 처음에 불만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12월 29일 스팀 기준 출시 10개월 만에 출시 6년 넘어간 다크 소울 3 대비 리뷰가 2배 이상인 45만 리뷰 이상 달려있다.
출시 전부터 ‘다크 소울 4’라고 불리던 엘든 링은 어떻게 대중에게 접근성을 높였을까? 프롬 소프트웨어는 게임의 장르 자체를 바꿔버려서 ‘오픈 월드’라는 돌파구를 선택했고, 그 덕분에 게임 플레이 자유도를 제공했다. 기존 다크 소울 시리즈는 진행 순서가 거의 정해져 있는 게임이었다. 다시 말해서 게임이 시키는 대로, 정한 난이도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엘든 링에선 몇몇 보스의 순서는 정해져 있지만, 대부분은 플레이어가 준비되었을 때 싸울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심지어 첫 번째 메이저 보스로 보이는 접목의 고드릭도 필수 보스가 아니고, 그가 지키는 성 외곽을 돌면 싸우지 않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게다가 지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동기부여도 확실하게 제공한다. 맵 곳곳에 신규 무기, 마법, 소환 영체, 아이템 등등 흩뿌려져 있고, 어디를 가든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때로는 새로운 던전, 때로는 필드 보스, 때로는 새로운 퀘스트, 때로는 숨어있는 상자를 발견할 수 있어서, 모험을 하면 보상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러다 보니 엘든 링은 모험 자체가 즐거운 게임으로 느껴지고, 자연스럽게 플레이어가 모험하면서 많은 아이템을 획득하고, 이 아이템들이 다양한 전투 방식으로 이어진다. 다크 소울에서는 근접 무기 들고 싸우는 전투가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하는 전투였다면, 엘든 링은 무한에 가까운 아이템 조합으로, 자기 스타일에 맞게 보스와 싸울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한테 맞는 플레이 스타일로 전투를 할 수 있고, 강제되는 전투도 비교적 적고, 모함 자체가 즐겁다는 점에서 다크 소울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3. 마블 스냅
마블 스냅은 전작이 있는 게임은 아니지만, 카드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가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에서 다크 소울 같은 게임과 비슷하다. 카드 게임은 전략 싸움이 중요하기 때문에 룰이 복잡하고, 외워야 하는 카드 정보도 많다. 대표적인 대전 카드 게임인 매직 더 개더링 (Magic: The Gathering), 유희왕, 하스스톤 (Hearthstone)은 각각 한 플레이어가 60장, 40장, 30장을 쓰다 보니 플레이 시간도 길고, 마음먹고 공부해야 제대로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진입장벽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진입장벽이 되는 요소를 거의 없앤 수준으로 출시된 게임이 마블 스냅이다. 각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카드를 12장으로 줄였고, 초반에는 획득하는 카드 목록을 어느 정도 정하고, 게임 시간까지 3분 내외로 줄이면서 유저가 입문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노력의 필요치를 대폭 줄였다.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도 3개 중 2개의 ‘구역’에서 이겨야 하는데, 구역마다 효과가 다르고 구역이 매 판 랜덤으로 등장해서 운적인 재미 요소까지 추가했다. 전략이 중요한 장르에서 운적인 요소가 독이 될 수도 있는데, 마블 스냅은 라이트한 접근으로 실력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장치를 준비했다.
그리고 ‘구역’ 시스템이 있다고 실력 요소를 뺀 것도 아니다. 라이트하고 운적인 요소를 추가하는 대신, 통상적인 카드 게임과 다른 승패 시스템인 ‘스냅’을 도입했다. 마블 스냅의 점수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 예시를 들자면, 매 판에 ‘판돈’ 느낌인 점수를 걸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리고 각 플레이어가 한 번 ‘스냅’을 할 수 있고, 스냅을 하면 (마치 고스톱처럼) 해당 게임에 베팅 된 판돈을 2배로 늘릴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카드 게임처럼 매 판 이기려고 하는 게임이 아니라, 언제 베팅 된 점수를 늘리고 언제 적절하게 빠져야 좋을지를 판단해야 하는 색다른 실력 요소를 추가했다.
그러면서도 마블 스냅이 대단한 부분은, 온라인 게임에 필수인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까지 잘 구축해놓았다. 대부분의 카드 게임에서 카드 팩을 여는 ‘뽑기’ 형태를 취하지만, 마블 스냅은 게임 플레이하며 카드 외형을 강화해야지만 카드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인 게임 재화를 구매해서 카드 외형을 강화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일일 결제 제한, 무료 퀘스트 대비 낮은 효율, 그리고 레벨이 높을수록 낮아지는 확률로 인해 과금 효율이 매우 안 좋아서 자연스럽게 과금에 대한 의욕을 낮춘다. 정기적으로 내는 시즌 패스(4주에 15,000원)나 기타 패키지들 (대부분 5만 원 이하)이 훨씬 과금 효율이 좋아서, 천천히 즐기는 것을 오히려 권장하는 개발사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요약하자면 전략 요소, 과금 시스템, 학습량 등 카드 게임이라면 생각될 요소 대부분에 독특한 변화를 줘서 참신하고 재미있는 하나의 게임으로 합쳐놓았고, 지속 서비스 가능한 과금 구조까지 잘 구축했다.
4. 번외편 -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위의 두 게임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고 유저의 유입을 늘렸다면,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이하 라그나로크)는 온전히 기존의 것을 유지한 채 인기를 끌었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4년 만에 나온 신작이 같은 캐릭터와 세계를 등장 시키다 보니 재활용하는 그래픽 애셋이 많은 게임이다. 대체로 게임에서 이런 재활용은 악평 요소가 되지만, 라그나로크에서는 오히려 이 반복성이 스토리에 힘을 실어준다. 전작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라는 걸 상기시키는 캐릭터들의 대사들, 익숙한 장소들이 오히려 연속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특히 칭찬받는 스토리 또한 연속성을 통해 힘을 발휘한다. 신살자였던 과거로부터 도망친 크레토스는 전작에서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신인 발두르를 죽이면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라그나로크에서는 신살자로 돌아온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자기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너무 내용이 길어져서 스토리적인 부분을 적을 수는 없지만, 전작에서 부각된 부성애, 과거 청산에 이어서 미래를 어떻게 함께 나아갈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며, 마지막에는 아들을 인정하며 닫혀있던 마음을 여는 것이 오랫동안 크레토스의 여정을 지켜보던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5. 마치며
이미 자리 잡은 시리즈나 장르에 새로운 유저를 유입시킨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미 기대치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고, 게임사 입장에서도 너무 큰 변화를 줘서 기존의 플레이어까지 없어지게 하는 것은 너무 큰 리스크다.
그래서 올해 각각 PC, 모바일 GOTY를 받은 엘든 링과 마블 스냅은 특히 더 대단하다 생각된다. 두 게임은 과감한 선택을 통해 진입장벽을 현저히 낮추면서도, 여전히 그 시리즈/장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임성을 보존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사이버펑크가 최근에 애니메이션으로 유저 유치에 성공한 사례를 고려하면 미디어를 통해 확장성을 얻은 것이 아닌, 오직 게임플레이 요소 하나로 승부를 봤다는 점에서 더욱 대단하다. 그리고 두 GOTY의 정반대인, 기존에 한 걸 보완해서 더 잘해서 사랑받은 라그나로크까지 해서 게임이라는 미디어 내에서도 정답이 없고, 적용하는 요소가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재미있는 게임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한 해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