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의 사랑의 단상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을 보고왔다.
여름 휴가는 다가오는데 몇 년째 함께할 애인이 없어 고독하고 외롭고 서글픈 델핀, 그치만 외롭다고 해서 아무나 막 만나고싶지 않다. 진중하고 잘 맞는 사람과 함께이고싶다. 예민하고 소심한 델핀은 친구들처럼 적극적으로 어필하거나 다가가는 성향도 아닌데다가 지나치게 신중하고 즉흥적이지도 않다. "가만히 있는다고 왕자님이 찾아오진 않아. 뭐라도 해야지." 델핀을 답답해하고 다그치는 친구들의 말에 딴에는 뭐라도 해보려고 애쓴다. 친구 따라서 시골에 놀러가기도 하지만, 녹음에 둘러쌓인 숲에서 델핀은 고독감에 눈물 흘린다. 상상해봤던 기막힌 우연, 그런거 없고 계속해서 홀로 겉도는 자신을 발견할 때 델핀은 강한 현타를 맞으면서 동시에 자존감 하락을 느낀다. 혼자 파리에 남겨지면 정말 비참할것 같아서 계속해서 휴양지로, 다시 파리로 오고가길 반복하는 델핀. 가진 것도 보여줄 것도 없어서 자괴감을 느끼는 모든 순간에 푸른 녹음과 파란 빛, 뜨거운 태양, 녹색광선들이 주변을 둘러싸고있다.
녹색 광선이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여름과 푸른 녹음, 초록과 파랑, 빨강 등 어떤 힘있는 색채들을 보여주는데 특히 델핀이 입은 옷들이 너무 예뻐서 계속 눈이 갔다. 유행은 돌고돈다 뭐 그런건가...
델핀은 종종 참다 못해 눈물을 터뜨리곤 하는데, 특히 자신의 처지가 너무 한심하고 비참할 때 그런 눈물이 나는것처럼 보였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남들 몰래 푸른 숲을 홀로 산책하다 바람이 불자 서글프게 우는 모습이.... 아름답고 슬픈 파랑의 델핀. 델핀이 어디에 서있건 그 모습은 한폭의 그림같았는데도 델핀은 그걸 모른다. 어느 순간 주변을 빙빙 겉도는 자신을 발견할 때, 비참해지는 델핀의 심리가 마치 나같아서 감정이입이 됐다ㅠㅠ
"왜 울어, 휴가 때문에?"
"아니야"
"그럼 왜울어, 남자 때문에?"
"그런게 아니야"
델핀을 시골집으로 함께 데려간 친구는 저렇게 묻는다. 왜울어, 남자때문에?
남자 때문에 우는게 아니라 혼자서도 괜찮지 않은- 그런 나 자신을 보는것이 힘든것이다. 스스로 충만할 수 없는 델핀은 친구의 말에 무너진다. "남자때문에"우는거냐 물어보다니.... ㅠㅠ 넌 친구도아냐 진ㅉㅏ.
휴가를 갈 사람이 없어서 슬픈게 아니라 다들 떠나고 텅 빈 파리에 남아있으면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게다가 그런걸 의식하고있는 나 자신이 싫다고!
는 그냥 내가 이해한 델핀의 생각... 어쨌든 델핀은 친구들이 말해준대로 적극적으로 인연을 찾아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망함 뿐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있나, 여기서 뭘 하고있나... 그래서 알프스까지 버스타고 갔다가 하루만에 돌아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마음 뭔지 넘 알거같아 ㅋㅋㅋㅋㅋ보면서 든 생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생각은 다들 비슷하다....
휴가지에서 만난 여자는 자신은 진심을 보여주는 대신, 게임을 한다고 얘기한다. 내가 어떤 카드를 갖고있는지 다 보여주지 않는다고. 그리고 델핀은 자신은 가진 카드가 없다고 생각한다. 카드가 없으니 게임도 못하고 집에 가려할때, 어떤 남자를 만난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지는 순간 녹색 광선을 본다면 함께있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할머니들이 하는 대화를 엿들은 델핀은 남자와 해질녘의 바다를 함께 구경한다. 찰나의 순간 녹색광선을 확인했을 때, 그게 진짜인지는 몰라도 델핀은 조금의 용기가 생겼을지 모른다.
델핀이 길에서 주은 카드. 그것은 그녀가 카드 한장 정도는 가지고있을지도 모른다는 로메르 식의 암시이자 유머였을지도 모른다. 로메르는 영화 속 인물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같다가도 운명의 장난같은 설정을 집어 넣는다. 마치 신이 인간 모두에게는 관심이 있지만 우리 개별에게는 조금 무심한 것 처럼, 로메르의 영화에는 그런 자취들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