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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lmz error Mar 15. 2022

<로렌스 애니웨이>

로렌스에게는 용기를, 프레드에게는 박수를

칸의 총아 자비에 돌란의 2012년 작품으로, 돌란 특유의 휘몰아치는 감정의 에너지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녹여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 교사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남자 로렌스는 어느 생일날, 자신이 진심으로 바라는 소원은 바로 여성이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로렌스는 연인 프레드에게 이를 고백한다.

 "왜 네가 호모라고 말 안 했어?" "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냐. 몸을 잘못 가지고 태어난 것뿐이야." 로렌스의 충격 고백으로 알프레드는 그와 거리를 두지만, 못내 그에 대한 사랑 하나로 모든 것을 함께 헤쳐나가고자 한다. 영화는 로렌스와 알프레드의 선택을 응원이라도 하듯, 경쾌한 음악과 심장박동 소리 같은 음악과 미장센으로 그들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비춘다. 그렇게 논란의 중심이 된 로렌스, 그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알프레드의 친구는 알프레드에게 로렌스와 헤어지라며 닦달하고, 용기 내어 페미닌 룩을 입고 출근하던 로렌스는 정신병자로 취급되며 재직 중이던 학교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가족조차 로렌스를 기피한다. 로렌스의 커밍아웃 전 후로 너무나 달라진 이들의 일상은 웃음을 잃는다. 결국 프레드와 로렌스는 어떤 식당에서의 사건을 계기로 헤어지게 된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이들은 몇 년을 거듭하며 어쩌면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는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으로 서로를 대면한다. 그러나 그 둘에게 모두, 삶은 이미 선택된 것이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것이 확실해지자, 프레드는 떠나고 비로소 로렌스는 프레드를 놓아준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돌란의 영화가 그렇듯, 감정 소모가 심한 작품이다. 필자 역시도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본 관객으로서, 다시금 그들이 받을 고통에 이입하며 힘겨운 사랑과 고통의 시간을 견뎠다. 영화를 다 본 후 느낀 것은, 최선을 다한 후 각자의 길을 걷는 그들에 대한 박수갈채, 특히 프레드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은 여태까지 보낸 시간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 함께 보낸 시간이 모두 일종의 거짓이었다니, 모든 것이 무의미하지 않은가? 그런 프레드를 다잡은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로렌스에 대한 사랑이었다. 로렌스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 뒤로 프레드는 겉보기에도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변화하는 로렌스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헤어진 이후의 만남에서 프레드가 참다못해 터뜨리듯 이야기 한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 그 말에 필자는 깊이 공감했다. 필자는 젠더론에 크게 동의하지는 않지만, 젠더론적인 시선에서 굳이 말해 로렌스의 젠더가 레즈비언 여성이라면, 프레드의 젠더는 헤테로 여성이다. 생물학적 변화가 있던 그렇지 않든 간에, 헤테로인 프레드의 성적 지향은 젠더로써의 남성을 원하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을 일치시키며 자아를 구성하고 살아간다. 로렌스는 자신이 여성이라고 믿는다. 신체는 xy의 염색체를 지녔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프레드가 바라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로렌스를, 프레드는 여전히 사랑으로,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고, 이는 비단 정체성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프레드와의 결별 이후, 비로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인을 만났음에도 로렌스는 프레드의 집으로 달려간다. 프레드는 다름 아닌 프레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서로가 조금씩만 양보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날 사랑하면서, 어째서 양보 못하는 거야? 나 없이 살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결국 이들은 서로를 결핍한 채 살아가기로 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휘몰아치는 감정의 요동은 켜켜이 시간의 위로 바래지고 먼지로 쌓인다. 그렇게 둘은 합일에서 분리의 단계로 나아간다.

이것은 결코 비극도, 무엇도 아니다. 그저 이런 사랑의 형태도 있었고, 프레드는 그저 프레드였고, 로렌스는, 어쨌든 로렌스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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