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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lmz error Dec 10. 2021

<티탄>

여성괴물, 그리고 아버지

<티탄> 리뷰

영화 티탄은 아들이 되고 싶은 딸 일렉시아와 자식을 가짐으로 비로소 부모가 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전복적인 영화이자 괴물성의 매혹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매우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영화다.


공포영화는 여성을 타자화하는 아브젝트로써 비체화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비천함의 매혹을 전면에 드러냈다면, <티탄>은 여성을 타자화하지 않으면서도 비천함의 매혹을 드러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는 리뷰 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실수로 두피 안에 티타늄 구조물을 박는 수술을 하게 된 일렉시아는 금속성에 성적 매혹을 느끼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연쇄 살인범이 된다. 왜일까?

일렉시아의 주체성은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에 그 기원이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렉시아의 아버지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부성 없는 아버지는 운전 중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딸에게 뒤돌아 고함을 지르다가 그녀의 머리가 다치는 사고를 낸다. 퇴원하는 날, 아버지가 짓는 표정은 미안함과 죄책감보다는 그저 난감함과 '어쩌라고?' 수준에 머물러있다. 머리에 철심을 박고 있는 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어딘가 집착적이고 반쯤 미쳐있는 듯한 아이의 표정과 눈은 어딘지 불안감을 조성한다.


세월이 지나고, 일렉시아는 자동차 클럽의 쇼걸이 된다. 일렉시아의 머리에 꽂힌 독특한 비녀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도구다. 귓구멍에 젓가락 두께의 비녀를 단숨에 꽂아 넣어 뇌에 손상을 가하는 일렉시아 특유의 살해 방법은 <시카리오>의 자동차 고문 장면 외에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피도 튀기지 않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잔혹함으로는 제일가는 방식이다. 익숙하게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일렉시아를 조명하던 영화는 이윽고 성인이 된 후 부모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의사인 아버지는 배가 아프다는 그녀를 마지못해 진찰해주면서도 그녀 몸에 손도 대기 싫어한다. 함께하는 공간이지만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다. 여전히 일렉시아는 결핍되어있다. 결핍감이 고조될 때, 불안할 때 그녀는 자동차와 섹스한다.


자동차와 섹스한다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섹스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좀 더 초점을 맞추어 보아야 하는 것은 자동차, 티타늄과 같은 금속이 일렉시아에게 어떤 대상이냐 하는 것이다. 일렉시아 신체의 일부, 머리에 박힌 티타늄은 결핍된 부성애의 화신이다. 일렉시아와 분리되지 않는 삶의 문제는 결국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로부터의 인정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거대한 금속체이자 남성성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자동차에게 일렉시아가 성애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렉시아는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태워 죽이고 도망친다. 그리고 어떤 남자의 아들이 된다. 자동차와의 섹스에서 잉태한 아이를 품고. 남자는 말을 하지 않는 일렉시아를 돌아온 아들이라고 믿는다. 소방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남자는 아들뻘의 대원들에게는 차마 말도 잘 꺼낼 수 없는 엄한 아버지, 혹은 그의 말마따나 지위를 자처하지만 아들 아드리안이라고 믿는 일렉시아에게는 한없는 내리사랑으로 품어주는 아가페적 에너지로 가득 찬 인물이다. "내가 하느님이면 내 아들은 예수다." 알렉시아는 느껴본 적 없는 부성애를 내어주는, 사실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남자를 죽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되기로 한다.


공교롭게도 일렉시아는 아들이 아니다. 게다가 생명을 잉태했다. 일렉시아는 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애쓴다. 배는 빠르게 불러오고 일렉시아는 배를 납작하게 짓눌러 어떻게든 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후유증으로 튼살, 가려움, 젖이 흘러나오는 가슴, 질에서 흘러나오는 자동차의 기름때를 연상시키는 검은 물질이 일렉시아를 괴롭힌다. 영화는 일렉시아의 신체를 끔찍한 광경으로 비체화하여 보여준다. 아이를 잉태한 모성의 신체는 언제나 성스럽고 아름다운 것으로 조명되어왔다. 자동차와 섹스하는 쇼걸 일렉시아의 신체는 다만 남성적 신체로 보이기 위한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는 더럽고 불결하고 추한 몸뚱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녀와 창녀가 공존하는 신체의 역겨움, 동시에 사랑받고싶다는 간절한 발버둥을 본다.


일렉시아는 아들이 되고 싶다. 즉 남근을 가지고 싶다. 그러나 프로이트적으로 남근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자의 자식이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일렉시아는 부성애를 욕망하는 주체로서 그리고 남자는 부성애를 느끼고 아가페적 에너지를 분출하고 싶은 주체로서 둘의 욕망이 합일되는 순간 그들은 결핍 없이 충만한 관계가 된다. 살인을 하고 불을 지르던 일렉시아가 소방관 아버지를 만나 불을 끄고 사람을 살리는 인물로 변모한다. <티탄>에서 불은 부성적 에너지를 표방한다.


더 이상 일렉시아의 모성적 여성성을 숨기지 못할 때, 남자는 일렉시아에게 "네가 누구든 넌 내 아들"이라고 말한다. 비로소 일렉시아는 남자의 아들이 된다.


다만 한 가지 과제가 남았다. 일렉시아는 아드리안이 아니다. 일렉시아는 일렉시아로 남자의 아들이 될 수 있을까? 자유로운 일렉시아는 소방대원 파티에서 자신의 여성적  특성을 드러내고 춤 춘다. 남성으로 위장한 일렉시아의 모습은 영화의 초반부 롱테이크로 보여진 그녀의 유연하고 관능적인 모습과 대조적으로 아무 감흥도 주지 않고 남성과 여성 사이 정체성의 혼란만 야기할 뿐이며 그저 우스꽝스러운 허우적거림이다.

지켜보던 남자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일렉시아의 진통이 시작된다. 정체성의 충돌은 남자에게 질문한다.


[ 정말로 일렉시아가 누구든 사랑할 수 있나?]


일렉시아의 산통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배 위에서 작열하는 불의 형상으로 재현된다. 둘은 나란히 산통을 겪는 것이다. 아버지의 위치는 오히려 모계에 가깝다는 점, 그리고 일렉시아가 아버지에게 키스하며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또다시 프로이트를 떠올린다. 일렉시아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모성적 위치에 있는 아버지)를 차지하는 데 성공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충만한 합일의 상태에서 아버지는 일렉시아를 떠나려고 하지만 그녀의 산통이 아버지를 붙잡는다.


"아드리안, 힘줘!"

"일렉시아요."

"일렉시아, 힘줘!"


남자가 일렉시아의 이름을 불러주며 비로소 일렉시아는 평생토록 괴롭힌 부성의 결핍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결핍된 부성의 화신인 티타늄 아기는 비로소 그녀의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타자를 받아들임으로써 남자는 신이 된다. 그리고 나직이 읊조린다.


"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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