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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여니vvv Aug 04. 2024

우리 집 가훈

열심히 살자





옛것이 반드시 진실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우리 집 가훈은 “열심히 살자”였다. 가정적이고 다정한 편이지만 그 시대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상을 그대로 따른 아버지께서 지어 놓은 가훈이었다.



  내가 열한 살이 되기 전까지 우리 집은 슈퍼를 하였는데, 그 집은 슈퍼와 함께 방 세 칸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콘크리트 벽과 바닥이 그대로 노출된 욕실 옆 개수대 한 칸, 싱크대 한 칸, 냉장고와 쌀통을 집어넣으면 사람 둘 들어갈 자리가 남는 코딱지만 한 부엌을 중앙으로 작은방과 안방 겸 거실이 나뉘었다. 작은방은 맨 안쪽에 있었고, 삼 남매가 생활했다. 안방을 지나면 물건 진열대가 나열된 가게가 나왔고, 그곳이 우리가 주로 드나들던 출입구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안방에 앉아 아침밥을 먹고 있노라면 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에 “열심히 살자”라는 말이 새겨진 나무 판때기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채 알기도 전부터 매일 그 말을 보며 살았다.


  내 기억에 따르면 가훈이 법이라도 되는 듯 확실히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심히 사셨다.



  합병증 때문에 온몸이 말도 못 하게 아프셨을 텐데도 아버지는 단 하루도 편히 쉰 적이 없으셨다. 몸이 허락하는 한, 아니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도 아버지는 쉬지 않고 일하셨고, 또 움직이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시중 드는 일을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이상으로 열성을 다하셔서 해내셨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어머니는 열심히 사셨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밖에 나가 일을 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의 그런 열심히 가운데에도 우리 집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투병생활과 벌려 놓은 일들로 인해 남은 것은 빚뿐이었고, 어머니의 시간 전부를 투자해도 어머니가 벌어오는 돈은 백만 원대 초반 정도였다. 다행한 연유로 아버지가 남기고 간 많은 빚 중에 집과 관련된 빚 외에는 전부 털어냈지만, 삼 남매가 제각각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어머니가 갚은 빚은 고작해야 몇십만 원이 전부였다.






   고등학생 때, 나는 운이 좋게 좋은 성적을 받고는 했다. 물론 뼛속 깊이 새겨진 가훈의 영향도 컸을 것이라 본다. 나는 그냥 나도 모르게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조용했고, 순응적인 편에 속했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신뢰를 얻었고, 집에선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규칙이 명확했던 단체 생활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열심히 해야 하며, 왜 해야 하며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나에 대해 아무것도 세워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의문 하나를 던지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필요했었다.



  졸업 이후로는 모두가 기대해 줬던 만큼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가졌던 모범생이라는 이미지는 사막 속 신기루같이 느껴졌다. 사회 속에 선 나는 그냥 평범하고 자신감 없는 여자 어른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나는 두려움이나 죄책감에 휩싸인 선택을 행했다. 대학, 직장, 연애, 인간관계 모조리 말이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주눅이 든 채 조용한 학교 생활을 했다. 직장인이었던 나는 적성에 맞지도 않거니와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는 자리에 앉아 세월을 보냈다. 연애는 시작하면서 주변 관계를 모조리 정리했고, 나는 틈만 나면 인간관계를 손절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열심히”라는 구절이 머물러 있었다. 열심히 일하고, 운동하고, 청소하고, 책 읽고, 취미생활하고, 움직이고, 돈 벌고, 먹고, 자고, 싸고, 모든 것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건 깊고도 거대한 입력값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행해야만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 어떤 기계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때문이었을까? 내 안에서는 자꾸 오류가 떠 경보음이 울렸다. 마음이, 마음이 그랬다. 마음은 자꾸만 헛헛해지고, 불안하고, 그로써 무기력해졌다.



   오래 지나 내가 알게 된 건, 그건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으며, 이유도 모를 “열심히”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나다움이 아니라는 신호였던 거였다. 나는 유유히 살고 싶었다. 강물이 잔잔하고 여유로이 흘러가듯 그렇게 삶을 받아들이며 살고 싶었다.


  모든 것에 열심히 하고 진이 빠져 정작 해야 할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에 서툴러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집스레 해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내 무의식 중에 깊이 새겨진 이 가훈을 제대로 인식했을 때, 나는 그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설령 이 말이 내 부모님 인생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라도, 그건 나와는 다른 삶의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열심히 할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정한 뒤, 자연스레 열심히 할 것이다. 나는 열심히 살지 않을 것이다. 물 흐르듯 유유히 가슴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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