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04
수영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숨 쉬는 법’이었다. 어떤 강사님은 단순하게 음파음파만 기억하라 했고, 또 다른 강사님은 코로 음~ 뱉고 입으로 하! 들이쉬라고 했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기본을 다지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대략 6개월 동안은 숨 쉬는 법이 미숙해 25m 레인 한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숨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맞닥뜨리곤 했다. 그러나 호흡이 트이는 시기를 맞이하고부터는 호흡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때로는 레인을 10바퀴는 돌고도 거뜬해서 더 돌고 싶어서 안달을 내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흔히들 착각하는데, 기초라고 쉬운 게 아니에요.” 언어치료사가 되기 위한 걸음을 떼었지만 나의 갈길은 멀기만 했다. 나는 전공자라기엔 너무도 기초만 다룬 입문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 게 내가 한 학년동안 수강한 전공과목은 단 두 과목뿐이었다. 1학기에는 의사소통장애에 대한 개념을 잡는 ‘의사소통장애개론’이라는 과목을, 2학기에는 특수교육 관점에서 장애를 전반적으로 훑는 ‘특수교육학’이라는 과목이 그것이었다(올해부터는 살짝 개편이 되었다). 그러나 교수님의 말씀처럼 비록 기초였지만 그 기초가 되는 두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세상의 생소한 개념이라는 점이 공부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어느 날 겹치는 수업이 많아 자주 붙어다던 친구가 밥을 먹다가 말했다. “아 글쎄, 제가 봉사하는 곳에서 제가 언어치료학과 학생이라니까 어머니가 갑자기 본인 아이 상태를 봐달라는 거예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전 아직 1학년일 뿐인데...!!” 그 말에 나는 격하게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맞아. 우리가 뭘 알아.”
그 친구의 일화처럼 큰 개념만 갓 잡기 시작한 우리는 뭔가를 아는 수준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상태가 맞았다. 게다가 학과에서 짜 놓은 커리큘럼 상 수강 가능 과목에는 순서가 있어서 1학년으로서 더 높은 학년의 수업을 미리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 보니 시간표를 짤 때 전공보다는 기타 교양과목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었고, 학기마다 전공 공부보다는 교양과목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욕심을 내어 학점을 꽉꽉 채워 들었던 나는, 전공과목과 필수 교양 두세 과목을 제외한 교양 과목을 두세 과목은 더 들었다. 시간표에 맞추느라 특정 선호 없이 교양 과목을 선택했던 나는 통계학이나 인문학, 또는 행동과학과 같은 여러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나름의 경험을 가진 30대 이상이 되어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 보니, 이전과는 달리 그 시간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왜인고 숙고해 보니, 그 시간 하나하나는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공 시간에는 언어치료학의 개념에 대해, 교양 시간에는 삶을 살아가거나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 배웠노라, 나는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모든 학문은 사람으로서 잘 살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새로 발견한 시기였으며 수업을 따라가는 모든 과정이 인내력, 소통이나 공감능력 등 인생에 필요한 다양한 자세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1학년에게 1년 동안의 대학생활은 전공자로서의 생활이라기보다는 ‘적응기’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1년간의 적응기를 돌아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비록 1년의 한 걸음은 작았지만 절대로 안 중요했던 건 아니라는 걸. 어느 언어치료사가 쓴 책에도 이런 말이 있었다. “기초 이론이 중요해요. 저는 치료하는 동안 의사소통개론을 다시 찾아보곤 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까마득한 선배님의 경험담처럼, 1년 동안 익혀놓은 언어치료학 개념과 인간성에 대한 기본기는 나의 다음 삶과 다음 삶 그리고 남은 전 생애 안에서 탄탄함이라는 힘을 발휘해 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