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05
인간은 철저히 최대의 효율성을 따르는 존재라고 했던가. 한걸음이면 될 일에 굳이 두 걸음을 가는 수고를 더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살면서 굳이 두 걸음을 가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만약 당신이 더 탁월한 성과를 내고자 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1학년 전공 수업 때, 교수님은 강의 도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들이 꼭 묻는 질문이 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교수님은 매년 받는 질문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그러나 항상 들려오는 똑같은 질문이 자못 신기하기도 한 듯, 오묘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답하셨다. “여러분 전공 공부를 어떻게 할지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공부는 말이에요. 여러 번 보면 돼요. 일단 공부할 전체 내용을 가볍게 쭉 훑어보고, 두 번째는 꼼꼼히 훑어요. 그러면 그때에는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그렇게 1-2 회독하고... 최소 3회 이상을 보면, 6시간 걸리던 것이 4시간이 되고, 또 더 짧아지고... 자연스레 시간도 줄고, 암기도 저절로 될 거예요. 저도 그렇게 공부해서 박사 학위도 따고 했답니다.” 1학년 학생들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을까요?” 또는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까요?”였고, 내가 알아들은 교수님의 말씀은 공부에 요행은 없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 만학도인 나도 역시 교수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즉, 공부를 잘하고 싶거든, 한 걸음만 가도 될 것 같아 보여도, ‘굳이’ 두 걸음은 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 생활과 기본 개념에 충실한 후에 그다음을 내다볼 수 있고, 만약 운이나 꾀가 첨가된 더 빠르고 효율적인 공부법을 찾고 싶거든, 그것조차도 어느 정도 기본 개념에 노력을 기울이거나, 기본 실력을 갖춘 뒤에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나는 사실 학창 시절에 벼락치기의 달인이었다. 사람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아마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그랬지 않나 싶다. 나는 단기 암기력이 꽤 좋은 편이어서 공부를 오래 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시험 성적을 받곤 했다. 어떨 때는 시험 범위를 전부 훑지 못하고 시험을 치른 적도 있었는데, 그때에는 시험 시간 내내 배운 내용을 순차적으로 복기하면서 한 문제 한 문제를 푸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나름 높은 성적(시골학교지만 반 1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평소 쌓아 놓은 것들 때문이었다. 나는 수업시간에는 항상 정자세를 유지하며 선생님과 눈 맞춤을 하면서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또 주어진 과제는 최선을 다 했고, 반드시 기한 내 제출했으며, 예습까지는 못해도 수업 사이 쉬는 십분 동안 전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간단하게라도 복습했다. 시험기간에는 전 과목을 일주일 전부터 급하게 벼락치기를 할지언정, 시험 직전까지 보는 걸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소에 행해둔 성실함과 열정이 내 성적의 유지비결이었다.
그러나 벼락치기 달인의 말로는 썩 행복하지 않았다. 단타 시험에 강세를 보였던 암기 실력이 장거리 달리기와 같았던 수능 준비에서는 힘없이 방황을 했다. 나는 배웠던 내용들을 학기 시험을 치름과 동시에 까먹었고, 막상 수능 공부를 시작해야 할 시점부터는 기억에서 잊은 그 내용들을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바로 잡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수능 준비 기간에는 풀이 죽어 별다른 열정이나 의욕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물론 수능대박과 같은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얻은 저조한 수능 점수로 인해 지원했던 대학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무 살의 나는 그때를 ‘인생이 망했다’고 여겼다.
과거의 나도 마찬가지이고, 많은 친구들은, 공부에 요행을 바라는 것 같이 보인다. 사실 최소 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바라는 심리가 본능적으로 탑재된 인간으로서 공부든 다른 무엇이든 운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어불성설일 것이다. 또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역전신화를 수없이 접해온 현대인이라면 더욱 운에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단순히 보기에, 세상이 전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그들이 이룬 성과만 크게 강조될 뿐 그들이 들인 시간이나 노력은, 우리로서는 체감할 수 없는, 그들이 지나 온 시간 속에만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공부에서만큼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 것이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공부는 100M 달리기가 아니고 1,000M 또는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장거리 달리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라는 개념을 언제나 명시해 두어야 한다. 둘째, 공부 자체는 어떤 결과를 빠르게 내는 일이기보다는 개념을 익히는 일 자체가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학도인 나는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을 불가항력(사람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힘) 한 일로 본다. 물론 나는 역시 공부에서 좋은 성적이라는 성과를 내고 싶다. 하지만 이 자체가 나 자신을 위한 과정이라 여겨 성실히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다. 효과를 빠르게 내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결과중심주의에 빠져 그에 따르는 부차적 결과를 책임져야 할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언어치료학과 2학년이 된 나는 출석에 신경 쓰고, 강의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과제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고, 수업 내용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한 번은 더 본다. 또 시험 공부할 때에는 시험 범위를 두 번 이상은 훑어보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의 나는 빠르거나 운으로 해낸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최선을 다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건, 지금 얻은 기회가 소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마저도 경험해 봐서’라는 이유를 붙이는 게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때로는 느려도 좋다고,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그러나 옳은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단지 빠르고 효율적인 성과를 내는 것보다 결국엔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렸기 때문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