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몸이 힘들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지친 하루였지요. 원래는 먼저 씻고, 저녁을 제대로 챙겨 먹고, 명상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저녁시간을 편안히 보내는 것이 이상적인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친 마음은 그렇게 흘러가게 두지 않았습니다. 아니, 제가 정신의 조종키를 뇌에 넘겨준 것이지요. 기분이 별로이니, 씻는 것도 미루고, 저녁도 대충 때우고, 할 일도 미루게 됩니다. 뭉그적거리다가, 겨우 씻고, 책이 아닌 스마트폰을 집어 듭니다.
유튜브 앱을 클릭합니다. 평소에 보려고 찜해 둔 것도 아니고, 딱히 관심거리도 아닌 영상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긴 영상은 부담스럽고, 한두 편만 짧게 보고 끝내겠다는 무의식적 다짐으로 짧은 영상들을 클릭합니다. 그리고, 그날 책은 집어 들지 않았습니다.
네. 유튜브 영상을 클릭하며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래서 감정 통제, 감정 관리가 중요하구나. 정신적으로 다운되니, 다 귀찮게 느껴지네.' 알면서도 행동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머리로 분명히 알고 있는데... 왜...?
감정은 몸의 언어입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자동반사적으로 나타나지요. 우리의 행동, 특히, 의지나 노력이 관여하는 행동들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싶지만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것, TV나 보고 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싶지만, 책을 읽고,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 모두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에는, 즉각적으로 에너지가 떨어집니다. 이건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서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고, 소위 멘붕이 왔을 때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행동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운동과 식단을 잘 지키다가 가족이나 연인과 싸운 뒤, 다 때려치우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마구 먹어대기도 합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우리의 뇌는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도록 발달해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이나 도피를 대비해 에너지를 축적해야 하기에,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최대한 에너지 소모를 줄여야만 했지요. 그래서, 반복되는 행동은 빠르게 습관으로 정착하여, 에너지 소모 없이 거의 자동으로 굴러가도록 세팅을 합니다.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활동은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말씀드렸지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에너지가 떨어지고, 스스로 컨트롤하기보다는 뇌의 자동항법장치에 조종을 맡기고, 노력이 필요 없는 수동적인 활동,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하며 시간을 흘러가게 두는 것이죠.
가장 쉬운 방법은, 감정이 관여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은 쉽지 않지요. 그러니, 하기로 한 일이 있다면, 기계적으로 하는 겁니다. 내가 정해진 일을 하는 로봇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하는 겁니다. 또는 게임처럼, 오늘의 미션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냈다면 스스로 보상을 주는 겁니다. 좋아하는 와인이나 맥주 한 잔, 달콤한 간식, 뭐든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데일리 리포트나 다이어리를 활용해, 그날 할 일을 미리 계획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다운된 감정 하에서, 갑자기 할 일을 생각해 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이건 훈련이 좀 필요하긴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계획했던 것을 팽개치고 싶을 때, 스스로에게 말하는 겁니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나야! 내 감정이 멋대로 휘둘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어." 그리고 심호흡을 몇 번 합니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지만, 한두 번 해보니 점점 쉬워집니다. 매번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아도, 반복하면 성공 횟수가 늘어납니다.
어떤 감정이 생기면, 그에 걸맞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실제로 인간은 하루에 40,000 ~ 60,000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요.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명상을 시도해 보시면 확실하게 느끼실 거예요. 그 짧은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들, 잡념이 떠오르던가요?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부정적인 생각이 따라옵니다. 친구나 배우자와 말다툼을 했거나, 아이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거나, 심지어 무언가 실수를 해서 자책하는 감정이 들 때가 있지요. 곧바로, 방금 발생한 일과는 아무 상관 없는,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다 끄집어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부정적인 행동을 불러옵니다. 입을 꾹 닫고, 말에 가시가 돋치고, 사소한 일에 시비를 걸기도 하지요.
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시작은 '관찰하기'와 '알아차림'입니다. 불교와 동양철학에서 수행할 때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감정이 들 때,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평소의 습관대로, 그리고 그 감정이 바로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아, 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구나.' '내가 기분이 왜 나쁜 거지? 아... 000가 두려웠구나. 000가 불안했구나.'라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고 들여다보는 순간, 감정은 한결 차분해집니다. 차분해진 감정은 바로 부정적인 생각으로 연결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아이들도, 딱히 집중할 것이 없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스마트폰을 자주 본다고 합니다. 좋지 않은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고, 외면하게 되는 것이지요. 폰을 보는 동안에는 감정을 잊을 수 있으니까요.
유용한 기능을 사용하거나, 오락적인 용도라도, 자신이 조절 가능한 범위에서 휴식으로 보는 것은 당연히 문제없습니다. 의도치 않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후회하고, 자책하고, 또 반복하는 패턴이 문제인 것입니다.
첫째, 자신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둘째, 감정을 들여다보고,(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셋째, 잠깐 심호흡하며 멈추는 것
이 단계를 반복하면서 감정 조절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상당 부분 진정됩니다. 감정도 습관이라는 말씀드렸었지요? 알아차린다는 것은, 뇌가 익숙한 패턴(습관)으로 감정을 처리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멈추는 것입니다. 이 또한 반복 훈련하면, 멈추는 것 자체가 하나의 패턴이 되어 점점 쉬워질 거예요.
기술의 효용, 문명의 혜택을 맘껏 누리고 사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을 조절하지 못하겠다고, 폰을 없애거나, 폴더폰을 써야 한다거나, 늘 자책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의 주인도 내가 되어야 하고, 내 시간도 내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에, "내 마음의 주인은 나야.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는 내가 선택하겠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