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은 나의 몇 퍼센트를 이루고 있을까?

고등학교: 가해자

by 제이

비교적 학생수가 많은 시내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중학교 때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내가 최고 성적을 받은 날 엄마는 나에게 성적으로 가해자를 이기면 된다고 했다. 가해자는 항상 1등이었다. 단편적인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이없었던 순간. 더 이상 가족들에게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리며 넘겼다. 다른 게 아니라 성취감과 몰입 때문에 공부를 했었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인문계 진학은 정해진 수순 같았다. 하지만 진학 시점부터 공부는 관심 밖에었다. 나는 그 장소, 그 사람들을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만족감에 빠졌다. 졸업식날 쾌청한 하늘과 공기는 아직까지 사진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새 친구를 사귀고 잘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지역 인문계 중에 그나마 제일 좋은 학교였기 때문에 가해자도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내 주변 모든 일, 모든 사람이 답답했기 때문에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형편에 비해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 성적순으로 입소하는 시스템이라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했다. 가해자도 기숙사에 입주했다. 그때는 기숙사에 입소 첫날 장기자랑을 하는 고리타분한 절차가 있었다.


저녁시간에 제일 큰방에 모여 앉았고 신입생들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같이 할 사람은 없었다. 옹기종기 끼어 앉은 사이에서 갑자기 가해자가 내 팔을 잡으며 같이 하자고 했다. 신기했다. 몇 년 만에 말을 걸었는데 이렇게 숨김없이 얌체처럼 군다는 점이? 어딜 가도 어떻게든 빌붙을 사람이었다. 잘 먹고 잘 살긴 하겠다.


거절했다. 축축한 손길이 기분 나빴다. 이제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가 아니었다. 이 환경에서는 더 이상 가담하거나 방관할 사람이 없었고, 언젠간 마주할 상황이 걱정되긴 했지만 무섭진 않았었다.


나는 되는대로 춤을 추며 차례를 넘겼다. 덕분에 같은 방 언니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고 나름 순탄했다. 나랑 비슷한 경험을 비슷한 시기에 한 친구들이랑 잘 통했다. 많은 얘기와 편지가 서로를 보듬고 추슬러주었다.


기숙사 자습시간은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이었는데, 이때 증상이 느껴졌다. 문제집은 첫 단원을 넘기지 못했고, 멍하게 앉아있거나, 자거나, 테트리스나 버블버블 같은 단순한 게임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분명 오분 정도 잠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되풀이되는 회상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기숙사 퇴소기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친구들과 지냈다. 이 생활이 도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집에 가는 주말에는 부모님과 잡아먹을 듯이 싸우고 돌아왔으니까. 가해자는 나보다 먼저 퇴소당했다. 기숙사 앞에서 다른 학교 남학생과 스킨십을 하다가 들켰다고 들었다.


같은 학교에는 사촌 오빠가 다니고 있었다. 얼마 뒤 같은 방 3학년 언니가 그 오빠와 가해자가 같이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우산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그걸 받으려고 했다고. 모든 상황이 답답하고 이상했지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얘는 가해자고, 이상한 얘니까 조심하라고 전했다.


하지만 몇 번 더 그 언니를 통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봤다는 말을 들으니 짜증이 났다. 가십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멍청한 일로 걱정이나 사과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상관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두질 않았다.


가해자는 내가 느끼는 정도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 같았다.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에게 더 상처받는 일은 너무 비생산적이라고 느껴졌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온갖 긍정적 감정을 경험하고 있던 나로서는... 가해자가 주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이상 감정을 쏟을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근데 이런 식으로 끊어낼 수 없는 가족관계까지 파고드는 건 얘기가 달랐다. 명절 때마다 그 오빠를 마주할걸 생각하니 또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 일로 오빠와 싸웠고 또 얼마뒤 헤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나에게 할 말 없냐, 사과하라고 빈정댔다. 오히려 자기도 힘들다며 성질내긴 했지만, 짜증 나서 알고도 쑤셨다. 결국 다 머저리였다는 것만 또 확인했다. 이런 장면에 끼어 사과나 걱정을 듣고 싶지 않았던 건데 결국 그렇게 됐다.


기숙사 퇴거사건을 오빠의 부모님이 소문으로 접한 후에 헤어지게 되었다는 경위를 들었다. 주변 사람을 쪽팔리게 만들면서 자기들만 편안한 사람들끼리 사귀었고, 가장 한심한 방법으로 헤어졌다. 세상은 정말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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