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시대를 살아갈 아이들.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온 아들이 " 엄마 문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라고 묻는다. "글쎄 ~? 문 대통령 좋아하는 사람을 문빠라고 하는데... 그런 건가? 검색해보자"라고 했더니 아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 왠지 요즘 애들 말을 잘 못 알아 들어서 놀리는 말 같은데...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문찐 뜻
문화 찐따의 줄임말로써 현재 발달된 문화에 뒤처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
대중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아들은 첫째답게 권장 월령 또박또박 지키며 우유는 cc, 밥은 g, 잠자는 분 단위까지 육아 지침을 지키며 키워왔다. 3세 이전까지는 뇌 발달을 장애가 될 수 있으니 TV, 핸드폰 보여주지 말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책을 많이 읽어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도 영어로 된 동영상을 포함해 자유롭게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이 2시간을 넘지 않았었다.
그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아들의 뇌가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잘 만들어져 있는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사회관계 지능의 수준은 아주 우스웠다. 모든 관계 지침을 책으로만 배워오다 보니 실제 세상에서 책과 다른 반응에 당황했다.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나 "안녕 난 이안이야. 네 이름은 뭐니? "라고 인사하면 아들이 기대하는 대답은" 안녕 난 00이야. 우리 같이 놀까?"라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7세 이전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의의 뜻으로 그냥 갑자기 뛰기 시작하거나 들은 체 만 체 하거나 멀뚱멀뚱 쳐다봤다. 글로 배운 관계의 한계였다.
아들은 초등학교 내내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유튜버, 게임, 유행가, 유행어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도 상처를 받거나 힘들어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책 읽기, 자기의 놀이를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아들은 그런 부분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니 아들도 나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둘째를 낳아 키워보니 교과서적인 아들의 사회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뒤늦게 가늠이 갔다. 첫째보다는 자연스럽게 아이 맞춤으로 키워진 둘째.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잤다. 놀고 싶은 만큼 놀았고, 미디어 노출 시간 역시 유연했다. 그런데 그런 딸의 사회생활이 첫째보다 확실히 수월해 보였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도 능숙하고 상황 판단력, 유행하는 아이템을 대하는 태도, 아이들의 핫 아이템을 섭렵하는 스킬까지 첫째와는 많이 달랐다.
핀란드에서는 초등 1학년이 되면 노트북을 스스로 켜고 컴퓨터 체계를 다룰 수 있도록 수업을 한다고 한다. 최첨단 시대를 주도할 세대이기 때문에 유년기 감각적으로 신문물을 터득할 수 있을 때 노출해서 더 많은 확장성을 펼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어릴 때 배운 지식 그대로 똑같이 내뱉는 무성의한 상태의 교육을 하고 있었다. 부모가 되면서 딴에는 잘해보겠다고 과거의 노하우를 알려준 육아서를 보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를 키운 결과 우리 아들은 문찐이 되었다. 아들은 거의 매일 신조어를 검색하고 있다. 본인이 사용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2외국어 공부하듯 익혀간다.
얼마 전 '금쪽같은 내 새끼'에 불안장애를 가진 여자아이가 나왔다. 그 아이는 책을 많이 읽어 영재급으로 높은 학습 수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화용 언어'가 떨어졌다. '화용 언어'는 대인관계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다. 하교 후 집 현관문이 잠겨있는 것을 본 아이는 "살려주세요"라며 문을 쾅쾅 두드렸다. 이렇게 아이가 스스로 대처하지 못하는 불안한 상황들이 쌓이고 쌓이면 아이의 불안은 장애급으로 커지고 만다. 이 아이를 위한 오은영 박사의 금쪽 처방은 모든 일상생활의 스크립트를 만들어서 상황별 대처 방법을 보여주라고 했다. 아이 아빠는 눈물겹게 상황별 스크립트를 동영상으로 만들었고 아이는 힘들었던 상황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스트립트는 일상생활 중에서 부모와 함께 경험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아이가 마주할 모든 상황을 체험할 수도 없고,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와 같은 것은 매 순간 부모가 눈치껏 알려주기도 힘들다. 그런데 그런 다양한 상황별 스크립트는 EBS만 봐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첫째는 이런 당연한 것들을 보지 못 하고 자랐지만 둘째는 넘치게 보며 자라서 따로 알려줄 필요도 없는 일상생활 속 아이의 대처 방법들. 그런 장면들을 실생활에서 모두 겪으며 배울 수 없었다면 영상으로라도 보고 배우고 접해서 사회생활을 조금 더 매끄럽게 이어갈 수 있게 해주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의 사회관계 지능이 잘 발달된다면 자존감, 자신감, 자의식이 강해져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들을 찾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아이와 함께 책만 보고 있기보다는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보면서 함께 대화하고 감탄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더 필요했던 게 아닐까...
4차 산업 시대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직군은 더 이상 우리가 추종하던 의사, 판사, 검사들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에서는 A.I(인공지능)가 대체할 수 없는 연출가, 예술가, 작가, 연예인처럼 인간만이 가진 능력인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문화' 관력 직종이다. 이들 직종이 어디까지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가는 '기생충' 'BTS' ' 오징어 게임'만 보아도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