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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크레용 Mar 15. 2024

중3 아들 엄마의 소소한 행복

중3 가내신 


긴장된 마음으로 중 3 생활을 시작한 아들.












© deleece, 출처 Unsplash





#새벽등교


개학과 동시에 아들은 방학 동안 벗어 두었던 등교용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또다시 새벽 버스를 타고 등교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긴장 모드에는 아침밥 따위는 밀어 넣을 수가 없다.  차라리 하교 후 지친 아들 입맛에 맞는 간식인 듯 식사 같은 든든한 메뉴를 준비해두려고 한다. 


새벽 등교는 예민하고 긴장도가 높은 아들이 찾은 학기 초 적응 방법이다. 텅 빈 학교, 교실에서 천천히 적응할 시간을 두어 낯선 환경에 자기 자신이  갑자기 던져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자신에 대한 배려이다. 이렇게 힘들게 적응을 마치고 학기가 무르익으면 오히려 아들은  지각을 걱정할 정도로 빠듯하게 등교를 한다. 



#아들엄마이모티콘


사춘기가 끝나가는 아들과 방학 동안은 충분히 대화하고 함께 편한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개학과 동시에 아들은 높은 긴장도를 낮추기 위해 혼자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하교 후에도 다시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저녁 식사 시간을 함께 하는 것마저 힘들어했다. 그런 아들이 안쓰럽고 걱정되지만 경상도 상여자에  MBTI 마저 극 "T"인 엄마라서 다정하고 부드러운 표현은 여전히 힘들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카톡 '아들 엄마' 이모티콘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나를 대신해서 아들에게 엄마의 마음을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이모티콘이었다.  평소 "T" 성향의 엄마를 꽤나 힘들어하는 아들이라서 부드러운 평범한 엄마 이모티콘은 제법 효과적인 것 같았다. 










아들을 15년 정도 키우다 보면 


사랑한다. 보고 싶다. 기분 좋다. 응원한다. 걱정한다는 마음의 표현이 '잔소리'로 통일되어 버려 핵심 내용이 아들에게 잘 닿지 않았는데 


이모티콘은 그 말을 서로 낯부끄럽지 않게 도와주었다. 










학기 초라서 예민해진 아들과 이사 준비로 예민해진 엄마의 말다툼이 있었던 다음날 아침 


난 엄마니까, 내가 더 어른이니까 또 먼저 사과한다. 사실 어제 아들이 한말들이 틀린 말이 하나도 없긴 했다. 









중3 가내신






중3 등교 1주일 만에 아들이 받아 온 '가내신' 무슨 기생충 약 이름 같은 이 말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중 2까지의 성적이 중3에도 이어진다는 가정하에 나오는 예상 성적이라고 했다.  가내신을 학기 초에 보내주는 이유를 알기 위해 검색해 보니 열혈 입시 카페에서는 이미 가내신 점수와  세특(세부특기사항) 행특(행동특기사항) 을 공유하며 특목고, 자사고 입시 성패 여부를 의논하고 있었다.  과목별 세부 특기사항 한 줄에도 파르르하며 특목고 입시에 실패할까 걱정하는 엄마들의 글을 보며 내가 아들 입시에 너무 무심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카페들의 입시 관련 글들을 반나절 정도 살펴본 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아들이 받은 점수였다. 


193.5 


내신 200점 만점에서 최상위 군의 점수는 196~198점대라고 한다. 


현재 가내신은 출결 점수 2점이 빠진 198점 만점 기준의 점수라서 3학년에도 같은 점수가 유지되면 2점이 더해진다고 한다. 


'왜? 이렇게 점수가 높지?'


우리 아들은 학원도 다니지 않을뿐더러 학기 중은 물론 시험 기간에도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지필 평가에서도 2-3개씩 틀리고 많게는 5-6문제를 틀리기도 했었으니 이 점수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들이 교내에서 받은 상장들이 가산점을 받은 듯하고 그중에서도 교내 봉사활동 관련 상장은 추가 점수가 있다고 했다. 


아들은 지필에서 밀린 점수를 수행평가와 학교 내 활동으로 모두 만회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봉사 점수 역시 다른 아이들 부모님이 봉사 다니며 점수를 채우길래 긴장하고 있었더랬는데 아들은 학생 수가 적은 시골학교라서 학교 내에서도 모두 채울 수 있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 






특목고나 자사고를 준비하지 않는 한 이 '가내신'은 그냥 대입으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대한민국 75%가 고등학교 평준화가 되어 주소지 기준으로 고등학교가 배정되지만 비평준화 지역은 중학교 성적에 맞춰 고등학교에 지원해야한다. 


우리 가족이 사는 파주 역시 유명한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다. 파주 운정 신도시가 이 비평준화 제도를 이용해 우수한 성적의 고등학교를 만들어 모아두면서 신도시를 성공시킨 케이스였다. 서울이나 일산 등 평준화 지역에서도 상위권 아이들이 모이는 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이사를 오기도 하기 때문에 부동산 역시 파주 다른 지역과 달리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에 사는 아들이라서 '가내신'은 다른 지역에서 보다 더 중요했다. 


중 2까지 성적으로 대략 180대는 나오겠거니 하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만 아들이 190대로 받아와버리니까 들뜬 마음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평소 아들에게 커트라인 낮은 학교라도 집 가까운 고등학교에 가서 편안하게 내신을 가져가라고 했었지만


아들은  농어촌 입시 전형을 유지할 수 있는 집에서  먼 거리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었다. 이번 성적으로 아들은 아들의 주장을 더 확고하게 펼칠 수 있게 되어버렸다. 










평소


좋은 성적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마저 아이들에게는 압박이 된다고 해서 


아들 성적으로 기분이 달라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


이번에는 그만 주책없이  행복이 삐져나와 엄마의 흑심을 아들이 눈치채고 말았다. 



앞서가는 어떤 아이들에게는 아쉬운 성적일 수도 있지만 


방목형 교육을 하는 우리에겐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성적도 너무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성적 그 이면에 엄마 아빠, 학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책임감과 끈기를 가지고 학교생활을 해 온 아들의 모습이 보여서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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