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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지기 May 23. 2024

모든 건 '점보라면' 때문이에요.



시작은 소소한 다툼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프로젝트 가족입니다. 남편이 회사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은 거의 만날 수가 없어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잠깐의 휴가가 생기지요. 쉽게 말해 간헐적 가족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신혼 초부터 서로 맞춰가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9년 차인 지금도 투닥거립니다. 5월이 19일이나 지났는데, 드디어 내일 출근한다고 합니다. 좋기도 한데 이번에도 우리는 소소하게 다퉜다는 사실에 아쉽기도 해요. (나중에 퇴직 후가 기대가 됩니다. 얼마나 싸울지...) 맞춰가며 살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뭐 어쨌든 소소한 다툼도 그렇지만. 제가 남편에게 맞추기로 했어요. 휴가는 곧 끝난다는 생각에... 

 

다이어트 중이지만, 남편이 사 온 점보라면을, 그 커다란 점보라면을 함께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크기에 압도당했지만, 살짝 기대도 됐습니다. (그래! 내가 결혼전만 해도 대식가였어!) 포장재를 뜯으니 라면이 8개가 있네요? ‘우리 다 못 먹겠는데?’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삼 남매와 함께 점보라면을 둘러싸고 앉았지요. ‘우리 한번 해보자! 먹어보자!’ 하이파이브도 해보고 의지를 다집니다.(바보 같은 짓이죠?) 

 

네.

다섯이서 반도 못 먹었어요. 아이들은 과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다이어트 중인 저는 위장이 줄어들어 있었지요. 남편이 없는 평소에 우리는 딱 먹을 만큼만 먹는 습관이었으니 제 위장은 오랜만에 들어온 면과 짭짤함으로 깜짝 놀라 발버둥 치기 시작했습니다. 

 

먹은 지 30분 만에 위장이 소리치기 시작했죠. 끔찍한 비명을요.

우리 부부는 밤새 앓았습니다. 

아침에 겨우겨우 일어나 아이들 식사를 챙기고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보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드러누워 하루종일 쥐어짜는 위장을 감싸고 바닥을 굴렀습니다. 그래도 하루종일 굶으니 아주 조금, 아주 살짝 뭔가가 먹고 싶어 지네요. 하지만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아이들을 데려옵니다. 그리고 또 우리 부부는 혼자만의 싸움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조금 정신이 차려집니다.

좁쌀만큼 더 괜찮은 제가 약을 사와 또 하루를 버팁니다. 

살아납니다. 살았습니다. 

함께 앓은 우리는 동지애가 생깁니다. 

동지애로 넷째 생길 뻔....


점보라면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여러분.

(좁쌀만큼 괜찮았던 제가 금방 정신을 차리고 또 투닥거립니다.)




이렇게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핑계를 글로 적어봅니다.

글 쓰는 것이 이젠 주 2~3회가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습관은 잡기 어렵고 잃기는 너무 쉽습니다. 아프지 않고 지낸다는 것! 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점보라면'으로 깨닫습니다. 질병을 찾아다닌 꼴이라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도요. 부끄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다시 브런치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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