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인다?' 혹은 '옷 샀어?'라고 말했더라면 뒤이어 어떻게든 부연 설명을 했을지 모른다.
대뜸" 바람났냐?" 훅 치고 들려온 그 말을 처음으로 말한 분은 연배가 좀 더 있고 평소 솔직함이 개성인지라 좀은 멋쩍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근래 날이 풀려서 풀 뽑기 등의 마당놀이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맨발로 다녀서일까? 이전보다 피로도가 빨리 사라지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 덕분인지 집을 나서기 전에 옷은 뭐 입을까? 하는 고민도 잠깐 할 여유가 생겼다. 또래 주변사람들 보다는 얼굴의 주름이 좀 더 보이고 근육 또한 부족하지만 그마저 신경 쓸 짬은 부족해도옷을 찾아 입을만치의 힘은 생겼다는 것이다.
올 들어 달포도 안되어 그런 말을 연거푸 듣고 보니 지난날이 어떠했는지 돌아보고 싶어졌다. 아니, 누군가 옛적 그 얘기도 듣고 싶다는 말에 힘입어 되새김질을 할까 싶다. 어쩌면 내게 남아 있을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옷, 하고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예닐곱 살 무렵, 엄마가 손수 잘라서 만들어 준 분홍빛깔 원피스다. 마을 내에는 같은 성씨의 아재비와 고모뻘 되는 분들이 많았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되면 색깔이 밝은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곤 했다. 나도 얇고 밝은 옷이 갖고 싶었다. 평소 말도 잘하지 않던 내가 입을 떼자마자 어디서 구한 것인지 엄마는 분홍빛깔 천으로 원피스에다 반바지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 옷을 입고 보니 날아갈 듯이 기뻤다. 한동안 세상에서 내 옷이 최고로 예쁜 줄 알았다. 여름이 되자 아래 윗집 친척분들이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놀러 왔다. 그런데 그 옷들은 실밥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색상이나 모양이 다양했다. 더욱이 치마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만 내 옷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장에 가서 옷 사줘" 어느 땐가부터 옷을 사달라고 내뱉고는 엄마의 눈치를 봤다.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진달래색 끈 달린 치마가 내게 주어졌다. 애초에 큰 치마인지라 처음에는 끈을 묶어서 입다가 나중에는 허리가 졸릴 정도로 작을 때까지 그 치마를 즐겨 입곤 했다.
작은 키였음에도 학교를 들어가고 또 학년이 올라가면 다른 옷을 사거나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 땐가는 엄마의 홀치기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옷으로 바뀌기도 하면서 고학년이 되었다. 중학교 들어갈 때 첫 교복은 나중을 생각해서 크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옷은 내 키가 자라주지 않아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헐렁한 채 그대로였다.
세월이 흘러 여학교를 마치고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끔 옷을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물론 양장점을 가는 대신 상점 앞 매대에 누워있는 옷에서 고르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신중하게 선택했다.
그러다가 명절을 앞둔 어느 해에는 큰 마음을 먹고 정장 한 벌을 양장점에서 샀었다. 그 옷은 조끼와 재킷까지 있어서 겨울 말고 3 계절은 너끈히 입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질이 별로 없어 결혼할 때 들고 와서 틈틈이 입곤 했다. 그 후 딸들이 대학생이 된 뒤에는 딸들 옷이 되었었다.
돌아보면 은근히 옷에 관심이 많은 형이라 비록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꼼꼼하게 따져가며 골랐다. 그래서인지 아씨 때 옷을 결혼하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 입었다. 그러다가 느지막이 직장을 찾아 나섰을 때는 이전의 옷들이 내 몸에 맡기는 했지만 유행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동료 중 한 분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그렇게 따로 놀아요? 옷 따로, 신발 따로, 가방 따로, 한마디로 말해서 선생님 차림새는 따로국밥입니다. 하하"
그 말은 한 동안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옷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딸들이 입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채 풀지도 않고 얌전히 포장된 창고매장에 가서 90프로 이하의 가격으로 하나씩 사모으는 데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옷장이 조금씩 채워져 갔다. 그 후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나들이가 자유롭지 않을 때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있었다.이제는 더 이상옷이 없어 따로국밥이란 소릴 듣던 어중간한 아줌마가 아니었다.
이십 대 때 샀던 옷을 입어도 될만치 내 몸무게에는 변화가 별로 없다 보니 버릴 옷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유행이 바뀔 때마다 하나 둘 사 모으다 보니 개수가 늘어가는데 딸들마저 체형이 비슷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내 옷장을 뒤질 정도로 취향조차 점점 젊어져 갔다.
그래, '바람났냐?' 할 정도로 내 얼굴이 생기가 나고 옷차림도 나아지고 있다니 참말 다행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다 죽어간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 스스로 자찬하면서 입꼬리를 올려본다.